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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기본 시간표에 묶인 원전, 속도를 바꿔야

최근 에너지 정책은 정권 교체 때마다 큰 진폭으로 흔들려 왔다. 탈원전과 원전 확대를 오가는 사이, 이미 확정된 사업조차 속도 조절과 재검토를 반복해 왔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원전 산업 생태계는 약화됐고, 숙련 인력은 현장을 떠났으며, 공급망 역시 크게 위축됐다.

전기본 시간표에 묶인 원전, 속도를 바꿔야

최근 에너지 정책은 정권 교체 때마다 큰 진폭으로 흔들려 왔다. 탈원전과 원전 확대를 오가는 사이, 이미 확정된 사업조차 속도 조절과 재검토를 반복해 왔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원전 산업 생태계는 약화됐고, 숙련 인력은 현장을 떠났으며, 공급망 역시 크게 위축됐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의 급성장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전력 수요를 요구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와 첨단 공장은 24시간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하며, 이는 간헐성을 가진 재생에너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원전은 현실적으로 대체가 어려운 기저전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 구조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다. 전기본은 15년을 내다보는 장기 계획이지만, 문제는 이 시간표에 원전 건설까지 맞추려 한다는 점이다. 전력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는데, 공급은 계획의 틀에 묶여 제때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원전 건설 기간에 대한 인식이다. 원자력 건설 전문가들은 실제 공사 기간이 약 54개월, 즉 4년 반 수준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미 국내외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지 선정 이후 착공까지 5년 이상이 소요된다는 현재의 구조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과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원전 추진 방식은 전형적인 ‘순차적 구조’다. 부지 선정이 끝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인허가가 완료돼야 설계가 본격화되며, 모든 절차가 끝나야 비로소 착공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수년이 허비된다. 하지만 이는 바꿀 수 있는 문제다.

해법은 명확하다. ‘병렬적 추진 구조’로의 전환이다. 부지 선정과 동시에 인허가 절차를 진행하고, 환경영향평가와 기본설계를 병행하며, 착공 준비 역시 사전에 시작하는 방식이다. 또한 부처별로 분산된 인허가 체계를 통합해 한 번에 심사하고 결정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이와 함께 표준 설계를 적극 활용해 불필요한 설계 반복을 줄여야 한다.

이러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현재 13~17년이 소요되는 원전 건설 기간은 10년 이내로 충분히 단축할 수 있다. 공사 기간 자체는 이미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결국 관건은 ‘착공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데 있다.

전기본은 국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그것이 속도를 제한하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획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실행 중심의 결단이다.

AI 시대의 전력 수요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 결정을 미루면, 그 대가는 2030년대 중반 이후 전력 부족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되돌아올 것이다. 원전 정책의 핵심은 더 이상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다. ‘얼마나 빠르게, 제대로 추진할 것인가’의 문제다.

이제는 답해야 할 때다. 계획의 시간이 아니라, 실행의 시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광성 범영덕원전유치위 위원장

경북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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