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가운데, 공연산업의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첫 협의체가 꾸려졌다. ‘저탄소 공연’을 향한 사회적인 논의라는 측면에서 기대감이 높다. 다만 국내 대형기획사들이 토론회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아 아쉽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8일 국회에서 케이팝 탄소중립 공연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케이팝포플래닛)/뉴스펭귄
지난 8일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실에서 '탄소중립 공연행사 가이드라인 제정을 위한 협의체' 출범식과 제1차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국회 문체위 이정문 간사 등 소속 국회의원들과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케이팝포플래닛,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공동 주최했다. 개별 기업과 공연 현장에서 이어져 온 친환경 실천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도록 공통 기준과 지원체계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문체부의 탄소중립 공연·행사 가이드라인 제정을 뒷받침한다는 취지다.
현재 국내에는 음악 산업의 탄소배출 수준을 종합적으로 산출한 자료가 없다. 감축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면 우선 배출량을 정확하게 측정해야 한다. 협의체의 첫번째 토론회 주제도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이들은 이후 실질적으로 탄소를 감축할 수 있는 분야, 그리고 산업계 참여 확대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규제 완화돼도 시장 요구는 계속된다"
케이팝포플래닛이 8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이정문 의원은 개회사에서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글로벌 팬덤이 확대되며 공연 산업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며 "이제는 선언을 넘어 실제 공연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과 실천 방안을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 이창훈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 민간위원장도 축사를 통해 민관 협력과 측정·관리 기반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 이지은 선임연구위원은 일부 지역에서 기후 관련 규제가 완화되는 흐름에도 투자자와 공급망, 글로벌 파트너사의 환경정보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국내에서도 지속가능성 공시가 단계적으로 의무화되는 만큼, 해외 투어와 국제 협업이 활발한 케이 콘텐츠 산업에서 탄소배출 측정·보고 역량은 규제 대응이 아니라 시장 접근과 브랜드 신뢰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연구위원은 콜드플레이가 이전 투어 대비 탄소 배출량을 절반 이상 줄이고 영국 샴발라 페스티벌이 현장 재생전력 100%를 실현한 사례를 소개하며, 케이팝의 저탄소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이제 필요한 것은 선도 기업의 실험을 산업 전체가 선택할 수 있는 운영 기반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띈 수치는 관객 이동이 공연 탄소배출량의 95.8%를 차지한다는 산정 결과였다. 이날 토론에서 내일의쓰임 조효진 대표는 이 숫자를 두고 "국내 출발 관객이 85%일 때 배출량은 전체의 10% 내외인 반면, 해외 출발 관객 15%가 나머지 90%를 배출했다"며, 국내·국제 이동을 한 칸에 합쳐 보고하면 감축 성과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이드라인의 첫 요건으로 국내 관객 이동·국제 관객 이동·숙박을 분리해 보고하도록 규정할 것을 제안했다.
현장의 벽…"데이터는 있는데 받을 권한이 없다"
토론에서는 실제 공연 현장의 경험이 쏟아졌다. 사운드얼라이언스 한문규 대표는 지난 8월 인천에서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재생에너지, 친환경 제품을 적용해 본 '서스테이너블 웨이브 페스티벌' 경험을 공유하며 "탄소배출 측정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무대·음향·조명·영상 등 여러 협력사가 함께 만드는 공연 구조상 업계 공통의 데이터 기준과 입력 양식, 현장과 기후 분야를 연결하는 전문 조정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공연 제작·주최사에게 금전적 부담이 친환경을 선택해서 더 많이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전제도 분명히 했다.
조효진 대표는 관객 참여형 탄소계산기를 운영하며 2023년부터 약 4만 5천명의 관객 이동 데이터를 직접 측정해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예매처와 주최 측의 관객 고지 채널에 접근할 수 없어 실제 측정 가능한 관객은 전체의 9.6%에 그쳤고, 무대·음향 등 평균 15개 협력사로부터도 데이터 제공 의무가 없어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측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를 줄 의무나 이유가 아무에게도 없다는 제도의 문제"라며, 측정 주체를 개별 공연이 아닌 공연장으로 옮겨 관객 유입 구조와 대중교통 연결망을 담은 '베뉴 이동 프로필'을 공개하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실측 결과 자가용 이용을 좌우하는 것은 이동 거리가 아니라 출발지의 대중교통 공급 여부였다며, 이는 탄소 문제이면서 동시에 지역 간 문화 접근성 문제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인스파이어 아레나 김강 이사는 최근 2PM 콘서트에서 대관사인 JYP엔터테인먼트로부터 대관 기간 전체의 전력·가스·용수 사용량을 요청받는 등 업계의 측정·관리 움직임이 실제로 시작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호텔·카지노·컨벤션이 함께 있는 복합리조트 구조상 특정 공연의 에너지 사용량만 분리해 산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당장 세부 데이터를 일률적으로 요구하기보다 공연장 전체 사용량, 공연 운영 직접 사용량, 외부 발생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구분해 확대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또 공연장 주변 대중교통이 부족해 매 공연 약 15대의 셔틀버스를 자체 비용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가이드라인이 공연장 시설 요구에 그치지 않고 주변 인프라 개선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표준협회 이동규 기후환경센터장은 100% 전수조사가 불가능한 공연의 특성상 국제표준(ISO 14064, ISO 17029)에 따른 리스크 기반 표본 추출과, 데이터 정확도에 따라 자가 선언부터 제3자 검증까지 3단계로 나누는 '데이터 신뢰도 등급제(Tier 시스템)' 도입을 제안했다. 2008년 환경부의 '저탄소형 녹색행사 가이드라인'의 취지를 계승하되 글로벌 기준을 반영해, 해외 투어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검증 체계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측에서는 이미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문체부 김유미 대중문화산업과장은 2023~2024년 콘텐츠 전 분야를 대상으로 탄소배출계산기를 개발했으나 현장 적용에 어려움이 있어, 현재 음원 제작·공연 행사 부문으로 나눠 시범 단계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이강훈 미래정책팀장은 올해부터 SM·하이브·JYP 등 3대 기획사와 함께 서울·인천 공연장을 중심으로 베타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며, 이를 고도화해 단계적으로 가이드라인까지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8월 인천에서 열린 서스테이너블 웨이브 페스티벌. 이동형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재생에너지, 친환경 제품 등이 적용됐다. (사진 케이팝포플래닛)/뉴스펭귄
‘케이팝 공연’ 논의인데...대형 기획사 이름은 없어
지정토론자 명단을 보면 아쉬운 대목도 있다. 정작 탄소중립 전환의 당사자라 할 대형 연예기획사들의 이름이 눈에 띄지 않았다. 공연산업의 탄소중립을 논의하는 자리에 산업의 핵심 주체가 직접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아쉬움 섞인 반응도 나온다. 더구나 이 자리가 '규제'가 아닌 '진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자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기획사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참여해 목소리를 낼 만한 기회였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대형기획사 소속 케이팝 그룹의 팬 이모씨(36)는 “만 명 단위의 관객이 모여 2~3일에 걸쳐 진행되는 콘서트는 대부분 대형 큰 회사 소속인데, 그런 기획사 관계자들은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당사자가 빠진 논의인 것 같아 아쉽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케이팝포플래닛 관계자는 10일 <뉴스펭귄>에 "대형 기획사에도 협의체 참여를 요청했고, 일부 엔터사는 토론회에 방청으로 함께했다"며 "개별 회사 대신 산업계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협회가 대신 배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협의체는 산업을 규제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진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앞으로 협의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이런 취지를 잘 전달하고 기획사의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참여를 요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형 기획사들도 탄소 배출량을 측정하고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어떤 항목을 어떤 기준으로 측정하고 감축해야 하는지에 대한 통일된 가이드라인이 충분하지 않아, 각 기업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통일된 기준이 없어 기업마다 대응이 제각각이라는 진단인데, 그렇다면 그 기준을 함께 만들 이번 논의 테이블에 기획사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케이팝포플래닛 관계자는 "엔터사들의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꾸준히 소통하고 있는 상황" 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8일 토론에서는 ‘저탄소 공연’이라는 큰 틀에는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을 내비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한국대중음악산업협회 최태영 사무국장은 "가이드라인은 법도 처벌 수단도 아니지만, 공표된 뒤 이를 지키지 않는 주체가 이미지 타격을 받는다면 그 자체로 규제가 될 수 있다"며, 시설마다 다른 공연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 적용의 비효율을 우려했다.
에이오디 이서윤 대표는 친환경 현수막이 일반 인쇄보다 3배가량 비싸다는 예를 들며 비용 문제를 짚었고, 한국체육산업개발 박정배 팀장은 올림픽공원처럼 시설 노후가 심한 공연장은 재생에너지보다 안전 문제가 더 시급한 현실도 있다고 전했다.
협의체는 이날 출범과 함께 한국·미국·영국·일본·인도네시아·벨기에 등 세계 각지 케이팝 팬들의 환영 영상을 공개했다. 협의체는 이번 탄소배출 측정 논의를 시작으로 앞으로 공연 에너지 전환, 폐기물 감축·관리, 인센티브 설계 등을 차례로 논의해 문체부의 공식 가이드라인 제정·보급을 뒷받침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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