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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재벌가 며느리들 ②] 총수가 된 다섯 번째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

규모의 AI·로봇 기반 대표적인 스마트 물류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현대무벡스는 현대그룹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현정은 회장은 과거처럼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드러내기보다 그룹의 핵심...

[재벌가 며느리들 ②] 총수가 된 다섯 번째 며느리, 현정은 현대그룹 회...

재벌가의 다섯 번째 며느리, 남편 사망 후 경영권 전쟁, 그룹 총수. 이 모든 것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인생에 새겨진 굵직한 사건들이다. 전형적인 재벌가 사모님 타이틀을 내던지고, 혈통 논리를 깨뜨리고 총수가 된, 한국 재벌가의 새로운 역사를 남긴 현정은 회장의 삶을 돌아봤다.

재벌가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하다. 그들은 어떻게 재벌가에 입성하게 되었으며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재벌가의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 흥미롭다. 그녀들이 운명을 찾아가는 방법을 입체적으로 정리했다.

현정은 회장이 현대가 며느리가 된 건 1976년이다.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의 딸로 태어난 그는 정주영 현대 창업회장의 5남이자 후계자로 지목되던 정몽헌 회장과 결혼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갓 스무 살을 넘긴 21세였다.

결혼 이후에는 그야말로 조용한 내조형 며느리로서의 삶을 살았다. 당시 현대가는 엄격한 가부장적 문화가 강했던 집안으로, 며느리들의 공개 활동이 거의 없었다. 현 회장 역시 1남2녀를 둔 평범한 가정주부로 내조와 자녀 양육을 도맡았다.

그러던 2003년, 그의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된 사건이 일어난다. 그해 8월 4일 남편 정몽헌 회장이 갑자기 사망했다. 당시 정 회장은 불법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현대그룹 전체가 충격에 빠졌고 동시에 위기가 찾아왔다.

장례식 과정에서 첫 공개 노출이 이어졌다. 현 회장이 검은 상복 차림으로 눈물을 흘리며 침묵을 지키는 모습이 언론 카메라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는 모습이 집중적으로 주목받았지만, 공식적인 발언은 거의 없이 조용히 유가족의 역할만 수행했다. 당시 언론들은 ‘비운의 미망인’, ‘조용한 내조형 아내’ 등의 타이틀로 그를 소개했다.

# 갑자기 사망한 남편, 누가 현대를 맡을 것인가

상황이 살짝 달라진 건 8월 중순 발인 이후다. 현대그룹의 실질적인 리더가 사라졌고, 당시 진행 중이던 대북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 주목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해 10월,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취임하며 사실상 그룹 총수 자리에 오른다. 결혼 이후 걸스카웃연맹 이사, 대한적십자사 특별자문위원 등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을 수행하며 사회적으로 무게감 있는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그룹의 상징적인 자리에 오르는 행보는 선명하게 눈길을 끌었다.

(위)2018년 금강산호텔 2층에서 열린 축하연회에서 건배사 후 건배를 하고 있다. (아래)같은 해 금강산문화회관에서 열린 ‘금강산관광 시작 20돌 기념 남북공동행사’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정씨 가문 기업은 정씨가 운영해야 한다’

시댁과의 경영권 분쟁

그러나 그의 취임은 곧바로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가장 큰 장벽은 능력보다 ‘혈통’이었다. 정씨 일가 내부에서는 “현씨가 현대를 이끌 수 없다”는 반발이 공공연하게 제기됐고, 친족을 중심으로 경영권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일부에서는 상속 포기를 요구하는 압박까지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경영권 분쟁이 아니라, “정씨 가문 기업은 정씨가 운영해야 한다”는 재벌가의 암묵적 질서가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이기도 했다.

현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남편의 부채까지 떠안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경영 참여를 강행했고,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지배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숙부 세력과의 갈등, 지분 경쟁, 외부 세력의 개입까지 이어지는 다층적인 경영권 분쟁이 전개됐다. 특히 이후에는 독일계 기업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보하며 장기간에 걸쳐 경영권 압박을 가하는 등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도전이 이어졌다.

(위) 2010년 11월 금강산관광 12주년을 맞아 진행한 선대 회장 참배 행사 장면. (아래) 2023년 8월, 고 정몽헌 회장 20주기를 맞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계열사 임직원들이 경기 하남시 창우동 선영에서 추모비 제막식을 갖고 있다.

# 혈통주의 타파한 ‘현다르크’

20년 이상 그룹 수호 비결

현정은 회장의 경영사는 단순한 ‘총수 취임’이 아니라, 거의 20년에 걸친 경영권 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붙은 별명이 바로 ‘현다르크(현정은+잔 다르크)’다.

현정은 회장의 지난 20년 경영을 평가할 때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는 점이다. 2003년 남편의 사망 이후 그가 넘겨받은 현대는 우리가 아는 전성기의 현대가 아니었다. 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중공업은 현대중공업그룹으로, 건설 역시 떨어져 나간 뒤였다. 남아 있던 것은 현대엘리베이터를 축으로 한 제한적인 지배구조와, 금강산 관광과 개성 사업 등 정치 변수에 좌우되는 대북사업이었다. 다시 말해 성장 동력을 품은 기업이라기보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구조 위에 선 조직이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현정은 회장은 그룹 해체를 막는 데 집중했다. 채권단 관리와 유동성 위기 속에서도 현대라는 이름을 유지했고, 특히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를 지켜낸 점은 분명한 성과로 꼽힌다. 지분을 둘러싼 갈등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 시기 현대그룹은 남북경협, 해운업 등에서 큰 경영 성과를 얻기도 했다. 특히 이 시기 현 회장의 대북 협상 성과는 세간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대북사업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정은 회장의 진짜 시험대는 2010년대였다. 대북사업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그룹의 핵심 축이 사라졌고, 여기에 현대상선의 위기가 겹쳤다. 해운업 불황과 부채 부담이 누적되며 결국 현대상선은 산업은행 체제로 넘어갔다. 이는 단순한 계열사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그룹의 실질적 몸통이 떨어져 나간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 현정은 회장은 '다시 현대'라는 슬로건처럼 새로운 성장을 위해 그룹의 체질을 개선하고 지속 성장을 위한 경영전략으로 전환,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 결과 현대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세계 3대 승강기 시장인 한국에서 독보적인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고 있고, 미래 성장 기반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현대아산 또한 남북경협의 중단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국내 건설업, ODA(공적개발원조), 관광업 등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고, 최근에는 오리온진천공장 등 대규모 건설 수주 성과를 이어가며 선전, 향후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기반을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토털 스마트 물류 솔루션 계열사인 현대무벡스의 가파른 성장은 현정은 회장의 전략적 판단의 성과로 조명되고 있다. 2018년 현대엘리베이터 물류사업부문을 IT 계열사 현대U&I와 합병, HW 중심의 물류자동화 사업에 SW 역량을 결합시켜 시너지를 극대화 했고, 2019년 대규모 R&D센터를 구축해 단기간 내 물류 로봇 라인업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런 현정은 회장의 전략적 결정을 기반으로 현대무벡스는 글로벌 진출 등 과감한 사업 다각화를 통해 창립 7년 만에 매출액을 2배 이상 늘렸고, 2022년 상장 이후 3년 만에 주가를 10배 이상 상승시키면서, 지금은 시가총액 3조원 규모의 AI·로봇 기반 대표적인 스마트 물류기업으로 자리잡았다. 현대무벡스는 현대그룹의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현정은 회장은 과거처럼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드러내기보다 그룹의 핵심 축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현대무벡스 등 주력 계열사의 미래 기술 확보를 위한 R&D 역량 고도화에 집중하며 신사업 확장 등을 꾀하고 있다. 즉 안정과 내부 역량을 활용한 확장을 병행하는 경영 전략을 세우고 있다.

공식 석상에서는 재단 활동과 기부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2025년에는 KAIST 인공위성연구소 환경 개선 사업에 5억원을 기부하며 직접 행사에 참석했고, 이 자리에서 남편 정몽헌의 과학기술 지원 의지를 계승한다는 메시지를 밝혔다.

(위)지난 1월,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2026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아래)‘고 정몽헌 회장 10주기 추모 사진전’ 개막식에서 정 회장의 대형 모자이크 사진 중 마지막 한 조각을 끼우고 있다.

# 고 정주영 회장 25주기 제사 참석

상징적인 집안 행사 빠지지 않는 ‘현대 가족’

지난 3월 20일, 고 정주영 창업회장 서거 25주기를 맞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자택에서 열린 제사에 이른바 ‘범현대가’가 총집결했다. 장손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을 비롯해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몽윤 현대해상 회장, 정몽규 HDC그룹 회장 등 주요 일가가 참석했고, 현정은 회장 역시 이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가 중요한 것은 단순한 ‘제사 참석’이 아니다. 범현대가는 1년에 두 번, 창업주 기일을 중심으로 사실상 유일하게 전 계열이 한자리에 모인다. 과거 경영권 분쟁을 겪었던 관계지만 현 회장은 배제되지 않은 가족의 일원으로서 참석하고 있다.

여러 결혼식에서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2023년 6월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에서 열린 정몽원 HL그룹 회장 차녀 결혼식에는 범현대가 인사들이 대거 모였고, 현 회장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신부는 정몽원 회장의 차녀 정지수, 신랑은 백지연 전 앵커의 아들이었다. 이 결혼식은 단순한 혼사가 아니라 현대가 주요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인 자리였고, 현정은 역시 다른 일가 인사들과 같은 동선에서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보다 앞선 2022년 6월 27일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장녀 결혼식이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열렸다. 이 역시 범현대가가 총집결한 대표적인 행사였는데, 현정은 회장도 참석해 자리를 함께했다. 특히 이 결혼식은 현대가 며느리들이 한복을 입고 등장하면서 전통적 분위기가 강조된 행사로 기억되는데, 현 회장 역시 한복 차림으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결혼식에서 한복을 착용한 모습은 기업 총수로서가 아니라 ‘가문의 일원’으로서 자리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녀 진희 씨의 결혼식에 한복을 입고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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