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인 '유통' 둔화·'화학' 부진…사업 경쟁력의 시험대
‘전범 기업’ 정체성 논란 넘어 실적∙구조 개편 집중해야
롯데그룹을 둘러싼 ‘친일·전범 기업’ 논란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창업자 신격호의 개인사와 일본과의 연관성을 근거로 한 비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러한 평가가 과연 타당한지에 대한 냉정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감정적 판단을 넘어 사실관계와 경제적 실체를 중심으로 롯데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일본 유학생으로 시작한 신격호 창업주의 롯데 성공 신화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여인 ‘샤롯데’의 이미지로 포장돼 왔다. 하지만 한국민의 롯데에 대한 이미지는 그와는 상충한다. 논란의 출발점은 신격호 회장의 일본 활동과 가족 관계다. 신격호는 1941년 만 19세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고, 1950년 일본인 배우자와의 중혼 과정에서 전범 가문과의 연관성이 제기됐다. 특히 일본의 전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와의 친인척 관계설이 확산되며 롯데가 ‘전범 기업’이라는 비판까지 이어졌다.
19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 서울에서 열린 2026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스키·스노보드대표단 격려 행사에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특별영상을 보고 있다. 신 회장에겐 3세 승계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는 시간적·사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신격호 회장은 결혼 전인 1947년 껌 사업을 통해 일본에서 성공 기반을 마련한 이후 사업을 확장해 왔다. 전범 가문과의 연관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업 성공의 직접적인 배경이라는 주장은 인과관계 측면에서 설득력이 낮다는 분석이 많다. 결국 ‘전범 연계 → 기업 성장’이라는 단순한 도식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추정에 가깝다는 평가다.
기술 협력 문제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일본 기업과 협력해 온 점을 들어 ‘전범 기업 친화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지만, 이는 글로벌 산업 구조를 감안할 때 과도한 해석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국내 주요 기업들 역시 성장 과정에서 일본 및 해외 기업과 기술 제휴를 맺어왔으며, 이를 특정 기업에만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 기술 협력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일반적인 경영 전략이라는 점에서 역사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 짓는 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성장한 롯데그룹의 정체성
롯데 논쟁의 핵심은 오히려 ‘정체성’ 문제에 가깝다. 롯데는 국내에서 대부분의 매출과 고용을 창출하는 대표적인 재벌이지만, 지배구조는 일본 법인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가 90% 이상 지분을 가진 호텔롯데를 통해 한국 롯데를 지배하는 구조는 ‘주인은 일본, 사업은 한국’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만들어내며 지속적인 논란의 배경이 되고 있다.
국내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상징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사진=롯데 제공)
이와 관련해 제기되는 또 다른 쟁점은 ‘경제적 기여’와 ‘자본 유출’ 문제다. 롯데는 자산 기준 국내 5대 재벌에 속한다. 매출이 80조원에 달하고 고용인원도 20만명이나 된다. 롯데가 한국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일본으로 이전하는 구조라면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실제 수치를 보면 상황은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아래 추정치에 따르면 일본으로 이전되는 배당은 전체 이익의 1~7%에 그치며, 90%가 넘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와 이익은 국내에 남는 구조다. 이는 롯데가 단순한 ‘자본 유출 통로’라기보다 국내 경제에 기여하는 측면이 더 크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 롯데의 주인은 일본 롯데홀딩스가 맞지만, 실제 롯데가 벌인 사업의 수혜 국가는 한국인 셈이다.
(표=뉴스버스/생성형AI)
껌에서 출발해 유통∙화학으로 성장한 롯데그룹의 위기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진출한 롯데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자. 껌과 제과 사업으로 출발한 롯데는 유통과 관광 산업을 거쳐 화학 산업까지 확장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왔다.
(표=뉴스버스/생성형AI)
롯데는 2000년대 이후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화학 산업에 진출하며 그룹의 체질을 유통 중심에서 산업재 중심으로 확장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 탓에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하며 그룹 전반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유통 부문 역시 온라인 시장 성장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백화점, 대형마트, 면세점 등 기존 핵심 사업이 전반적으로 둔화되는 가운데, 화학 부문의 부진까지 겹치며 롯데는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다.
구조 개편과 미래 먹거리 발굴로 3세 경영의 불안정성 극복해야
이런 가운데 추진 중인 3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 체제로의 전환은 롯데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변수다. 롯데는 지배구조가 복잡하고 한일 양국에 걸쳐 있어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확실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 신동빈 회장, 신동주 부회장의 형제 간 경영권 분쟁 경험까지 감안할 때, 안정적인 승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롯데를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한국 기업인가 일본 기업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으로 정리되기 어렵다. 지배구조는 일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실질적인 사업 활동과 경제적 기여는 한국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롯데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려면 과거 논쟁에 머무르기보다 구조 개편과 미래 먹거리 발굴 등 사업 재편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한일 이중 구조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한편,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향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전범 기업’이라는 낙인 논쟁을 넘어, 롯데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느냐가 향후 기업 가치와 평가를 좌우할 것이다.
이인형
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9년간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수행했고, 서울대 농생대 창업보육센터에서 3년간 보육매니저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현재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며,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과 개인신용정보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주요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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