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한국 사회의 가장 민감한 이슈인 ‘분배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급증은 단순한 기업 호황을 넘어 ‘성과 분배’에 대한 사회적 논쟁으로 확산되는 중이다.
처음에는 노사 간의 분배 문제였다. SK하이닉스 노조가 지난해 9월 영업이익의 10% 범위 내에서 무제한적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내세웠고, 사측이 이를 수용했다. 이는 기본급의 1000% 이내라는 성과급 상한선이 폐지됐음을 의미한다. 회사가 많은 이익을 올릴수록 임직원들도 그에 상응하는 분배를 받게 된 것이다. 최태원 SK회장의 결단에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직원은 이 새로운 기준에 의해 올해 1~2월에 성과급을 받았다. 2025년 실적 기준이었다. SK하이닉스 2025년 영업이익은 약 47조 원이었다. 그 10%인 약 4조7000억 원이 성과급 재원으로 마련됐다. 이를 SK하이닉스 직원 수 약 3만3000명 직원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약 1억4000만 원 정도 지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만 해도 SK하이닉스 직원이 선망의 대상으로 부상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도체 슈퍼싸이클이 장기화되고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증권가의 전망이 잇따르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내년 성과급을 둘러싼 전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전망을 두고 분배 논쟁이 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증권가 컨센서스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는 약 250조원이다. 이를 기반으로 한 성과급 재원 규모는 약 25조원이다. 이를 전체 임직원 수 3만5000여명으로 나누면 1인당 7억원의 성과급을 2027년 1~2월 경에 받게 된다는 시나리오가 시중에 퍼졌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 증권은 내년 SK하이닉스 영업이익을 447조원으로 예상하며 1인당 평균 성과급이 12억9000만원에 달할 수 있다는 추산치를 발표했다.
이 추산치를 근거로 다수 언론들이 “SK하이닉스 직원은 성과급 13억원을 받게 됐다”는 식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에 한국사회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단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SK하이닉스 성과급 13억원을 두고 온갖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 중의 하나가 ‘전국민 분배’ 주장이다.
지난 18일 블라인드에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이용자가 ‘하이닉스 성과급은 왜 하이닉스만 받냐'는 제하의 글을 올려 "과거 SK하이닉스가 경영 위기일 때 산업은행을 통해 국민 세금(국세)이 투입되어 부활했으므로 그 결실인 성과급 또한 전 국민이 나눠 갖는게 타당하다"는 내용의 주장을 폈다.
신용보증재단 재직자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성과급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대기업이 혼자가 아니라 국민이 같이 성과를 이뤘다. 내수 경제에 맞게, 부동산에 안 흘러가게 지역화폐로 성과급을 지급하자"고 말했다. "이 성과급이 부동산으로 흘러 모든 수도권 부동산 시세가 5억원 정도 올라가는데 불안감이 있다"며 "이를 지역 상품권으로 주면 지역 내수도 살리고 직원들 플렉스(성공이나 부를 과시함)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영업이익 상단 제약을 두지 않고 성과급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은 빠르게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10억 원을 넘는 성과급 전망이 나오면서, 보상의 문제는 더 이상 기업 내부에 머물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직원 분배’를 넘어서는 ‘국민 분배’ 요구까지 나오는 것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비판이 많다. 반도체 산업이 국가적 지원과 국민적 성원을 받으면서 성장해왔지만, 임직원들의 뼈를 깎는 노력이 현재 거둔 큰 성공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도 성공에 한 몫을 했다는 논리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2023년 'K-칩스법'을 통해 연구개발과 시설 투자에 대해 최대 20% 세액공제를 제공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2년간 받은 세제 혜택은 약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산업은 전력 집약도가 극단적으로 높은 대표적 국가 전략 산업이라는 점도 지적된다. 즉 안정적 전력 공급 자체가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다. 정부와 공공 기관은 그동안 송전망 증설, 변전소 구축, 산업단지 전력 인프라 확충 등을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를 뒷받침해왔다.
특히 평택·이천 등 주요 생산 거점에는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설비 투자가 이뤄졌고, 반도체 생산시설들은 값싼 산업용 전력요금만 부담하면서 막대한 전기자원을 사용해왔다. 물론 산업용 전기요금 혜택은 반도체 기업만 누린게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반도체 기업이 ‘전기 먹는 하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산업용 전기요금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린 기업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라는 논리는 설득력을 갖는다.
역설적으로 이번 논쟁을 격발시킨 마지막 방아쇠는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총파업 선언이었다. 노조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 연동 확대 등을 요구하며 쟁의행위에 돌입했고, 이는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성과급 요구에 대한 ‘도덕적 해이’ 비판을 촉발시켰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재원으로 하는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올해 반도체 사업부 영업이익 전망치는 270조 원이다. 노조 요구대로 하면 40조 5000억 원을 성과급 재원으로 쓰게 된다. 그럴 경우 1인당 성과급은 5억~6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사측이 이같은 요구를 수용하지 않자 총파업을 선언했다.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최승호 위원장은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노조는 오는 23일 평택사업장에서의 대규모 결기대회에 이어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파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18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을 때 설비 백업을 고려하면 최소 20조원에서 30조원 규모의 손실이 회사 측에 있을 것으로 파악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총파업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그 이전까지 성과급 문제는 기업 내부의 임금 협상 이슈에 가까웠지만, 총파업이라는 강한 방식이 결합되면서 논쟁의 성격 자체가 바뀌었다. 성과급은 더 이상 ‘기업 보상’이 아니라 ‘사회적 분배’의 문제로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금융투자에 익숙한 청년층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는 국민이 키운 기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삼성전자가 파업으로 실적이 하락하면 개미주주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 삼성전자를 공동운명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삼성전자 노조가 성과급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단적 투쟁으로 치달을수록 반도체 기업 영업이익에 대한 ‘국민 분배’ 논쟁이 격화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성과급 확대 요구 자체는 글로벌 IT 기업에서도 일반적인 ‘성과 연동 보상’ 체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억 원대 보상을 전제로 한 총파업 선언은 일반 국민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로 전달된다. “이미 충분히 많은 보상을 받는 집단의 집단이기주의”라는 사회적 인식이 강화된다.
그로 인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성과급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 “국민이 함께 나눠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과격하거나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의 문제의식은 새로운 논쟁을 제기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한 산업에서 발생한 초과 이익이 특정 집단에 집중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이다.
갈등의 축이 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과거에는 ‘노동 대 자본’의 구도가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고소득 노동 대 일반 노동’이라는 새로운 균열이 형성되고 있다. 반도체 핵심 인력처럼 협상력이 높은 노동자는 수억 원의 성과급을 요구할 수 있는 반면, 대부분의 산업 노동자는 그렇지 못하다. 이 격차가 커질수록 사회적 긴장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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