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울산MBC는 1968년 창사 이래 박동훈과 홍수진 등 울산 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울산사람 중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1980년대 울산MBC에서 PD로 울산시민에게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김승욱 PD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김 PD는 서생 출신으로 부산에서 음대를 졸업한 후 1983년 울산MBC에 입사했다. 입사 동기로는 부산에서 PD로 활동했던 강동진 그리고 대중음악 담당자 김병주와 정인회 PD가 있다.
이들이 한꺼번에 입사한 것은 당시 울산MBC 유달훈 사장이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독일 가곡을 좋아했던 유 사장이 얼마나 노래를 잘 불렀던지 조영남이 울산에 와 공연장에서 유 사장을 만나면 "형님 앞에서 제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면서 겸연쩍어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서울대 후배인 조영남은 유 사장이 서울에서 MBC에 근무할 때 자주 만나곤 했다.
유 사장은 이관 총장과 함께 울산대에 음대가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면서 음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꿈은 이루지 못했다. 대신 이들은 ‘가곡과 아리아의 밤’이라는 음악회를 만들었는데 이 음악회 진행과 섭외 그리고 총괄을 김 PD가 맡았다. 이 음악회는 시내 유명 다방에서 돌아가면서 열렸는데 시민 반응이 좋아 한때는 정경화·정명화 자매가 출연하기도 했다.
이처럼 ‘가곡과 아리아의 밤’을 통해 울산 시민에게 많이 알려졌던 김 PD가 초청한 인물이 ‘향수’로 유명한 박인수다. 박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 음대 교수로 주로 클래식을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박 교수가 부르는 ‘향수’를 들었던 유 사장이 노래 가사가 좋다면서 자주 방송할 것을 김 PD에게 지시했다.
따라서 이 노래가 울산에서 자주 전파를 타고 울산 시민이 좋아하게 되면서 박 교수가 울산에 오게 되었다.
이렇게 보면 ‘향수’는 서울보다 울산에서 더 명성을 얻어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클래식을 불러야지 가곡을 해서는 안된다는 박 교수의 고정관념을 바꾼 것도 김 PD였다.
이후 김 PD는 박 교수가 경주 현대호텔에서도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섭외하는 등 ‘향수’를 방송을 통해 꾸준히 대중에게 알렸다.
이런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던 김 PD는 울산MBC에 오래 있지 못하고 1991년 서울 모 방송국으로 갔다. 그가 이때 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던 울산MBC를 떠났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울산MBC 40년사>를 보면 ‘사라져 버린 DJ, 사라져 버린 방송’이라는 제목의 가십성 글에 그가 방송 중에도 자리를 자주 비워 진행자가 당황했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 글을 보면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이 방송국을 일찍 그만둔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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