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광주시립오페라단 창작 오페라 ‘용아’ 시연회에서 출연진들이 박용철, 임정희, 박봉자, 김영랑, 정지용 등 5인이 처음 발간된 시문학지를 함께 보며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장면인 2막 1장 ‘어제 날이 채 가지도 않아’를 노래하고 있다. /박정석 기자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 글과 시(詩)가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용아’ 박용철 선생의 젊은 예술혼이 창작 오페라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다.
광주시립오페라단은 24일 제22회 정기공연 창작 오페라 ‘용아’의 시연회를 열고, 작품의 핵심 장면과 아름다운 선율의 아리아 등 8곡을 공개했다.
이번 작품은 한국 순수시 운동의 선두에 섰던 ‘용아’ 박용철 시인의 삶을 중심으로 당대 최고의 청년 예술가들이 나눈 우정과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본격 문학 오페라다.
창작 오페라 ‘용아’는 박용철의 배재학당 중퇴나 일본 유학 시절 등 방황 가득했던 전사(前史)를 과감히 걷어내고, 우리 문학사의 위대한 이정표인 ‘시문학사’ 창설 과정과 시인 박용철의 마지막 삶과 주변 인물들에 집중했다.
1막 ‘사랑과 꿈의 탄생’은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박용철이 문학적 동지인 김영랑, 정지용과 함께 시문학의 꿈을 키워가는 뜨거운 과정을 담았다. 여기에 박용철이 평생의 동반자이자 아내인 임정희 여사와 운명적으로 만나 사랑을 꽃피우는 서사가 아름답게 교차한다. 임 여사는 실제로 박용철 요절 후에도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잡지 ‘신문학’을 발행하고 소설가 황순원을 등단시킨 선구적 인물이다.
2막 ‘시대의 탄압과 영원한 사랑’은 일제의 탄압으로 시문학사가 강제 폐간되는 시대적 비극을 다룬다. 박용철이 폐결핵으로 생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도 끝까지 붓을 놓지 않는 예술혼과 아내 정희와의 절절한 사랑을 가슴 시리게 표현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사랑하는 교과서 속 명작 시들이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와 중독성 있는 아리아로 재탄생했다는 점이다.
시연회에서 가장 큰 환호를 받은 대목은 박용철이 고뇌 속에서 시 ‘나두야 간다’를 집필하며 임정희와 마음을 확인하는 사랑의 장면이었다. 또한 동인지 이름을 짓지 못해 밤새 머리를 맞댄 문학 삼총사 앞에 여동생 봉자가 술에 취해 나타나 "무엇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느냐"라며 유쾌하게 ‘시문학’이라는 이름을 짓도록 물꼬를 터주는 아리아는 극의 활력을 더했다.
특히 프랑스 유학을 앞둔 천재 무용가 최승희가 김영랑과 가슴 아픈 이별을 고한 뒤, 홀로 남은 영랑이 시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노래하는 대목은 서정성의 극치를 보여주며 현장에 감동을 전달했다.
창작 오페라 ‘용아’ 시연회 포스터. /광주시립오페라단
작품은 세계를 매료시킨 K-문학의 뿌리에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 속에서도 우리 글과 예술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선구자들이 존재했음을 조명하기 위함에서 비롯돼 더욱 눈길을 끈다.
‘우리 지역 문학의 뿌리는 어디인가’라는 깊은 고민에서 시작된 작품은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과 대표성을 담아내면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을 통해 글로벌 공연예술 브랜드로의 발전을 위한 연구와 관찰을 거듭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창작 오페라 ‘용아’는 대중이 오페라를 어렵게 느끼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객 친화적인 선율로 제작됐다. 난해한 현대음악이나 무거운 애국주의 서사를 지양하고,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아리아와 중창을 배치해 뮤지컬처럼 세련된 퍼포먼스를 완성했다는 설명이다. 향후 서사를 확장해 최승희의 대규모 무용신과 화려한 합창신을 추가, 세계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완성도를 구축할 계획이다.
최철 광주시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은 "시대의 아픔에 맞서 우리 예술을 사랑하고 끊임없이 도전했던 젊은 예술가들의 뜨거운 삶을 생생하게 부각하고자 했다"며 "우리 작품이 한국 오페라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문학적 서정성과 압도적인 음악성으로 창작 오페라의 새 지평을 열 오페라 ‘용아’는 오는 9월 18일과 19일 이틀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박정석 기자 pjs@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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