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일상 속 디자인 기행] 브랜딩이 해야하는 디자인-AI가 일관되게 해석하는 브랜드가 살아남는다

브랜드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AI에게 ‘학습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기억에 의존했던 과거 브랜딩

AI, 소비자와 만나는 관문되며

정보 생태계 전체로 무대 확장

시각적 아이덴티티 구축 넘어

언어·콘텐츠·서비스 아우르는

일관된 의미·구조 설계 ‘핵심’

사람엔 오랫동안 남을 신뢰를

AI엔 명확히 읽힐 지식 체계를

2개 정체성 동시 구축 나서야

사람은 브랜드를 경험으로 기억하고, AI는 데이터와 맥락으로 브랜드를 이해한다. 생성형 AI 시대의 브랜딩은 시각적 아이덴티티를 넘어 ‘브랜드가 이해되는 방식’까지 설계해야 한다. 생성형 AI 생성 이미지.

브랜드는 더 이상 기억되지 않는다. AI에게 ‘학습되는’ 시대가 시작됐다.

디자인은 오랫동안 사람을 향해 있었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머릿속에 오래 남기 위해 더 강렬한 색을 사용했고, 더 독창적인 로고를 만들었으며, 더 감성적인 광고를 제작했다. 브랜딩의 핵심 질문 역시 단순했다. “사람들이 우리 브랜드를 기억하는가?”

그러나 생성형 AI가 일상이 된 지금 시대에, 이 질문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이제 브랜드는 사람뿐 아니라 AI가 이해하고 해석하는 대상이 되었다. 검색창 대신 AI에게 질문하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첫 번째 관문은 광고나 검색 결과가 아니라 AI의 답변이 되고 있다.

브랜드는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이 변화는 브랜딩의 목적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의 브랜드 전략은 사람의 기억을 점유하는 일이었다. TV 광고는 반복 노출을 통해 인지도를 높였고, 로고와 슬로건은 반복 학습을 통해 브랜드를 각인시켰다. 브랜딩은 ‘얼마나 많이 보였는가’의 경쟁이었다.

하지만 AI는 기억하지 않는다. AI는 정보를 연결하고 맥락을 해석한다. 사용자가 “친환경 화장품 브랜드를 추천해줘”, “스타트업이 참고할 만한 브랜딩 사례를 알려줘”, “가성비 좋은 협업 툴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면 AI는 단순히 유명한 브랜드를 나열하지 않는다. 공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다양한 출처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내용, 브랜드가 어떤 개념과 함께 설명되어 왔는지를 종합해 답변을 구성한다.

이것은 브랜딩의 경쟁 무대가 인간의 기억에서 정보 생태계 전체로 확장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로고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었는지가 아니다. 브랜드가 어떤 언어로 설명되고,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로 인식되며, 어떤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언급되는지가 훨씬 중요해졌다.

브랜드는 하나의 시각물이 아니라 하나의 ‘지식’이 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AI가 브랜드를 학습하는 방식이 인간과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사람은 감정을 통해 브랜드를 기억한다. 첫인상, 광고의 분위기, 패키지의 촉감, 공간에서 느낀 경험이 기억을 만든다. 반면, AI는 감정을 기억하지 않는다. AI는 브랜드가 어떤 키워드와 연결되는지, 어떤 산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러 출처에서 얼마나 일관되게 설명되는지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해석한다.

결국 앞으로의 브랜드는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하나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AI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브랜드 구조다. 이 변화는 이미 해외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허브스팟'은 오랫동안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 기업'이 아니라 '마케팅·세일즈·고객 경험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왔다. '허브스팟' 홈페이지 캡처.

대표적인 사례는 ‘허브스팟’(HubSpot)이다. 허브스팟은 오랫동안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 기업’이 아니라 ‘마케팅·세일즈·고객 경험 플랫폼’이라는 개념을 지속적으로 축적해 왔다. 단순한 제품 홍보보다 방대한 교육 콘텐츠, 용어 정의, 실무 가이드, 연구 자료를 공개하며 특정 주제의 대표적인 지식 출처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 AI 기반 검색과 답변에서도 마케팅 자동화, CRM, 인바운드 마케팅과 관련된 질문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사례가 많다. 이는 광고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브랜드가 하나의 신뢰 가능한 지식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토스는 금융 서비스보다 '금융의 불편함을 해결하는 브랜드'라는 일관된 서사를 다양한 콘텐츠와 디자인 시스템을 통해 구축했다.

국내에서도 ‘토스’라는 브랜드 사례를 통해 비슷한 흐름은 확인된다. 토스는 단순히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았다. 송금, 자산관리, 신용관리, 보험, 증권 등 서비스가 확장될 때마다 ‘금융의 불편함을 줄이는 플랫폼’이라는 일관된 서사를 유지했다. 동시에 서비스 소개, 금융 정보, 사용자 가이드, 개발 문서, 디자인 시스템 공개 등 다양한 콘텐츠를 축적하며 브랜드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다. 이런 구조는 사람에게는 신뢰를, AI에는 명확한 맥락을 제공한다.

여기서 디자이너가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앞으로 브랜드의 경쟁력은 시각적 완성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브랜드를 설명하는 언어의 품질, 정보 구조의 일관성, 콘텐츠의 신뢰도, 그리고 여러 채널에서 동일한 철학이 반복되는 정도가 점점 더 중요한 자산이 된다. 브랜드 아이덴티티(BI)만으로는 부족하다. 브랜드를 AI가 오해 없이 해석할 수 있도록 만드는 ‘브랜드 의미 체계’가 새로운 디자인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디자이너의 역할도 바꾼다. 과거의 디자이너는 형태를 설계했다. 색과 조형,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을 통해 브랜드를 시각화했다. 이제 디자이너는 의미를 설계해야 한다. 브랜드가 어떤 단어와 연결되어야 하는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인지, 어떤 가치와 함께 반복적으로 언급되어야 하는지를 설계하는 일이 디자인 전략의 일부가 되고 있다. AI 시대의 브랜딩은 더 이상 ‘보이는 것’만 디자인하는 일이 아니다. ‘브랜드가 이해되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물론, 이것이 로고나 패키지 디자인의 중요성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시각 디자인은 브랜드의 철학과 의미를 일관되게 증명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아름다운 로고 하나만으로는 브랜드가 선택되지 않는다. 시각, 언어, 콘텐츠, 서비스 경험이 하나의 구조로 연결될 때 비로소 사람과 AI 모두에게 일관된 브랜드로 인식된다.

브랜드는 여전히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에게 도달하는 경로는 달라지고 있다. 검색 결과를 넘기던 시대에서 AI에게 질문하는 시대로 이동하면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신뢰할 수 있는 정보망 속에서도 일관되게 해석되어야 한다. 브랜드는 이제 단순히 기억되는 이름이 아니다.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끊임없이 해석되고, 연결되고, 설명되는 하나의 지식 체계다.

앞으로 가장 강한 브랜드는 가장 화려한 브랜드가 아닐 것이다. 사람에게는 오래 기억되고, AI에게는 정확하게 이해되는 브랜드. 그것이 생성형 AI 시대에 디자이너가 새롭게 설계해야 할 브랜드의 조건이다.

류지희 디자이너·작가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