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들은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을 따라 믿는 경향 이용
친한 친구라도 투자나 사업 이야기가 나오면 객관적 검증할 필요
경찰청 치안정보국 근무. '사기 프로파일링' 저자 이승환 경감.
[정리=포인트데일리 최영운 기자] 사기는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전염되듯 퍼져나가기도 한다. 한 명이 속은 사기라면 옆 사람도 덩달아 속기 쉽고, 그렇게 사기에 물든 사람들이 또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이는 악순환이 생긴다. 이를테면 피라미드형 다단계 사기에서는 초기 피해자가 나중에는 가해자의 조력자처럼 행동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당신만 특별히 이 정보를 드리는 거예요”라는 말에 솔깃해 거액을 투자한 사람이 수익을 내지 못하자, 원금이라도 건지려고 자기 지인들을 또 끌어들이는 식이다. 이렇게 사기는 개인에서 개인으로 구전(口傳)되듯 번져 나가 집단적 피해를 낳는다.
사회적 확산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집단 심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주변에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을 잘 의심하지 않게 된다. 심리학의 사회적 증거(Social Proof)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 다른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을 따라 믿는 경향이 있다. 사기꾼들은 이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다. 예컨대 투자 사기를 할 때 “이미 수천 명이 투자해서 큰 돈을 벌었다”는 가짜 후기와 허위 통계 숫자를 제시하거나, 가짜 수익 인증샷을 SNS에 퍼뜨린다. 이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했는데 설마 사기일 리 없어”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범죄자들은 심지어 유령 투자자나 알바 작성단을 동원해 인터넷에 긍정적인 글을 올리며, 마치 다들 믿고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렇게 다수가 믿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 개인은 의심을 내려놓고 덩달아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한때 열풍을 일으켰던 암호화폐 투자 붐에도 이러한 사회적 확산의 측면이 있었다. 2021년경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폭등하자, 너도나도 투자에 뛰어들었다. 사실 그중에는 스캠 코인이라 불리는 사기성 코인들도 많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이 코인으로 돈 벌었다”고 자랑하면 경계심이 무뎌졌다. “나만 뒤처질 순 없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좋은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심리에 많은 사람들이 검증되지 않은 투자판에 앞다투어 뛰어들었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수 코인이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봤다. 나중에서야 드러난 바로는, 일부 코인은 애초에 개발자와 초기 투자자들이 가격을 조작해 올린 다음 일반인이 따라 사면 고점에서 팔아치우는 폰지형 사기였다. 그러나 사회적 분위기가 “이번엔 다들 돈 버는구나”라는 쪽으로 흘러가다 보니, 정작 그 한복판에 있을 때는 누구도 냉정한 판단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기의 사회적 확산은 오프라인 인간관계망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전통적인 다단계 수법을 떠올려보자. 가족이나 친지, 친구가 다단계 판매에 빠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제품 구매나 투자를 권유하고 다니는 모습, 한 번쯤 목격해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신뢰하는 인간관계망을 타고 사기는 번져간다. 2000년대 중반의 JU그룹 다단계 사기에서는 총책 주수도가 교회 등 친분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했다. 신도끼리, 친구끼리 서로 권유하면서 “나도 했는데 당신도 해봐” 하는 식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3만여 명에 달했는데, 그중엔 목사, 교사, 공무원 등 서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소개로 들어갔다가 함께 피해를 본 사례도 많았다. 친밀한 신뢰의 연결망이 역설적으로 사기의 전파 경로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렇듯 사기는 바이러스처럼 전염되기도 한다. 현대에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덕분에 그 전파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스팸 문자 메시지 딱 하나만 만들어 뿌려도, 그것을 받은 100명 중 단 한 명만 속으면 사기범은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더구나 이 중 한 명이 속아서 돈을 보내게 되면, 사기범들은 곧바로 그 피해자의 전화 연락처 목록을 입수해 “방금 속은 사람의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시도해야지” 하는 식으로 추가 범행을 벌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메신저 피싱으로 한 사람의 카카오톡 계정을 탈취하면, 곧바로 그 사람이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급한 일이 생겼다”며 돈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다. 실제로 한 대학생이 메신저 계정을 해킹 당한 후, 그의 친구 5명이 연달아 똑같은 사기 메시지를 받고 모두 돈을 보낸 사건도 있었다. 친구의 계정으로 온 부탁이고 소액이다 보니 다들 별 의심 없이 보내버린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의 사기는 한 번 뚫리면 순식간에 연쇄 피해로 번질 위험이 있다.
사회적 확산이 무서운 또 하나의 이유는, 집단적인 맹신(盲信)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 집단 전체가 어떤 사기적인 믿음에 빠져들면, 내부에서 이성을 찾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열풍이나 21세기 초의 비트코인 광풍 등 일종의 거품 현상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모두가 튤립 구근을 사들이고, 모두가 코인에 열광할 때, 거기서 한 발 벗어나 “혹시 이거 거품 아닐까?” 라고 물으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다수가 믿는 거짓은 그 무리 안에서는 진실처럼 통용되고, 의심하는 소수는 배척당하기까지 한다.
사기꾼들은 이런 분위기를 교묘히 조장한다. 초기 피해자들이 의심을 품지 못하도록 “당신만 특별히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라고 치켜세우거나, “지금 나가면 손해 봅니다”라고 겁을 주며 피해자를 묶어둔다. 이렇게 집단의 동조 압력과 군중 심리까지 더해지면, 개인은 더욱 판단력을 잃고 휘둘리게 된다.
사회적 확산을 막기 위해선 개인 간 신뢰를 악용한 사기 수법을 인지하고 경계해야 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나 친척의 권유라도, 투자나 사업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그 친구 또한 사실은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가 전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주변 모두가 한다고 해서 덩달아 따라가기 전에, 집단 전체가 착각에 빠져 있을 가능성을 항상 생각해봐야 한다. “모두가 믿는다”는 사실이 진실의 보증수표는 아니라는 걸 명심하길 바란다. 역사상 발생한 많은 사기는 “다 함께 속은” 사례들이다.
마지막으로, 정보의 투명한 공유가 사회적 확산을 차단하는 열쇠이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창피함 때문에 입을 닫지 않고 용기 내어 알려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다. 미국 FTC(연방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소액 피해 신고율은 2%, 고액 피해 신고율은 7% 수준이라고 한다. 이걸 뒤집으면 사기 피해자의 90% 이상이 신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남들에게 어리석어 보일까 봐 숨기기 때문인데, 이렇게 숨길수록 똑같은 수법이 계속 번지게 된다. “나도 당했다”는 경험을 공유하고 사회 전반에 경각심을 확산시킬 때 비로소 사기의 전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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