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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들이 경남 청년人·家]하동 다른파도 권경민·이강희 대표

소재 선정에는 IT 업계 출신다운 데이터 분석이 동원됐다. 대봉감은 향이 약해 배제했고, 매실은 이미 포화... IT 업계에는 '바퀴를 새로 발명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탄탄한 인프라를 활용해 최고의 효율을...

[이들이 경남 청년人·家]하동 다른파도 권경민·이강희 대표

하동 ‘다른파도’ 권경민(사진 왼쪽), 이강희 대표.

하동군 악양 출신 남편과 하동읍 출신 아내. 같은 고향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다 이제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배를 탄 이들이 있다. 하동의 지역 자원인 배를 활용해 술을 만드는 ‘다른파도’의 권경민(28)·이강희(30)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남의 브랜드 키우다보니, 내 브랜드가 고팠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영화 같았다. 고교 졸업 후 상경해 게임 개발자로 일하던 남편 이강희 대표는 입사 5년 차에 접어들 즈음 해외 취업을 꿈꾸며 퇴사했으나 코로나19로 그 문이 닫히면서 고향 하동으로 돌아왔고, 베이커리 카페를 열었다.

비슷한 시기, 하동에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아내 권경민 대표는 마땅한 작업실을 찾다 이 대표의 카페에 발을 들였다. ‘사장과 단골’로 시작된 인연은 금세 비즈니스 파트너로 이어졌다.

“대뜸 동업을 하자더라고요. 본인은 돈이 없으니 제 돈을 좀 쓰자면서요(웃음). 처음엔 황당했지만, 돌이켜보니 저도 강희 님 같은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구상은 많지만 선뜻 일을 벌이지 못하던 저와 달리 강희 님은 실행력이 엄청났거든요.” 권 대표의 회상이다.

매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사업을 구상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비즈니스 파트너십 이상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업무적 보완성이 삶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깊은 신뢰로 발전한 것.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었고, 그렇게 ‘다른파도’라는 배에 함께 올라탄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두 사람은 지금도 서로를 ‘님’이라 부른다. 비즈니스 파트너로 출발한 ‘다른파도’는 초기에 브랜드 컨설팅 회사로 이름을 알렸다. 개발자 출신 이 대표가 웹사이트와 자동화 툴을 구축하면, 디자이너 권 대표가 감각적인 비주얼을 입혔다. 전국에서 일감이 밀려들 정도로 성공 가도를 달렸지만, 갈증은 여전했다.

지역에 있기에, 이곳에서만 가능한 우리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창업 목표는 ‘돌직구’다. 거창한 서사보다 “무조건 돈을 많이 벌겠다”는 현실적 목표를 앞세웠다. 대개 청년 사업가들이 ‘전통 수호’나 ‘가업 계승’ 같은 감성 마케팅을 내세우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없는 서사를 꾸미기보다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집중했다.

‘하동에 오면 무엇을 사고 싶을까?’라는 질문의 끝에 ‘하동꿀배주’가 있었다. 유통기한이 길어 선물로 적합하고, 여행 기념품으로 부담 없는 가격대의 술을 기획했다. 소재 선정에는 IT 업계 출신다운 데이터 분석이 동원됐다.

대봉감은 향이 약해 배제했고, 매실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빅데이터 결과 한국인이 좋아하는 과일 3위이자 이미 음료·빙과 시장에서 검증된 ‘배’가 최종 낙점됐다. “그래, 이거다!” 확신이 선 순간이었다.

◇철저히 고객 입맛에 맞춘 접근

하동배로 술을 만들기로 했을 때, 이들은 장인을 찾아가 술 빚는 법을 배우는 대신 전문가를 찾아갔다. IT 업계에는 ‘바퀴를 새로 발명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탄탄한 인프라를 활용해 최고의 효율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요구사항은 명확했다. “원물은 하동배를 쓰되, ‘탱크보이’처럼 대중적인 맛에 약간의 산미를 더할 것.” 판단 기준은 오직 하나, ‘고객의 입맛’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3월 최참판댁에 1호점을, 올해 3월 화개장터에 2호점을 열었다. 출시와 동시에 시장은 반응했고, 1년도 채 되지 않아 본업이었던 컨설팅 업무를 줄여야 할 만큼 매출이 급증했다.

하지만 이들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구매 고객 3000건의 피드백을 수집·분석해 올봄 ‘벚꽃주’를 내놓았다. 하동 화개 십리벚꽃길의 정서를 담은 이 술은 복숭아 맛을 구현했다. “복숭아는 하동 특산물이 아니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들의 경영 철학이 드러난다.

“고객이 원하는 맛을 위해 배 함량을 무작정 늘리면 술이 너무 달아집니다. 그건 고객이 원하는 게 아니죠. 원물 소비를 늘리는 건 행정의 영역이지, 사업가가 고객에게 강요할 숙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역과의 연결을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상생한다. 고객 기호에 맞는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하동 쌀과 배의 소비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농가나 지역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우지 않아도, 시장에서 살아남는 제품이 결과적으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구조다.

착해서가 아니라 ‘현명해서’ 지역과 손을 잡는 것. 이것이 권경민·이강희 대표가 말하는 “하동에서 쌓아가는 것”의 진짜 의미다. 이들의 거침없는 ‘다른 파도’는 이제 막 하동의 앞바다를 넘어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객’을 넘어 ‘팬’이 되는 브랜드를 향해

대화를 나눌수록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기질이 뚜렷하게 읽힌다. 이강희 대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넘어진 게 아니라 잠시 땅에 붙어 숨을 고르는 것”이라 여기며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데 거침이 없다.

반면 권경민 대표는 진중하다. 이 대표가 쏟아내는 아이디어를 현실의 언어로 번역하고, 우선순위와 속도를 조절하는 ‘절제’가 그의 몫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스스로를 ‘엑셀러레이터(이강희)’와 ‘브레이크(권경민)’라고 부른다.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이성이 같은 목표를 향해 공명하는 힘, 그것이 ‘다른파도’를 지탱하는 동력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철저한 시장 중심 사고’였다. 이러한 확신이 있기에 이 대표는 예비 창업자들에게도 냉정한 조언을 건넨다.

“창업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겁니다. 고객이 지불한 만큼의 만족을 주는 것, 그게 ‘가치’라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강조되는 이들의 ‘고객 우선’ 철학은 브랜드의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 뿐, 자신들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진짜 이야기를 쌓아가는 중이다.

그 기록이 언젠가 강력한 브랜드 서사가 돼,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지리산과 섬진강, 녹차가 먼저 떠오르는 하동에도 남해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지었다는 이름, ‘다른파도’. 고향 하동에서 두 사람은 그 이름처럼 기존과는 분명히 다른, 새롭고 신선한 파도를 일으키고 있다.

정영식기자 jys23@gnnews.co.kr

하동군 악양면 최참판댁에 문을 연 하동꿀배주 1호점 외경. 사진=다른파도

하동꿀배주 선물세트. 사진=다른파도

하동스파클링과 하동꿀배주. 사진=다른파도

하동 악양 부부송을 배경으로 한 하동스파클링과 하동꿀배주. 이들은 하동의 유명한 관광명소와 관광자원원들을 배경으로 자신의 제품을 알리는 콘텐츠 제작에도 열심이다. 사진=다른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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