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물·돌 이용 자연의 순환 원리 시각화
자연의 질서 끊임없는 변화 표현
돌 지나간 흔적은 인간 성장 기록
흐릿한 터치·번짐 기법은 ‘기억’
언뜻 보면 극사실회화처럼 보여
시간과 순환의 의미 전달이 중요
사실적 기법 빌려도 개념적 회화
윤위동 작가가 갤러리 바제에 걸린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기자
갤러리 바제(BAZE) 개관전으로 초대되어 전시를 시작한 윤위동 작가는 모래 위의 돌을 그린다. 캔버스 표면에 고운 입자의 모래를 도포하고, 그 위에 돌 하나와 그 돌이 모래 위를 지나간 흔적을 그린다. 그의 작업은 “모래가 뭉쳐 돌이 되고, 돌은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순환 원리에서 출발한다. 돌과 모래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설명하는 표상이다.
윤위동이 자연의 순환에 주목한 데는 오랜 시간 이어진 개인적 고독과 방황이 한몫했다. 극사실 인물화를 그리던 시절 작업에 지쳐 있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홀로 지내며 매일 산책을 반복하던 어느 날,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고, 흙이 다시 돌이 되는 자연의 순환이 의식에 와서 닿았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그가 “고통스럽게 자연이 들어왔다”고 표현했다. “외로움과 가난, 육체적 고통을 겪던 시기에 자연을 바라보는 감각이 열렸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계절이 바뀌고 생명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 역시 거대한 순환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특히 개미 군집의 질서와 죽은 새를 마주한 경험에서 자연이 인간보다 훨씬 정교한 생명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자연은 어느 하나도 멈춰 있지 않았고,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어요.”
윤위동 작
자연의 질서를 의식하게 되자 작업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인물의 외형을 재현하던 시선을 내려놓고, 모래와 물, 돌 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순환하는 자연의 질서에 주목했다. 이 시기부터 그의 작업에는 시간과 생성, 소멸과 재생에 대한 이야기가 스며들었다.
그에게 화면 속 모래는 돌이 되기 이전의 가능성이고, 돌은 수많은 시간을 견뎌온 존재였다. 여기에 물이라는 또 하나의 개념이 추가된다. 물은 흙이 돌이 되는 과정을 공부하다 만난 존재다. 그에게 물은 모래와 돌을 이어주는 생명의 매개체라는 개념으로 활용됐다. 흙이 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수분이 필요하다는 원리였다.
“물은 흙을 돌로 응결시키는 존재이며, 계곡의 바위를 둥글게 다듬고, 바닷가의 돌을 오랜 시간 깎아내는 시간 자체입니다.”
물은 그의 화면에서 돌 위의 물방울로 묘사됐다. 화면 속 물방울은 마치 땀처럼, 때로는 눈물처럼 다가온다. 차갑고 무생물인 돌이 화면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살아 있는 생명체로 거듭난 결과다. “모래가 돌이 되는 과정을 공부하면서 물이 매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제 작품에서 돌과 모래와 함께 물도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됐어요.”
윤위동에게 순환론은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자연을 통해 체득한 생존 철학이다. 그의 철학은 모래-물-돌이라는 연결고리의 서사로 시각화된다. 그러나 그는 순환론적 세계관을 단순한 자연의 질서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 보고, 순환론적 세계관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간 삶의 원리에 대한 은유로 확장한다.
그가 “화면 속 돌이 지나온 자국은 돌의 인생이기도 하지만 이리저리 흔들리고, 때로는 뒤로 밀려나기도 하면서 결국 자신의 자리까지 이른 시간의 궤적”이라고 했다. “돌이 지나간 흔적이 제게는 한 인간이 살아오며 겪은 선택과 상처, 기억과 성장의 기록처럼 다가왔습니다.” 이는 그의 화면 속 돌과 모래의 여정이 ‘인간의 초상’인 배경이다.
화면 속 모래는 갈색모래와 백색모래를 동시에 사용한다. 시작은 갈색모래였다. 갈색모래는 흙의 물성과 대지의 질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모래가 뭉쳐 돌이 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였다. 여기에 물방울을 더해 흙과 물이 만나 돌을 생성하고, 물이 다시 돌을 깎아내는 자연의 시간을 화면에 담아냈다.
백색모래는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며 영감을 받은 재료다. 하얗게 쌓인 눈을 바라보던 순간, 흰모래가 눈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백색모래를 작업에 도입하게 됐다.
백색모래는 그에게 단순한 색의 변화 이상의 의미로 작동했다. 작품의 상징으로 확장시킨 것. 화면 속 흰 입자는 모래이면서 동시에 눈으로 읽히고, 겨울을 견뎌낸 돌의 시간과 생명의 인내를 떠올리게 했다. 하나의 재료가 계절과 시간, 생명의 순환을 동시에 품게 된 것이다. 백색모래는 자연의 순환이라는 기존의 서사에 기억과 계절, 시간의 층위를 더하는 매개가 됐다.
그는 “흰모래를 사용하면 모래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눈의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제 백색 모래 대신 물감만으로 모래의 질감과 흔적을 표현한 작품도 선보였다. 윤위동은 이를 “‘기억’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자연의 순환을 탐구하던 작업이 기억의 순환으로 확장되고 있음에 대한 언급이었다. 실제 모래가 자연의 시간과 물질성을 상징한다면, 물감으로 재현한 모래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 삶의 흔적을 담아내는 새로운 조형 언어가 된다.
‘기억’이 모티브인 신작에서는 실제 모래로 순환론을 서술할 때와 표현법도 달라졌다. 흐릿한 터치와 번지는 기법을 도입한 것. 이는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기억에 대한 시각화다.
작가는 돌이 지나간 자국을 단순한 흔적이 아닌 기억 그 자체로 바라본다.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희미해지는 것도 있고, 선명해지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는 기억의 그런 속성을 흐릿함과 선명함의 대비로 표현한다.
“사람은 어제 일보다 오히려 오래전 삶의 전환점이나 깊은 상처를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희미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선명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기억의 속성을 회화로 옮기고 있습니다.”
윤위동의 작품은 언뜻 보면 극사실회화처럼 보인다. 실제 모래와 구분하기 어려운 화면, 돌의 질감과 물방울의 투명함은 치밀한 관찰과 높은 재현력을 바탕으로 한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업을 극사실회화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극적으로 사실적으로 그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자연이 품고 있는 시간과 순환의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런 까닭에 멀리서 보면 사실적으로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붓질과 화면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난다. “굳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윤위동의 작업은 사진처럼 정교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든다”고 설명했다. 작업과정에서 단순한 재현을 거부하는 태도는 그의 작업이 구상으로 국한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작업은 직접 모래판을 만들어 돌을 굴리고 흔적을 만든 뒤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포토샵으로 화면을 정리한 후 회화로 옮긴다.
작업이 실제 자연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자연을 자신의 해석과 조형 언어로 재구성하는 방식에서 그의 회화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흐린다.
실제로 화면 속 돌이 구체적인 형상을 띠지만, 모래 위에 남겨진 흔적은 어느 순간 추상적인 선과 면으로 읽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는 극사실적 기법을 차용하면서도 자연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는 그의 작업을 개념적 회화로 이끄는 배경이다. “제 작업은 사실적인 재현을 빌려 시간과 순환, 존재의 흔적을 사유하게 만드는 ‘철학적 리얼리즘’에 더 가깝습니다.” 윤위동 갤러리 바제 개인전 ‘존재의 초상(Portraits of Being)’은 8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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