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왼쪽)이 리플렉션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장면과 아시쉬 수리야반시 쿠팡 엔지니어링 부사장이 지난 17일 엔비디아 AI 컨퍼런스&엑스포에서 발표하는 장면 갈무리. [신세계그룹·쿠팡]
[직썰 / 권신혁 기자] 유통 거물들이 ‘상점’이라는 낡은 허물을 벗고 ‘AI 기업’으로의 탈바꿈을 선언했다. 단순 물건 판매를 넘어 데이터를 자산화하고 인프라를 대여하는 아마존의 성공 모델을 이식하겠다는 구상이다. 내수 침체와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 극복을 위한 신사업 돌파 전략이다.
◇인프라에 꽂힌 유통가…“AI 데이터센터가 미래”
신세계그룹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공식화하며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용진 회장은 미국 리플렉션AI와 손잡고 250메가와트(MW)급 초대형 데이터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단순한 전산실 확충을 넘어 설계부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유통 AI 풀스택’ 체계 완성 의지다.
쿠팡 역시 기술 기업으로서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 엔비디아 GTC에서 공개한 ‘AI 팩토리’ 구축 성과가 대표적이다. 쿠팡은 자사 AI 컴퓨팅 서비스인 ‘쿠팡 인텔리전트 클라우드(CIC)’를 통해 물류 스케줄링과 재고 관리 효율을 극대화했다.
CIC는 이미 외부 기관과 스타트업에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며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사(CSP)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유슬기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쿠팡은 아마존과 유사한 형태로 진화할 것”이라며 “AI 도입을 통해 유통과 물류 전반의 비용 절감 효과가 커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마트 또한 연내 합작법인(JV)을 설립해 AI 커머스 개발과 CSP 영역 확장을 꾀한다. 이마트 관계자는 “아마존웹서비스(AWS)처럼 국내 시장에 특화한 AI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0%대 성장’ 늪 빠진 유통업…신사업이 유일한 탈출구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유통사들이 AI 인프라 선점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본업의 성장판이 닫혔기 때문이다. 국내 유통 시장은 내수 부진과 저출생 여파로 구조적 저성장기에 진입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소매유통시장 예상 성장률은 0.6%에 불과하다. 지난 2년간 기록한 0.8~1.1%보다도 낮은 수치다. 특히 오프라인 업태의 위기는 심각하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은 0.9% 역성장이 점쳐지며, 편의점 성장률도 0.1%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대규모 AI 투자는 기존 유통업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절박한 시도”라며 “전통적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행보”라고 설명했다.
◇‘경직된 조직문화’가 걸림돌…혁신인가 신기루인가
장밋빛 전망은 잠깐이다. 기술 기반 이커머스가 유통시장의 60%를 장악하는 동안 오프라인 기반 공룡들은 ‘관성’과 ‘경직된 문화’ 탓에 대응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과거 롯데가 ‘롯데온’을 통해 온라인 혁신을 시도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대대적인 AI 투자를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전환이 더디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시장은 유통 공룡들의 광폭 행보가 ‘한국형 아마존’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 아니면 실체 없는 ‘AI 신기루’에 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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