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범진한국환경체육청소년연맹 이사장
대한민국 마라톤 역사에는 시대를 전환한 위대한 질주들이 존재한다.
지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암울한 식민지 조국의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존심과 희망을 안겨준 손기정 선생의 2시간 29분 19초가 그 서막이었다면 그로부터 반세기 뒤인 1984년에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인 이정표가 세워졌다.
1984년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이홍열 선수는 2시간 14분 59초로 한국 신기록을 작성했다. 이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2시간 15분’이라는 마의 장벽을 무너뜨린 쾌거이자 한국 마라톤의 질적 도약을 증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충남 대성고교와 실업팀 진로에서 선수생활을 하다 지난 1982년 뒤늦게 경희대에서 입학한 그는 장거리와 역전 마라톤의 최강자로 우뚝섰다. 그는 강인한 체력과 불굴의 의지로 수많은 대회를 제패하며 한국육상계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갔고 당대 최고의 장거리 선수였다.
그는 1981년 동아마라톤 우승, 1983년 뉴질랜드 해밀턴 세계마라톤 대회 우승, 1984년 LA 올림픽 출전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고는 은퇴한 뒤에는 다른 엘리트 선수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걸었다.
트랙을 떠난 그는 스포츠의학 연구에 투신해 경희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평생을 달리기와 걷기, 그리고 운동치료(Exercise Therapy) 메커니즘 연구에 헌신해 왔다.
그가 최근 출간한 저서 '왜 당신의 러닝은 독이 되는가?'는 그의 이러한 평생의 학술적·임상적 연구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러닝 퍼스트’ 시대를 맞이했다. 수많은 시민이 건강 증진을 위해 도로와 트랙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양적 팽창의 이면에는 근골격계 질환의 급증이라는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무릎 관절 손상, 척추 디스크 탈출증,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염 등은 잘못된 주법과 과도한 부하가 초래한 대표적인 운동성 질환들이다.
이홍열 박사는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그는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기술’을 설파하지 않는다.
척추와 관절, 신경과 근육의 유기적 균형을 바로잡는 인체역학(Biomechanics)적 원리를 기반으로 왜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신체를 파괴하는 독으로 변모하는지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특히 이 책이 의료계와 스포츠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는 이유는 ‘운동을 통한 신체 자생력(Self-healing power)의 회복’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에 의존하기에 앞서, 올바른 운동 처방과 역학적인 움직임을 통해 인체 고유의 치유 능력을 극대화하는 지속 가능한 헬스케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또한 그는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스포츠지도사총연합회 회장으로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K-러닝 전문 지도사’ 양성 체계의 구축을 제안하고 있다.
현재 국내 생활체육 분야에서 러닝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나 이들을 체계적·과학적으로 지도할 전문 전문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비전문가 중심의 동호회 활동 속에서 일반 시민들은 부상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홍열 박사가 제시한 과학적 러닝 교육 시스템과 지도자 인증 체계는 대한민국 생활체육의 질적 수준을 선진국형 모델로 견인할 하나의 표준(Standard)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6년째 묵묵히 이어오고 있는 ‘이홍열 시민 마라톤 무료교실’은 그의 이러한 이타적 철학을 대변하는 살아있는 증거다. 과거 그가 세운 한국 신기록보다, 은퇴 후 국민 건강과 생활체육 저변 확대를 위해 바친 시간들이 우리 사회에 더 위대하고 값진 자산으로 남는 이유다.
스포츠는 단순히 메달과 기록만을 남기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진정한 스포츠 지도자는 현역 시절의 영광을 넘어, 사회 구성원의 건강한 삶과 후학 양성에 기여할 때 비로소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다.
과거 손기정 선생이 암울한 시대에 민족의 염원과 희망을 품고 달렸다면, 오늘날 이홍열 박사는 초고령화 시대를 앞둔 대한민국 국민들의 건강한 미래를 향해 달리고 있다.
육상계의 선배로서 이번 신간이 단순한 마라톤 지침서를 넘어 잘못된 운동 관행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에게 올바른 이정표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마라톤의 전설은 이제 국민 건강 운동의 새로운 지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홍열 박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