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성 기자 〈리서치센터 국장·칼럼니스트〉
〈월가의 경고〉 ② 경고음은 울렸는데 목표치는 더 높아졌다
■ BIS는 AI 투자 붐을 철도광풍·닷컴버블과 비교
■ 마이클 버리와 레이 달리오는 버블 위험을 경고
■ 노무라는 코스피 목표치를 1만∼1만1000으로 대폭 상향
■ AI는 진짜지만 투자 회수와 주가의 적정성은 아직 미지수
▲국제결제은행은 AI 투자 붐을 영국 철도광풍과 닷컴버블에 나란히 놓았다. 월가의 일부 투자자는 버블 위험을 경고했지만 글로벌 투자은행은 코스피 목표치를 1만∼1만1000으로 높였다. AI의 미래와 주가의 적정 가격을 놓고 금융시장이 갈라졌다. 일러스트=AI 생성
경고음은 울렸다.
그런데 목표치는 더 높아졌다.
국제결제은행은 AI 투자 과열을 경고했다.
마이클 버리는 반도체 하락에 베팅했다.
레이 달리오는 1929년과 2000년을 소환했다.
그러나 노무라는 코스피 목표치를 1만∼1만1000으로 올렸다.
누군가는 버블을 봤다.
누군가는 슈퍼사이클을 봤다.
같은 AI를 보고도 결론은 정반대였다.
■ BIS는 철도광풍과 닷컴버블을 소환했다
국제결제은행은 올해 연차경제보고서에서 AI 투자 붐을 영국 철도광풍과 닷컴버블에 비교했다.
철도와 인터넷은 실제로 세상을 바꿨다.
그러나 기술이 진짜라는 사실이 모든 투자를 정당화하지는 않았다.
자본은 실제 수익보다 먼저 몰렸다.
기업들은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두려움에 투자를 늘렸다.
BIS는 투자 수익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 자금 조달이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의 투자 붐이 장기 침체로 바뀔 위험도 짚었다.
핵심은 AI가 가짜라는 주장이 아니었다.
진짜 기술에도 과잉투자는 생길 수 있다는 경고였다.
■ 버리와 달리오는 가격을 의심했다
마이클 버리는 지난 5월 기술주와 반도체주가 정상적인 낙관의 선을 넘어섰다고 경고했다.
7월에는 반도체 ETF와 AI 관련 종목에 대한 하락 베팅을 확대했다.
버리가 주목한 것은 AI 산업의 모순이었다.
빅테크는 몇 년 뒤 설비투자 속도가 둔화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장비 공급 기업의 높은 주가는 강한 수요가 오래 이어져야 설명된다.
장비를 사는 기업은 투자 정점을 말한다.
장비를 파는 기업의 주가는 장기 성장을 반영한다.
레이 달리오도 비슷한 경고를 냈다.
그는 자신의 버블 지표가 1929년과 2000년 당시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당장 붕괴가 시작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가격과 낙관이 역사적 위험 구간에 접근했다는 경고였다.
AI는 실제 산업을 만들고 있다.
기업의 이익도 늘고 있다.
그러나 좋은 기술이 언제나 좋은 가격을 뜻하지는 않는다.
■ 그런데 노무라는 목표치를 1만1000으로 올렸다
노무라는 코스피 목표 범위를 기존 7500∼8000에서 1만∼1만1000으로 높였다.
근거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었다.
AI 인프라 투자가 HBM과 범용 메모리 수요를 함께 끌어올릴 것으로 봤다.
한국 기업의 이익과 자기자본이익률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익은 실제로 늘었다.
HBM 수요도 여전히 강하다.
문제는 가격이다.
코스피가 이미 급등한 뒤에도 목표치를 높인 근거가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반도체 이익이 예상보다 줄면 목표치가 어디까지 낮아지는지도 공개돼야 한다.
낙관에는 숫자가 붙는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하락 목표치는 좀처럼 제시되지 않는다.
■ AI는 진짜다, 가격은 아직 모른다
현재의 AI 기업은 닷컴버블 당시 무수익 인터넷 기업과 다르다.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메타는 실제 매출과 이익을 낸다.
막대한 현금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버블은 무수익 기업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좋은 기업의 주가도 지나치게 오를 수 있다.
실제 이익보다 기대가 더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인터넷은 닷컴버블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철도도 철도광풍 이후 산업의 기반이 됐다.
기술은 살아남았다.
과도한 기대와 가격이 먼저 무너졌다.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전망과 AI 주식이 너무 비싸다는 판단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 이제는 투자 회수를 물어야 한다
시장이 확인해야 할 것은 AI의 가능성이 아니다.
AI에 들어간 돈이 언제부터 이익으로 돌아오는가다.
데이터센터 투자는 실제 매출을 얼마나 만들 것인가.
빅테크의 설비투자는 언제 정점을 지날 것인가.
반도체 공급이 늘어난 뒤에도 현재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가.
기대는 이미 주가에 들어갔다.
이제는 현금이 들어와야 한다.
■ 금융당국에 남은 질문
한국 시장에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AI 논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종목에 집중돼 있다.
여기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까지 붙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답해야 한다.
두 기업에 대한 지수 집중을 시스템 위험으로 보고 있는가.
레버리지 ETF가 급등락을 증폭할 가능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상품 상장 전 변동성 충격을 어떤 방식으로 검증했는가.
개인투자자에게 일일 배수 상품의 위험을 충분히 알렸는가.
경고음은 이미 울렸다.
그러나 시장은 목표치를 더 올렸다.
AI가 진짜라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 가격까지 진짜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누군가는 기술의 미래를 본다.
누군가는 미래를 너무 일찍 당겨 쓴 주가를 본다.
한국 증시는 지금 그 두 전망이 충돌하는 전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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