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본부. 연합뉴스
“우리 집은 중산층일까?”
월급이나 집값만 놓고 보면 중산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생활 수준을 유지하면서 미래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따져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전체 가구 가운데 소득·소비·저축은 물론 자산과 부채, 노후준비까지 갖춘 이른바 ‘진짜 중산층’은 4가구 중 1가구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발표한 ‘대한민국 진짜 중산층’ 보고서에 따르면 6가지 조건 가운데 5가지 이상을 충족한 가구는 전체의 24.6%에 그쳤다. 6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한 가구는 8%에 불과했다.
소득만 보면 절반 이상이 중산층
흥미로운 것은 기준을 하나씩 추가할 때마다 중산층의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연간 가처분소득이 중위값의 75~200%에 해당하는지를 기준으로 하면 전체 가구의 52.9%가 중산층 범위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에 실제 소비 수준을 추가하자 비중은 43.2%로 떨어졌다.
소비하고도 소득의 일정 부분을 저축할 수 있는지를 따지자 39.9%가 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순자산과 부채 부담, 노후준비 상태까지 따져 현재의 생활을 미래에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자 비중은 24.6%까지 내려갔다.
말 그대로 ‘버는 돈’만으로 중산층을 판단하면 두 가구 중 한 가구가 중산층이지만, 그 생활을 지속할 능력까지 따지면 네 가구 중 한 가구꼴로 줄어드는 셈이다.
‘진짜 중산층’의 월 소득 631만원, 소비는 319만원
그렇다면 이들이 실제로 벌고 쓰는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진짜 중산층 가구의 가처분소득 중앙값은 월 631만원이었다. 연간으로는 7572만원이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319만원, 연간 3822만원으로 조사됐다.
단순 계산하면 소비하고 남는 돈이 연간 약 3750만원이다.
즉 진짜 중산층은 단순히 소득이 높은 가구라기보다 소득에서 생활비를 지출하고도 저축할 여력이 있는 가구에 가깝다.
연구소가 중산층의 핵심 조건으로 소득뿐 아니라 소비와 저축을 함께 제시한 이유다.
집값보다 눈여겨볼 숫자는 ‘금융자산’
자산 구조에서도 특징이 나타난다.
진짜 중산층 가구의 순자산 중앙값은 4억1705만원이었다. 전체 가구의 순자산 중앙값 2억3860만원보다 약 1억7800만원 많다.
금융자산 중앙값은 1억1230만원으로 전체 가구의 6312만원보다 약 1.8배 많았다.
자가 거주 비율은 72.5%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단순히 ‘집이 있느냐’가 아니다.
연구소는 진짜 중산층을 주거 기반을 갖추면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도 충분히 축적한 가구라는 특징으로 설명했다.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자산 대부분이 집 한 채에 묶여 있는 가구와 일정 규모의 금융자산을 함께 보유한 가구는 같은 순자산을 갖고 있더라도 생활의 안정성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의미다.
중산층의 기준, ‘얼마나 버느냐’에서 ‘얼마나 지속하느냐’로
연구소가 제시한 ‘진짜 중산층’의 기준은 크게 두 단계다.
먼저 현재의 생활 수준을 봤다.
가처분소득, 소비지출, 저축 여력 등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여기에 미래의 지속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 순자산, 부채 부담, 노후준비 가운데 최소 두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가처분소득은 연 2808만~7488만원, 소비지출은 연 1567만원 이상, 소비 후 처분가능소득의 10% 이상 저축 가능 등이 조건에 포함됐다.
순자산은 2억3860만~6억9432만원 범위, 연간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처분가능소득의 30% 이하, 노후준비와 생활비 충당 상태는 ‘보통’ 이상이어야 한다.
결국 이 기준에서 중요한 것은 ‘부자냐 아니냐’가 아니다.
지금 적당히 살 수 있는가와 함께, 지금의 생활을 앞으로도 유지할 수 있는가다.
‘월급 600만원’만으로는 알 수 없는 중산층의 현실
이번 보고서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월 600만원을 버는 가구와 월 600만원을 버리면서도 저축이 거의 불가능한 가구가 같은 중산층일까.
집값이 높은 지역에서 수억원짜리 아파트를 보유했지만 대출 원리금 부담이 큰 가구와, 상대적으로 집값은 낮지만 금융자산과 저축 여력을 확보한 가구의 경제적 안정성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보고서는 이런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소득 중심의 중산층 개념에서 생활의 지속 가능성을 포함한 개념으로 기준을 넓혀야 한다고 제시한다.
김진웅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 연구위원은 “진짜 중산층은 단순히 비싼 집을 보유한 가구가 아니라 주거기반과 함께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금융자산을 충분히 축적한 가구의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득만으로 보면 전체 가구의 절반 이상이 중산층에 해당하지만, 적정한 소비생활을 누리면서 저축하고 자산·부채·노후준비까지 갖춘 가구는 네 가구 중 한 가구꼴”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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