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금융시장과 무역·물류 결제망을 연결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미지. /ChatGPT로 생성한 이미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에서 벗어나 무역과 기업 내부 정산 등 실사용 분야를 먼저 확보하는 방향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결제 지연을 해소하면 기업과 소상공인이 연간 최대 1조74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만큼 제한된 영역부터 실증에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다. 다만 준비자산과 상환권을 명확히 하고 발행·유통·정산을 아우르는 감독 체계를 마련해야 금융안정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민병덕·이강일·강준현·김현정 의원실과 한국경제연구원이 공동 개최한 '금융질서 대전환과 K-스테이블코인 발행 성공방정식' 세미나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처와 경제적 효과, 제도 설계 방안이 논의됐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이날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인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올해 하반기에는 반드시 통과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이어 스테이블코인 발행·유통과 사업자 규율 등을 다루는 2단계 입법이다.
민 의원은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를 인용해 법정통화 담보형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의 99.4%가 달러 기반이라며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사실상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충분한 준비자산과 상환권을 바탕으로 한 신뢰, 실제 사용처, 글로벌 연결성을 확보한다면 K팝·드라마·게임·웹툰 등 K-콘텐츠 경제권의 결제 인프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봤다.
민 의원은 "제도는 혁신의 발판이 돼야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며 "동시에 신뢰 없는 혁신을 시장에 맡겨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뉴시스
◆무역·기업 정산부터…'TIDE 전략' 제안
첫 번째 발표를 맡은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성패가 발행 주체보다 초기 사용처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강 교수는 ▲수출입대금 결제(Trade) ▲기업 계열사·해외법인 내부 정산(Internal)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확산 대응(Defense) ▲인공지능 서비스 정산(Emerging AI)을 축으로 하는 'TIDE 전략'을 제시했다.
수출대금이나 협력회사 대금 지급처럼 거래 규모가 크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분야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해야 한다는 구상이다. 해외법인과 계열사 간 내부 정산, 국내 플랫폼 결제망과 인공지능 에이전트 간 소액·반복 거래도 활용처로 꼽았다.
강 교수는 "경제학적 수수료가 사실상 0에 가까운 스테이블코인은 국제 무역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어 수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경제 주체들이 많이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장도 할 수 있다. 모든 활용처를 동시에 추진하지 않고 실거래와 감독·통제가 가능한 부분부터 실증에 나서면 된다"고 제안했다. 전면적인 범용 코인 경쟁에 나서기보다 특정 무역 통로나 기업 간 거래 등 편익과 위험을 확인할 수 있는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도입하자는 설명이다.
◆결제비용 연 1조7400억원 절감…예금 이탈은 제한적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면 지급결제 지연을 해소해 기업과 소상공인의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 간 거래의 50%가 스테이블코인 결제로 전환되는 상황을 가정할 경우 해외 내부송금 비용 약 4377억원과 운전자본 기회비용 약 8600억원 등 기업 부문에서 연간 최대 1조2977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소상공인의 카드매출 선정산 비용 약 4455억원까지 더하면 전체 절감 효과는 연간 약 1조7400억원에 달한다.
스테이블코인 확산으로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 대출 재원이 축소될 수 있다는 '탈중개화' 우려는 예상보다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가계와 기업이 보유 자금의 10%를 원화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해도 최종적인 은행권 예금 순유출은 총예금의 2.49%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발행사가 준비금을 은행에 다시 예치하고 스테이블코인을 받은 기업과 소비자도 운영 과정에서 이를 예금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총예금의 97% 이상이 은행권에 남는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시스템을 대체하는 별도 체계라기보다 자금 순환 속도를 높이는 보완재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준비금을 현금과 예금, 단기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제한하고 발행사 자산과 분리해 보관하는 한편 파산절연과 상시 액면 상환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최초의 엔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JPYC의 사이토 쇼타 사업개발·마케팅 총괄은 일본의 제도화와 발행 경험을 소개했다.
사이토 총괄은 "일본의 경우 기존 법 체계에 스테이블코인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다 보니 발행·상환·이전 등에 제약이 생겼다"며 "한국에서도 발행만 허용하고 유통·교환·커스터디 규제가 지나치게 복잡하면 실제 산업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진 한국투자증권 디지털자산전략부장은 종합토론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토큰증권(STO) 생태계의 결제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에 주목했다.
박 부장은 "언젠가 토큰증권이 퍼블릭 체인에서 발행되고 결제도 스테이블코인으로 된다면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토큰증권 생태계의 마지막 빈칸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강석 금융감독원 가상자산감독국장은 "입법이 조속히 마무리되도록 기원한다"며 "입법 이후에도 스테이블코인 발행까지 상당한 절차가 남을 텐데 시장과 소통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열린 자세를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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