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국민은행
[파이낸셜리뷰=어기선 기자] 코스피는 한국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지표다.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과 위기를 함께 한 ‘지표’다. 이런 이유로 ‘경제의 거울’이라고 부른다.
1980년을 기준점(100)으로 출발한 코스피는 수십년 간의 산업화, 금융위기, 글로벌 경제 충격을 거치면서 급등과 급락을 반복해왔다. 그 궤적이 바로 코스피 지수다.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로부터
코스피는 1980년 출발했지만 우리나라 최초 공식 증권시작은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부터다. 당시 상장기업은 10여개에 불과했고, 거래량 역시 극히 미미했다. 시장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1960~70년대 거치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 이유는 박정희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내세우면서 수출 중심 산업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방식이 여전히 은행 대출 중심이었고, 주식시장은 보조적인 수단에 머물렀다.
본격적인 전환점은 1980년 코스피가 도입하면서이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한국 경제는 ‘3저 호황(저유가·저금리·저달러)’과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면서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주식시장 역시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였다.
1980년 100이었던 코스피 지수가 1989년 약 1000포인트로 근접하면서 10배 가까운 성장을 했다.
그것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투기성 자금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이른바 ‘주식 광풍’이 불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하지만 코스피는 급등 뒤에 항상 조정이 따른다. 1990년대 초반 들어서면서 주식시장은 빠르게 식어가면서 코스피 역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이에 주식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대중에 퍼지기 시작했다.
가장 큰 충격은 아무래도 1997년 IMF이다. 단순히 금융위기를 넘어 한국 경제 전반을 뒤흔들었다. 그러면서 코스피는 약 900포인트 수준에서 300 이하로 급락했다. 기업이 연쇄 부도를 했고, 대량 실업이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하지만 급락 뒤에는 항상 조정이 따른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금융 시스템 개혁 등으로 인해 한국 경제가 글로벌시장에 본격 편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로 대표되는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면서 산업 구조 역시 고도화됐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코스피는 상승세를 이어갔고, 2007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2000포인트를 돌파했다. 이는 한국 경제가 선진 시장으로 진입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로
하지만 상승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충격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코스피는 2000에서 약 900 수준까지 급락했고,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며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다만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회복 속도는 상대적으로 빨랐다. 경제 체질이 개선된 데다 글로벌 경제와의 연동성이 높아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2010년대 들어서면서 코스피는 2000~2500포인트 사이에서 장기간 박스권을 형성했다. 그러면서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야기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은 코스피 대신 코스닥 또는 부동산이나 해외 투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면서 동학개미 운동이 얼아나면서 2021년 3300포인트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글로벌 경기 둔화 등의 영향으로 시장은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때는 12.3 비상계엄 내란 등으로 인해 코스피는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친 코스피 정책을 구사하면서 한때 6000선을 돌파하기도 했지만 최근 중동발 위기 때문에 5000대 중반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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