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반도체·데이터센터·피지컬 AI(인공지능)를 축으로 한 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쏟아지는 가운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메가특구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대통령이 정치권력으로 ‘기업의 팔을 비튼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양새를 보면 일견 타당한 지적 같지만 나는 그래도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큰 틀에서 지지하기로 했다. 국가 경쟁력 지속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방향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려면 정권의 권력 행사는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은 남아 있다. 방향이 아니라 ‘속도’ 때문이다. 5년마다 대통령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한계가 있어 그렇겠지만 정부와 여당은 유독 이 사안에서 속도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메가프로젝트 민관 합동 제2차 점검회의를 주재하며 아예 “속도전을 넘어서 전격전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속도전 내지는 전격전 속에서 노동과 환경이라는 가치는 속절없이 뒷전으로 밀리는 중이다.
메가프로젝트 ‘방향’은 맞지만
노동·환경 가치 뒷전으로 밀린
정부의 ‘속도전’은 우려스러워
규제 완화가 ‘선례’ 되면 안 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노동 분야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6월 국회에 보고한 특별법 잠정안에는 파견 대상 업무 확대, 기간제 사용 기간을 2년에서 최대 4년으로 늘리는 방안, 소득 상위 3%에 해당하는 관리자·연구개발자에게 주 52시간 상한과 각종 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을 1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방안 등이 담겼다. 산술적으로 16주 연속 주 80시간 노동도 가능해지는 설계다. 이는 노동부 스스로 정한 과로사 인정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러나 이를 추진할 근거는 빈약해 보인다. 정작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은 그간 특별연장근로 제도를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 기존 제도 안에서도 기업은 충분히 성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반면 노사 협상력이 약한 중소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는 장시간 노동이 고스란히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기간제 사용 기간 연장 역시 마찬가지다.
환경 쪽 우려도 가볍지 않다. 이 대통령은 앞서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점검회의에서 “같은 지역인데 환경영향평가를 또 할 필요가 있느냐”며 절차 단축을 직접 주문했다. 지난 10일에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각종 인허가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단축하겠다”고 다시 밝혔다.
계절별 변화를 반영해야 하는 환경영향평가의 취지를 생각하면, 이는 평가 자체를 요식행위로 만들 위험이 있다.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특례법이 메가특구에 그대로 적용되면 여러 후보지를 비교 검토하는 본래의 평가 과정 없이 이미 정해진 부지와 사업 규모에 맞춰 형식적인 절차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걱정스러운 지점은 이런 것들이 쌓여 ‘선례’가 되는 것이다. 지난달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메가특구에서 노동시간 규제를 풀어주면 판교나 용인의 다른 기업들도 형평성을 내세워 같은 특례를 요구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미 통과된 반도체특별법도 메가특구 수준에 맞춰 다시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경영계 일각에서 나온다.
균형발전과 첨단산업 육성은 한국이 지속하는 데 필요한 핵심과제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가 스스로 표방해온 노동존중과 환경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원칙을 저버린다면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노동부와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메가프로젝트 앞에서만은 당분간 ‘모든 정부는 원팀’이라는 생각을 버리기 바란다. 노동부와 기후부는 장기적인 성공을 염두에 두고 ‘레드팀’을 자임하고 노동과 환경이란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래야 최근 어떤 기관장처럼 뒤늦게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홍진수 사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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