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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양현상 칼럼] AI 패권 경쟁, '속도'보다 중요한 세 가지 구조적 변수

거대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소모적인 전면전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 제조·서비스 산업에서 압도적인 '응용 경쟁력'을 갖춘 특화 강국으로 거듭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

[양현상 칼럼] AI 패권 경쟁, '속도'보다 중요한 세 가지 구조적 변수

양현상 박사, 홍익대 대학원 국방AI융합학과 초빙교수

기술의 정점을 향한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속도만으로는 승자를 점칠 수 없다.

스탠포드대 ‘AI 인덱스 2026’ 보고서가 시사하는 본질은 단순한 성능 경쟁을 넘어선 인프라, 정책, 그리고 인재라는 구조적 생태계의 싸움이다.

겉으로 드러난 기술 순위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지속 가능성’과 ‘추격의 메커니즘’이다.

미국의 역설, 압도적 우위 속에 쌓이는 구조적 비용

미국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절반 이상을 점유(5,427개)하고 있으며, 민간 투자 규모는 추종을 불허한다. 2위는 독일(529개)에 10배 넘게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 압도적 지위 이면에는 ‘비용의 한계’라는 리스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제 AI는 더 이상 ‘개발’의 영역이 아닌 ‘운용’의 영역으로 전이되고 있다. 대형 언어 모델(LLM) 학습에 투입되는 천문학적인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Grok 4 학습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자동차 1,000대의 평생 배출량 이상)은 산업적 수용 능력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최근 트렌드인 ‘추론 중심 AI’는 학습 단계보다 훨씬 막대한 연산 자원과 수자원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 즉, AI는 이제 “만들면 끝”인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유지를 위해 막대한 인프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자원 집약적 산업이 되었다.

여기에 비자 정책 변화로 인한 해외 인재 유입의 급감은 미국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인재가 곧 생산성인 AI 산업에서 이 흐름이 고착화된다면, 미국의 우위는 ‘혁신 기반의 질적 성장’이 아닌 ‘자본 투입형 양적 확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미국의 변수는 기술력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환경적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

중국의 역습, 물량 공세를 넘어선 시스템적 실행력

중국의 추격 방식은 영리해졌다. 과거 미국을 뒤쫓던 ‘추격자’의 지위에서 이제는 주요 지표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시 경쟁자’로 체급을 올렸다. 특히 주목할 점은 모델 성능의 격차가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좁혀졌다는 사실이다.

중국 경쟁력의 핵심은 ‘정부 주도 투자(2000년부터 AI 기업에 투입된 정부 자금만 약 270조)’, ‘실전 상용화’, ‘효율성 극대화’라는 삼각 편대에 있다. 민간 자본의 규모는 미국에 뒤처질지 몰라도, 국가 차원의 자원 집중력과 데이터 활용의 과감함은 속도 면에서 우위를 점한다. 기술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현장에 빠르게 배포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피드백 데이터를 통해 모델을 정교화하는 ‘현장 중심의 선순환 구조’는 오픈소스와 경량화 모델이 대세인 현시점에서 강력한 무기가 된다. 중국의 AI는 이제 자본의 크기가 아닌 시스템적 실행력으로 승부하고 있다.

한국의 선택, ‘플랫폼 국가’와 ‘응용 강국’ 사이의 갈림길

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 고무적인 성과를 냈다. 모델 보유 수 세계 3위, AI 도입률 1위, 그리고 반도체 하드웨어의 핵심 플레이어라는 지위는 분명한 기회 요소다. 그러나 이는 견고한 자리가 아닌 ‘과도기적 3위’라는 냉정한 인식이 필요하다.

민간 투자의 절대적 열세와 고급 인재의 해외 유출은 한국 AI 생태계의 기초 체력을 약화시키는 고질적인 문제다. 자본과 인재의 게임에서 체급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규제보다 혁신을 장려하는 정책 환경과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은 한국만의 차별화된 무기다.

이제 한국은 선택해야 한다. 거대 기초 모델(Foundation Model) 시장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소모적인 전면전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특정 제조·서비스 산업에서 압도적인 ‘응용 경쟁력’을 갖춘 특화 강국으로 거듭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패권의 본질은 ‘버티는 힘’과 ‘확산의 속도’

AI 경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이제 시장은 “누가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드는가”라는 단편적 질문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누가 더 효율적인 비용 구조로 오래 버티는가, 누가 더 넓은 산업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시키는가, 누가 더 많은 핵심 인재를 자국으로 끌어들이는가라는 세 가지 본질적 질문이 향후 10년의 패권을 결정할 것이다.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지탱하고 확장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적 시스템’을 갖춘 국가만이 AI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양현상 전문위원 yhs10386@ai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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