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겁다. 망작이냐, 수작이냐는 엇갈린 평가 속에 영화를 두고 각종 ‘해석 투쟁’이 벌어진다. 갑론을박에 동참하기 위해서 <호프>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영화 속 괴수(외계인)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서다. <호프>는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타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괴수는 영화 속에 먼저 냄새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은 괴수가 남긴 지독한 악취에 “이게 무슨 냄새야?”라며 연신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돌린다. 우리가 낯선 타자를 배척하고 혐오할 때 냄새가 강력한 감각적 기제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괴수가 남긴 끈적한 점액질의 체액은 혐오를 더욱 증폭시킨다. ‘완벽한 타자’의 조건을 갖춘 괴수를 마을 사람들은 확신을 갖고 증오한다. “증오하는 자에게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한 점의 회의도 있어선 안 된다”는 독일 저널리스트·작가 카롤린 엠케(<혐오사회>)의 말처럼.
‘완벽한 타자’를 향한 증오와 혐오는
타자의 고통을 제대로 볼 때 힘 잃어
광주와 제주 4·3 다룬 한강의 소설
무지와 오해 벗어날 통로가 되어줘
그런데 한 점 회의를 품는 유일한 존재가 있다. ‘범석’(황정민)이다. 괴수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찰나, 범석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게 된다. 눈이 마주치고, 범석은 괴수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내몰린 괴수의 두려움과 고통을 알아본 것이다. 엠케는 혐오가 대상을 구체적으로 보지 않는 데서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정확히 알게 된 존재를 온전히 미워하기는 어렵다. 범석은 홀로 괴수를 정확하게 보는 사람이다.
이 장면이 눈길을 끈 것은 우리의 일상과 문화 깊숙이 침투한 혐오 문제 때문이다. 스타벅스 ‘탱크데이’와 이를 차용한 배재고의 응원구호에서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공간에 불쑥 솟아오른 혐오의 덩어리를 마주해야 했다. 당혹감과 낭패감 속에 한국 사회가 어디서부터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실패했을까를 되묻게 됐다. 5·18 당시 계엄군의 장갑차에 짓밟히고 총탄에 맞아 숨진 이들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그 이후 지속돼온 호남에 대한 차별과 배제를 ‘안다면’ 우리는 이런 말을 재미 삼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직접 만나 눈을 마주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이런 ‘알아봄’이 가능할까? 문학과 예술은 우리가 만나본 적 없는 사람,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줬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의 참상과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알게 되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의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그 일은 바다 건너 프랑스 아비뇽에서도 일어났다. 올해 세계 최대 공연예술축제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원작으로 한 공연 두 편이 무대에 올랐다. 낭독공연 <새>(Oiseau)와 이탈리아 연극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다. 이탈리아 연출가와 배우는 작품을 위해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했다. 한강의 소설이 이탈리아 예술가들을 제주로 이끌었고, 그들의 연극은 유럽 관객들을 제주 4·3의 기억 앞으로 데려갔다.
한데 정작 한국에서는 5·18과 같은 국가폭력의 기억을 조롱과 혐오의 언어로 훼손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소설이 불티나게 팔렸는데도 그렇다는 것에 더 난망해진다. 5·18과 제주 4·3은 다른 사건이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둘은 국가가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자행한 학살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한강이 <소년이 온다>를 마친 뒤 뭔가에 이끌리듯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필하게 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혐오는 무지와 오해에 기대어 자란다. 혐오의 게으른 서사를 벗어나기 위해선 정확히 알고자 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에겐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우리의 모국어로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여 써낸 소설들이 있다. 한강은 “혐오가 문제라는 일치된 생각을 한다면,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혐오는 타자를 뭉뚱그리지만, 훌륭한 예술은 그 존재를 정확히 보게 한다. 그러니 <소년이 온다>를, <작별하지 않는다>를 다시 읽어보자.
이영경 문화부장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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