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 이후 4반세기를 넘어선 대한민국 헌법학의 기념비적 저작, 격동의 2025년을 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재명 대통령 취임·검찰청 폐지·공소청 신설 등 헌정 격변기의 판례와 개정법률 총망라
[법률저널=이상연 기자] 대한민국 헌법학의 좌표를 새로 쓴 저작이 또 한 번 시대와 대면한다. 서울대학교 제26대 총장을 역임한 성낙인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헌법학』 제26판(1876면/정 18절판(양장))이 법문사에서 출간됐다. 초판 출간 이후 4반세기를 넘긴 이 책은 매 판마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고비를 기록하고 해석해 온, 명실상부한 '살아 있는 헌법 연대기'다.
성낙인 교수는 서문에서 "헌법학을 성원해주신 교수님들과 독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제26판에서는 2026년 1월 현재 판례와 개정법률, 헌법학 관련 논저들을 충실히 반영하였다"고 밝혔다. 내용의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면서도 전체 분량은 최대한 현상 유지를 했다는 점에서, 선택과 압축의 학문적 밀도가 한층 높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 격동의 헌정사를 관통하다 – 두 번째 대통령 탄핵과 87년 체제의 변곡점
제26판이 품고 있는 시대적 무게는 각별하다.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2025년 4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심판 인용결정으로 파면되고, 같은 해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87년 체제 하에서 다섯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성낙인 교수는 이를 자신의 '87년 체제에 관한 여섯 번째 가설'의 연장선에서 분석한다. 2024년 총선 이후 형성된 여소야대가 비상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막을 내리고 여대야소로 전환되는 과정, 그리고 그 속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요원해 보인다"는 저자의 냉엄한 진단은 독자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이번 판에서는 3개의 특검법과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 작동, 이른바 '2차 종합 특검'의 가동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저자가 "그야말로 특검 공화국"이라 명명한 현실을 정면으로 분석한다. 위헌 논란을 촉발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내란·외환·반란 범죄 등의 형사절차에 관한 특례법'의 제정, 비상계엄 극복을 위한 계엄법 개정, 비상계엄 관련자들이 법원에서 "위로부터의 내란 및 친위 쿠데타"로 응징되는 전개까지 빠짐없이 담았다.
▶ 형사사법기관의 대전환 – 검찰청 폐지에서 공소청 신설까지
제26판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형사사법기관의 근본적 재편을 실시간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는 10월이면 검찰청이 사라지고 공소청이 이를 대신하며,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도 신설된다. 성낙인 교수는 공소청, 중대범죄수사청,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등이 병립하는 상황을 두고 "형사사법기관의 혼돈상태"라 진단하며, "정권이 교체될 때에도 지속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정권교체 때마다 국가조직의 근간이 휘둘릴 소지가 있다"고 경고한다.
이 밖에도 정보통신망법 제정 심의위원장이었던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불법정보에 허위·조작 정보 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것을 "정치입법의 한 단면"으로 꼬집는 대목도 눈에 띈다.
▶ AI 기본법에서 인구절벽까지 – 시대적 입법 과제를 총망라
제26판은 헌정 위기뿐 아니라 미래 지향적 입법 과제도 빠짐없이 반영했다.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의 제정, 공직선거법 및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 등을 분석하고, 헌법재판소법 개정으로 헌법연구관 정년이 법관과 동일한 65세로 상향 조정된 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평가한다.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시대에 대응하는 광역지방자치단체 통합의 가속을 다행스럽게 보면서도, '사립대학의 구조개선 지원에 관한 법률'의 원리가 사립 초·중등학교에도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새로운 정책적 제언도 담고 있어, 단순한 교과서를 넘어 정책 청사진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 "K-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 학자의 시대 진단
이번 서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K-민주주의'에 대한 저자의 화두다. K-컬처가 대중음악에서 문학, 뷰티,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세계를 호령하고, 반도체·자동차·조선·방위산업에 이르는 'MASGA'로 상징되는 K-산업이 물질적 토대를 이룬 시대에, 정작 K-민주주의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성낙인 교수는 "'커피값 선결제'를 통하여 보여준 민주공화국 시민들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비하면 정치인들의 K-민주주의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며, "노벨 평화상에 이어 문학상까지 수상한 나라에서 K-민주주의도 이제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물질과 문화의 세계적 성취가 곧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통찰이, 헌법학자의 언어로 단단하게 제시된다.
▶ 4반세기 학문 공동체의 결실 – 헌법 교실에서 시작된 거대한 물결
제26판의 또 하나의 특징은 초판부터 26판까지의 여정을 함께한 방대한 학문 공동체에 대한 감사의 기록이다. 25년간 출간을 도운 이들의 명단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헌법학계의 인물 지도다. 사법시험 합격자, 헌법재판연구원, 대학 교수, 해외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한 권의 교과서가 어떻게 학문적 생태계를 형성하고 차세대 법학자를 배출하는 요람이 되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성낙인 교수는 "우수한 제자들과 교육·연구를 함께 한 시간이 행복하기만 하다"며, 서울대 총장 취임사에서 밝힌 '선한 인재' 양성의 비전이 이 책을 통해 구현되고 있음을 밝혔다. 총장 재임 중 전국 최초로 시작한 '천원의 아침 식사'가 전국으로 확산된 것처럼, 한 학자의 학문적 헌신이 사회로 퍼져 나가는 파급력을 실감하게 하는 대목이다.
▶ 『헌법학』 제26판, 왜 읽어야 하는가
헌법은 국가의 근본 규범이자 시민의 권리장전이다. 그러나 헌법이 진정으로 살아 숨쉬려면, 시대의 변화를 포착하고 해석하며 비평하는 학문적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성낙인 교수의 『헌법학』이 4반세기를 넘겨 26판에 이른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시험용 교과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사와 함께 호흡해 온 살아 있는 텍스트임을 증명한다.
대통령 탄핵, 형사사법기관의 대전환, AI 기본법의 등장,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그리고 K-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화두까지 – 2026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헌법적 과제의 총체가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법학도와 수험생은 물론,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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