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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형법의 간첩죄 조항 개정 이후 필요한 노력들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통신 등 전략산업에서 기밀은 서류가 아니라 데이터와 공정·설계·장비제어로...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AI가 휴민트·신호정보를 결합해 표적을 찾고, 드론과 원격정밀타격으로...

[시론] 형법의 간첩죄 조항 개정 이후 필요한 노력들

박성민 성균관대 교수·사회과학대학 학장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간첩죄는 큰 틀의 수정 없이 73년 동안 유지해왔으나 국제관계가 복잡해지고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한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국가기밀과 첨단기술 유출이 더 이상 특정 적대국에만 한정되지 않고, 우방을 포함한 다양한 외국 행위자·단체와 연결되는 정보전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가 형법을 개정한 것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이제 형법에는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를 위한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및 방조) 행위를 처벌하는 제98조의2가 신설됐다. 무너진 법적 경계선을 현실에 맞게 재정렬한 조치여서 법 개정을 환영한다.

73년만에 간첩죄 적용 범위 확대

제도 개선의 성과는 현장에 달려

관·학·연 연계한 교육도 필요해

형법 개정의 사회적 실익은 명확하다. 첫째, 법 공백이 줄어들면 억지력이 생긴다. 그동안 해외 정보기관·조직 또는 외국 기업과 결부한 기술·기밀 유출이 발생해도 적용 법률이 쪼개져 대응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범죄의 기대이익이 커질수록 처벌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은 국가·산업을 지키는 최소 장치다.

둘째, 경제안보 관점에서 산업 현장의 불확실성 비용을 낮춘다.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통신 등 전략산업에서 기밀은 서류가 아니라 데이터와 공정·설계·장비제어로 존재한다. 단 한 번의 계정 탈취나 협력사 취약점이 공급망 전체로 번질 수 있다. 이런 시대에 법은 기술보호 투자에 필요한 최소 기준과 책임선을 분명히 한다.

셋째, 국민의 이익으로 돌아온다. 기술유출과 핵심 시설 교란이 줄어들면 일자리·지역경제·산업경쟁력이 방어되고, 통신·항만·발전 등 기반시설의 안정성이 높아져 일상의 안전이 강화된다. 기술유출의 피해는 기업의 손실로 끝나지 않는다. 핵심 공정과 설계 데이터가 외부로 빠져나가면 수주·투자 계획이 흔들리고 생산 거점이 축소될 수 있다. 해당 산업단지의 협력사 매출 감소, 고용 위축, 지역 소비 둔화로 이어져 결국 국민이 체감하는 생활경제에 충격이 발생한다.

그러나 제도 정비는 출발점일 뿐이고 성패는 현장에서 갈린다. 새로운 법 규정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가정보기관과 수사기관에 한정된 과제가 아니라 핵심시설 운영기관, 산업단지, 협력사와 연구현장까지 하나의 관리 체계로 연결돼야 한다.

네 가지 과제를 추려보자. 첫째, 위협 징후를 조기 탐지·평가·공유하고, 사건 발생 시에 증거 보전, 확산 차단, 복구와 재발 방지로 이어지는 표준 프로세스를 민관 공통 언어로 구축해야 한다. 둘째, 드론·사이버·내부자 위협 등 복합 위협에 대응하도록 기술과 운영을 결합해야 한다. 이를 해외 전장의 변화가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은 AI가 휴민트·신호정보를 결합해 표적을 찾고, 드론과 원격정밀타격으로 즉각 실행하는 속도전의 실체를 보여줬다. 전장이 초 단위로 바뀐 만큼 방첩은 더 이상 관념이 아니라 기술 전력이다.

셋째, AI 분석에 쓰이는 데이터·링크 보호, 범정부 거버넌스와 상호운용 표준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탐지·식별·무력화·사후분석을 통합관제로 묶고, 실증·시험평가·표준·인증이 민간 투자로 이어지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넷째, 관·학·연 연계 상설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정보·수사 인력뿐 아니라 기업 보안담당자, 연구자, 데이터 담당, 법·정책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모의사건, 포렌식, 공급망 보안, 드론 대응 훈련을 정례화하면 현장 실행력과 산업의 예측 가능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외국 간첩죄 신설은 강한 통제가 아니라 강한 역량으로 가기 위한 제도적 계기다. 더 나아가 보안을 단속이 아니라 국가 운영체계의 혁신으로 전환하는 국가 혁신 과제다. 동태적 역량 관점에서 정부·기업·연구현장이 감지·학습·재구성을 상시화하고, 이를 성과관리·예산·조달·표준과 연결할 때 위험은 선제적으로 줄어든다.

형법 개정은 법·제도의 명확성과 정책 집행의 전문성이 함께 강화될 때 AI 시대에 기술유출을 예방하는 경제안보 안전망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과 상생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다. 이를 위한 법·정책·기술·인재가 결합한 경제안보 실행 체계를 시급히 마련해야 할 때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성민 성균관대 교수·사회과학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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