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영암 28랩 피트스탑 레이스…'무교체냐 전량 교체냐' 심장 쫄깃한 두뇌 싸움
금호·넥센·한국·브리지스톤 등 글로벌 타이어 4사, 서킷에서 캐낸 기술로 도로 점령
24일 진행된 PHEV 프리우스 클래스 결승 경기 출발 모습. 프리우스에는 브리지스톤 타이어가 사용되고 있다. 영암=손진석 기자
[비즈월드] 지면을 강타하는 40도의 살인적인 열기 그리고 이보다 훨씬 뜨겁게 달아오른 50도 후반의 아스팔트 노면. 육중한 머신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코너를 파고들며 아스팔트를 찢어발긴다.
코너를 칼날처럼 탈출하는 머신들 뒤편으로 검은 연기와 함께 고무 타는 특유의 냄새가 진동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타이어 가루가 서킷 사방으로 비산한다.
전남 영암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포효하는 '2026 오네(O-NE)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3라운드(아시아 모터스포츠 카니발)'의 도파민 터지는 현장이다.
모터스포츠를 단순한 '드라이버의 담력'과 '엔진 마력'의 질주극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패독(Paddock)에서 기름때를 온몸에 묻히며 데이터를 분석하는 엔지니어들은 현대 레이스를 완전히 다르게 정의한다.
바로 "엔진이 토해내는 가공할 에너지를 노면과 닿는 유일한 통로, 즉 단 '우표 한 장 크기'의 타이어 접지면(Contact Patch)을 통해 구동력으로 치환해 내는 극도의 화학·물리학 전쟁"이라는 것이다.
차량 무게와 출력, 하체 지오메트리 등 기계적 스펙이 규정집에 의해 소수점 단위까지 묶인 극한의 환경에서 타이어 성능과 피트스탑 전술은 경기 승패의 90% 이상을 지배한다.
각 클래스별 괴물 머신들이 타이어에 가하는 혹독한 물리 법칙과, 그 뒤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타이어 4사 한국·금호·넥센·브리지스톤의 불꽃 튀는 경쟁이 펼쳐진다.
24일 영암 국제자동차경기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슈퍼레이스 3라운드에 사용되고 있는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브리지스톤 타이어. 영암=손진석 기자
◆ 아스팔트 위 '검은 삼국지'…글로벌 4개 사의 R&D 기술 테스트
슈퍼레이스를 접수하기 위해 모인 글로벌 타이어 제조사 4사는 극비 배합 레시피를 무기 삼아 총성 없는 기술 전쟁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4대 타이어 제조사의 서킷 필살기를 살펴본다.
금호타이어는 현재 6000 클래스 선두의 지존이다. 핵심 기술로는 하이폴리머 엘라스토머 유기 합성 소재를 사용한 타이로 서킷에서 극강의 고무 분자 합성으로 피트스탑 무교체 질주를 완벽하게 지원하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포디움을 휩쓴 저력은 초장거리 내구 레이스에서 발휘된다.
초기 오프닝 랩(1~2랩)에서 타이어 온도가 채 오르지 않아도 노면 틈새를 움켜쥐는 접착력과 가혹한 제동에서도 뜯겨 나가지 않는 가교 결합력으로 피트스탑 무교체 질주라는 사기적인 전술을 가능케 한다.
이 기술은 상용 전기차 타이어 '마제스티9 EV' 등으로 이식되어 시장을 휩쓸고 있다.
넥센타이어는 서한 GP 등 명가들의 전우다. 핵심 기술로는 가상 디바이스 예측 툴(FEA Virtual R&D)을 적용한 제품으로 서킷 기후 적응형 광대역 컴파운드로 어떤 날씨든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넥센타이어는 'AI 공학'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암 서킷 요철 상태와 마찰 계수를 컴퓨터 시뮬레이션(FEA)으로 수만 시간 동안 가상 테스트하여 노면 온도 급하강에도 접지력을 소실하지 않는 '광대역 컴파운드'를 창조했다.
타이어 마모 지점까지 랩타임 그래프가 평평하게 유지되는 독보적인 페이스 유지가 최대 강점이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느 전 세계 서킷을 지배하는 타이어의 명가다. 2023년 6000클래스 지원에서 빠진 후 현재 일부 팀에서 사용하는 타이는 레이싱 카본 블랙 & 고배향 아라미드 벨트를 사용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제품은 강철의 5배 강성으로 섭씨 수백도 고온 상태의 강성을 유지해 준다.
6000클래스에서 금호타이어의 성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금호 SLM팀이 차량 정비를 위해 타이어를 분리해 놓은 모습. 영암=손진석 기자
특히 수입 고성능 GT4 클래스를 독점하며 검증된 '아라미드 하이브리드 보강 벨트'가 심장이다.
브레이크 제동 시 발생하는 최고 700도에 육박하는 지옥의 열기가 비드 영역으로 전이되는 상황을 이겨내고 형상 왜곡을 완벽히 방어한다. 초프리미엄 세단용 '벤투스 S1 에보 Z'의 원천 기술이 바로 여기서 나왔다.
브리지스톤은 친환경 PHEV 독점 기술 공급사로 나노프로 테크(NanoPro-Tech) 화학 분자 제어 기술을 적용한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어, 내마모성과 친환경 저회전 저항을 모두 섭렵한 신비의 밸런스로 드라이버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세계 최대 타이어 기업다운 '나노 분자 제어' 공법을 내세운다. 실리카와 카본 배열을 실시간 제어하는 '나노프로 테크'를 적용해 배터리 탑재 고하중 차량의 타이어 뒤틀림을 최소화하고, 입문 드라이버의 서툰 조향 시에도 타이어가 알아서 자세를 잡아주는 '물리적 구원투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브리지스톤 타이어 점검 모습. 영암=손진석 기자
◆ 아스팔트가 사포로 변하는 지옥…클래스별 머신이 가하는 '물리 법칙’
슈퍼레이스에 출격한 머신들은 차체 중량 분배, 다운포스 강도 등이 완전히 다르다. 이는 곧 코너를 돌 때 타이어가 견뎌내야 할 열역학적 과부하와 횡그립(Lateral Grip) 한계가 저마다 다름을 뜻한다.
대회의 정점이자 괴물 스톡카들이 총출동하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 6000 클래스'. 최고 출력 436마력을 뿜어내는 V8 6200㏄ 괴물 엔진이 튜브 파이프 스페이스 프레임에 얹혀 시속 300㎞/h 오버 스피드로 울부짖는다.
특히 이번 영암 3라운드는 정규 시즌 중 드라이버와 엔지니어의 피를 말리는 '피트스탑(Pit Stop) 레이스'로 치러진다.
일반적인 100㎞ 미만의 단거리 레이스와 달리, 무려 28랩(157.22㎞)의 초장거리를 소화해야 해 가솔린 탱크 하나만으로는 완주가 절대 불가능하다.
의무적으로 피트에 들어와 재급유를 받아야 하는 이 순간, 타이어는 팀의 운명을 가를 최대 요충지로 부상한다.
사포처럼 타이어를 갉아먹는 영암 노면 위에서 엔지니어들은 단 하나의 주사위를 던져야 한다.
A안은 상남자식 무교체다. 피트아웃 약 18초. 타이어를 전혀 바꾸지 않고 기름만 채워 복귀한다. 시
간은 극단적으로 단축하지만, 후반부 타이어 표면이 뜯겨 나가는 그레이닝(Graining)과 접지력이 증발하는 페이딩(Fading)에 직면해 랩타임이 바퀴당 1.5초 이상 곤두박질치는 지옥을 맛볼 수 있다.
B안은 실속형 후륜 2본 교체다. 피트아웃 약 30초대. 동력을 쏟아내는 뒷바퀴 2개만 전격 교체한다. 시간과 성능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조율되는 타협안이다.
C안은 올인형 4본 전량 교체다. 피트아웃 약 45초 이상. 피트인 시간 손실을 감수하고 완전히 프레시한 새 타이어 4개로 무장한다.
경기 극후반부 성난 맹수처럼 앞선 차들을 사냥하듯 추월하는 명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숨 막히는 레이아웃 속에서 열팽창에 따른 타이어 내부 압력(Cold-to-Hot Pressure)을 최적의 윈도우 안에 가두려는 미케닉들의 수싸움이 실시간으로 요동친다.
넥센타이어 서비스 지원부스. 영암=손진석 기자
◆ GTA/B 투어링카, 극한의 타이어 마모 피드백…PHEV 프리우스, 친환경 고성능 타이어어 최전선
현대 아반떼 N과 제네시스 쿠페가 격돌하는 'GTA/GTB 클래스'는 일상 공도 주행 차량 기반이기에 타이어 마모에 대한 피드백이 가장 직관적이다.
특히 앞바퀴 굴림(FF)인 아반떼 N은 코너 조향과 2000㏄ 터보 엔진의 구동력을 앞타이어 단 두 장으로 모조리 감당한다. 코너 진입 시 타이어 바깥쪽 숄더(Shoulder) 블록은 무려 120도가 넘는 화염 같은 마찰열에 노출된다.
여기에 개막전 우승 페널티로 부과된 무려 50㎏의 물리적 무게 추 'BoP(Balance of Performance)'까지 얹는다면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급제동이나 급코너에서 가중되는 엄청난 하중과 관성 모멘트를 고무 블록이 버텨내지 못하면, 드라이버는 코너 꼭지점(Apex)을 밟지 못하고 곧바로 방호벽으로 날아가는 '언더스티어'의 참극을 맞이하게 된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머신이 격돌하는 '프리우스 PHEV 클래스'와 '알핀 클래스'는 친환경 고성능 타이어의 최전선이다.
특히 프리우스 PHEV는 가솔린 엔진에 13.6㎾h 고전압 배터리와 전기 모터가 결합되어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최대 토크가 터져 나온다.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출력을 타이어가 미끄러짐 없이 노면에 점착시켜야 발진 그립을 지켜내어 클리프(Cliff, 한계점에 도달해 갑작스럽고 치명적으로 성능(그립)이 저하되는 현상)를 방지해야 한다.
또 1.6톤에 육박하는 육중한 배터리 무게로 인해 무게 중심이 쏠리는 급커브 상황에서 사이드월이 주저앉지 않도록 지탱하는 단단한 카카스(Tire Carcass) 설계 공학이 승부의 키를 쥐고 있다.
23일 진행된 예선전에서 05번 김중군 차량 주행모습. 영암=손진석 기자
◆ 폭염 속 영암 예선 大격돌, 이창욱-이정우 프론트 로우 싹쓸이…결승전 서막이 올라
24일 오후 1시에 열릴 운명의 3라운드 결승을 앞두고, 바로 전날인 23일 영암 KIC 풀코스(1랩=5.615㎞, 코너 18개)에서 펼쳐진 예선전은 그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였다.
이른 무더위로 달아오른 아스팔트 노면은 경주차와 타이어에 살인적인 스트레스를 가했다.
여기에 연습주행 도중 넥센의 간판 정경훈(#03, 서한GP)의 머신이 파손되며 예선전 주행이 무산되는 대형 변수가 터졌다. 결국 14대의 정예 머신만이 피 튀기는 1차 예선(Q1)에 돌입했다.
15분 동안 진행된 Q1의 주인공은 단연 '디펜딩 챔프' 이창욱(#01, 금호 SLM)이었다.
이창욱은 주행 단 2랩 만에 2분10초198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찍으며 가볍게 선두로 치고 나갔다. 같은 팀 이정우(#13, 금호 SLM)가 0.387초 차이로 2위에 올랐고, 넥센 타이어를 신은 정의철(#04, 오네레이싱)이 역전의 불꽃을 당겼으나 2위와 1.2초의 격차를 보이며 3위로 주저앉았다.
23일 진행된 예선전에서 77번 박정준이 역주하고 있다. 영암=손진석 기자
그 뒤를 이어 장현진(#06), 김화랑(#70), 박정준(#77), 황진우(#12), 김중군(#05), 서주원(#94), 박석찬(#26)이 10위권 커트라인을 넘으며 2차 예선(Q2)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반면, 헨쟌 료마(#17), 임민진(#08), 손인영(#98), 마이키 조던(#23)은 가혹한 랩타임 벽을 넘지 못하고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상위 10대만 허락된 마지막 Q2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드라이버들이 미세한 초 단축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이창욱은 보란 듯이 자신의 Q1 기록을 스스로 갈아치우며 2분09초699라는 괴물 같은 기록으로 폴 포지션을 차지했다.
팀 동료 이정우 역시 2랩에서 2분10초232를 기록하며 2그리드를 사수, 금호 SLM이 예선 1·2위를 완전히 독점하며 그리드 최전방을 보랏빛(금호)으로 물들였다.
치열했던 3위 싸움에서는 베테랑 장현진(#06, 서한GP, 넥센)이 노련하게 2분11초589를 마크하며 3그리드 결승행을 확정지었다.
06번 장현진이 예선전 기록 갱신을 위해 가속하고 있다. 영암=손진석 기자
강력한 복병이었던 정의철은 무리한 주행으로 코스를 벗어나는 '트랙이탈 주행(코스 이탈)' 판정을 받으며 기록이 삭제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 틈을 타 박정준이 6그리드로 껑충 뛰어올랐고, 김화랑(4위), 황진우(5위)에 이어 서주원(7위), 김중군(8위), 박석찬(9위) 순으로 촘촘히 전열을 가다듬었다.
오늘(24일) 오후 1시 정각, 드디어 대지 찢는 포성이 울린다.
과연 예선 '원-투'를 독점한 금호 SLM이 의무 피트스탑이라는 잔혹한 덫을 무사히 통과하고 우승컵을 안을 것인가. 아니면 3그리드의 장현진과 넥센 군단이 소름 돋는 변칙 타이어 교체 전략으로 이창욱의 독주를 저지할 것인가.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의 눈과 귀가 영암의 뜨거운 아스팔트로 향하고 있다.
[비즈월드=손진석 기자 / son7615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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