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진실을 마주하는 인간의 고통과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권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는 아들이 아버지를 죽일 것이라는 신탁을 듣고 아이를 버린다. 살아남아 다른 왕의 아들로 자란 오이디푸스 역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듣자, 양부모를 친부모로 믿은 채 그들을 떠난다. 그러나 운명을 피하려던 선택은 역설적으로 예언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
테베를 구원한 영웅이자 왕이 된 오이디푸스는 도시에 닥친 재앙의 원인을 밝히려 한다. 하지만 진실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자 예언자의 증언을 거부하고, 이를 왕위를 노린 음모로 의심한다. 그는 끝내 진실을 밝혀내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오만과 자기 확신은 권력이 얼마나 쉽게 판단력을 잃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오래된 비극은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에도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의 형사재판들은 대통령 취임 이후 기일을 추후 지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이 멈췄다. 일부 재판부는 헌법 제84조를 근거로 들었고, 대통령의 직무 수행과 국정 운영의 계속성을 고려한 결정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의 중단이 혐의에 대한 판단이나 법적 책임의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법적 판단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문제를 대하는 권력의 태도가 중요하다. 사법적 쟁점은 법과 절차에 따라 풀어야 한다. 인사권이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를 해소하려 한다면, 당장의 부담을 덜려는 선택이 오히려 더 큰 불신을 낳을 수 있다. 피하려는 행동이 도리어 위기를 키운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이러한 우려 속에서 바라볼 사안이다. 이번 사태는 한 후보자의 거취를 넘어 정부의 인사 검증과 국정 운영 방식, 집권 여당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다.
정성호 전 법무부장관은 검찰개혁 관련 주요 입법이 마무리된 상황에서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하며,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는 새로운 리더십 아래에서 완성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나 그 후임으로 지명된 김승원 의원에 대해 야당은 대통령 관련 사건의 공소 취소를 염두에 둔 인사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했다. 법과 원칙을 수호해야 할 요직에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 인사를 강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청문 절차에서 드러난 여당의 태도 역시 비판받아야 한다. 지난 15일 청문회가 끝난 뒤,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야당의 반발 속에서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가 민주당 주도로 채택됐다. 여당은 후보자를 옹호하며 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였지만, 이틀 뒤인 19일 후보자는 자진 사퇴했다. 검증이 충분했다는 여당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집권 여당이라고 해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의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부의 잘못된 판단을 먼저 바로잡을 때 국정 운영에 대한 신뢰를 지킬 수 있다.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기보다 임명 절차를 서두른 것은, 여당 스스로 인사 실패의 책임을 떠안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는 집권 여당의 공적 책임과 자정 능력을 되돌아보게 했다.
검찰의 기소가 부당하다면 그 문제 역시 법이 정한 절차와 제도 안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수사와 기소 과정의 위법·부당한 행위는 적법한 감찰과 수사로 규명하고, 공소의 적법성과 혐의의 유무는 정해진 사법 절차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공소 취소 역시 법적 요건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권력자의 이해관계를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이디푸스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뒤 스스로 두 눈을 찌른다. 그의 비극이 남긴 질문은 단지 운명을 피할 수 있느냐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믿어온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진실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오늘의 권력이 새겨야 할 교훈도 여기에 있다.
이 대통령과 여권은 불편한 의혹과 비판을 직시하고, 사법적 쟁점은 법과 절차에 맡겨야 한다. 재판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예단해서도 안 되지만, 권력으로 그 판단을 대신하려 해서도 안 된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동일한 법과 원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공권력은 정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의 권한이다. 이번 사태를 일시적인 인사 실패로만 덮을 것인지, 인사 검증과 청문제도를 바로잡고 법치주의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는 정부와 여당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출발점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자기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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