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원 대구가톨릭대 연구교수 인간공학박사
요즘 경제 뉴스에는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이어진다.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반도체와 첨단 제조업을 중심으로 주요 경제지표도 개선되고 있다. 정부와 시장에서는 한국 경제가 긴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 다시 성장 궤도에 진입하고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그러나 시선을 대구·경북의 산업단지와 골목상권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고금리와 원가 상승, 내수 부진을 견뎌온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 최근의 수출 호황은 좀처럼 체감되지 않는다. 거시지표는 회복을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매출 감소와 자금난,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통계상의 반등에 안도하는 일이 아니라, 그 숫자가 보여주지 못하는 지역 실물경제의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일이다.
국가 경제가 성장세를 보이는데도 지역의 체감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데에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과거에는 대기업의 생산과 수출이 늘어나면 협력업체의 일감과 고용도 함께 증가하면서 성장의 효과가 지역경제로 확산되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글로벌 공급망이 세분화되고 생산의 자동화와 기술집약도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연결고리가 크게 약화됐다.
대기업이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수출 실적을 경신하더라도 그 성과가 국내 협력업체의 매출 증가와 신규 고용으로 곧바로 이어진다고 보기 어려워졌다.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지식재산권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은 커졌지만, 전통적인 하청 생산이 차지하는 몫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대기업의 성장이 곧 지역의 성장’이라는 과거의 공식이 더 이상 자동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대응하는 정책이 여전히 단기적인 금융지원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유동성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대출 만기 연장, 보증 확대, 긴급 정책자금 공급과 같은 대책을 내놓는다. 당장의 부도와 폐업을 막기 위해 이러한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 자금 지원만 반복해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회복시키기 어렵다. 사업성이 약화된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인 금융지원은 구조조정과 사업 전환을 늦추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 돌아갈 자원까지 분산시킬 수 있다. 급한 불을 끄는 정책과 함께 기업의 생산성과 수익구조를 바꾸는 중장기 처방이 병행돼야 하는 이유다.
이제는 ‘얼마나 많은 예산을 투입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어떤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역 실물경제가 단순히 버티는 단계를 넘어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방향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전환해야 한다.
첫째, 지역 중소기업이 전통적인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산업 고도화를 지원해야 한다. 대구·경북에는 기계·금속·자동차부품·섬유 등 오랜 제조업 기반과 현장 기술력이 축적돼 있다. 문제는 이 자산을 미래 산업과 연결하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둘째, 지역기업과 자본시장의 접점을 넓혀야 한다. 지역 중소기업의 자금 조달은 여전히 부동산 담보와 은행 대출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기술과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담보가 부족한 기업이 연구개발과 신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하기 어렵다.
셋째, 정책지원의 기준을 ‘생존 기간의 연장’에서 ‘생산성과 사업구조의 개선’으로 전환해야 한다. 일률적인 보조금과 저리 대출보다는 공정 혁신, 인재 확보, 수출시장 개척, 연구개발, 사업 전환에서 성과를 내는 기업에 더 큰 지원과 인센티브가 돌아가야 한다.
물론 산업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업과 고용 충격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경쟁력이 약화된 기업에는 원활한 사업 정리와 재도전을 지원하고, 근로자에게는 전직 교육과 고용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기업을 무조건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성장할 기업은 키우고, 전환이 필요한 기업과 근로자는 새로운 기회를 찾도록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
화려한 수출 통계 뒤에서 지역의 생산 기반과 고용, 소비가 계속 약화된다면 지금의 거시적 회복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이제 숫자의 반등을 경제 회복의 완성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지역경제의 진짜 체력을 정확히 진단하고, 단기적인 연명 지원을 넘어 기술 혁신과 자본 확충, 산업 전환을 촉진하는 구조적 처방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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