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제9회 전국 지방선거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의 공약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반도체 제조 공장(Fab)’과 ‘AI 데이터센터’ 등 첨단산업 유치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선거 공약이 그대로 이행된다면 대한민국 전역이 첨단산업의 중심지로 재편될 분위기다. 최근 AI 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이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따라서 지역 소멸과 재정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지자체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공약이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점은 반도체 제조 공장과 AI 데이터센터의 산업 본질과 경제 파급효과를 간과하고, 단순히 시설 유치 자체를 지역 발전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 공장은 대규모 생산시설을 중심으로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협력하며 생산과 기술 축적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따라서 반도체 제조 공장 하나만 들어서도 협력업체와 인력이 모이고 물류가 활발해지면서 지역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업은 단순히 공장 건물 하나 건설로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 반도체 제조를 위해서는 초정밀 첨단 제조 장비를 가동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고순도 용수(초순수)와 같은 기반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리고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협력하며 생산과 기술을 동시에 축적하는 산업 생태계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전문인력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반도체 제조 공장은 개별 시설이 아니라 공급망과 기술, 인프라와 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서버 건물 하나만 건설해서 완성되는 산업이 아니다. AI 데이터센터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전력을 장기간 공급할 수 있는 전력 인프라가 필요하며, 막대한 양의 데이터 송수신을 위해서는 고속통신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동 중인 서버에서 발생하는 발열을 제어하기 위한 냉각 시스템도 필수적으로 구축해야만 한다. 또한 단순한 데이터센터가 아니라 AI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과 AI 서비스 기업 및 파운데이션 모델 기업(Foundation Model Providers), 전문인력과 연구개발 역량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는 건설 이후 운영 단계에서 상대적으로 소수의 인력이 상주하며, 지역 내 기존 제조업 생태계와의 직접 연결이 쉽지 않다. 따라서 AI 데이터센터는 후방산업을 견인하는 장비산업과는 달리 건설 단계에서는 일정 수준의 투자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나, 기대했던 지역경제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특히, 최대 수요처로 주목받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 중심의 AI 데이터센터는 지역 산업의 연계보다는 자체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공급하는 것과 전력 확보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장과 AI 데이터센터는 모두 첨단산업 시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역산업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적 효과는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 첨단산업이 위기의 지자체 구원투수로 등판하는 것은 매우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시설 유치만으로 지역 산업 경쟁력이 자동적으로 강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만 한다. 과거 제조업 시대에는 공장 하나를 유치하면 생산과 고용이 늘어나고 협력업체와 물류, 상권까지 함께 움직이며 지역 산업이 성장하는 공식이 성립했다. 이러한 성공 경험이 축적되어 지금도 많은 지자체가 첨단시설 유치 자체가 곧 지역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제조 공장을 유치하려면 안정적이면서 대규모 전력과 초순수 공급 등 인프라는 충분한지,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생태계는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 역시 마찬가지다. 지역 내 소프트웨어 산업과 AI 서비스 기업을 육성할 것인지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단순한 서버 시설로 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철저한 준비 없이 첨단산업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위기에 놓인 지역 경제를 근본적으로 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첨단시설 유치 경쟁이 아니라 어떤 산업의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경제안보·통상전략연구실 전문연구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