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유(GPU) 절도 범행 당시 영상. 유튜브 채널 ‘추천하는 남자’ 갈무리
정혁준 | 전국팀장
2014년 11월 경기도 포천에서 황당한 범죄를 저지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전국 은행을 돌아다니며 10원짜리 동전 7억원가량을 사들인 뒤 이를 녹여 동괴를 만들어 20억원을 챙겼다. 은행에선 ‘집을 짓는 데 장식용으로 필요하다’며 구형 10원짜리 동전을 대량으로 샀다. 특이하게 이들은 10원짜리 동전 한개당 5∼8원을 더 주고 동전을 사 모았다.
이들은 왜 동전을 녹였을까? 동전 원료는 구리인데 구리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10원짜리 동전은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다. 동전 한개 제작 원가는 22~40원에 이른다. 돈을 만드는 데 돈이 더 드는 셈이다. 자신이 산 돈을 녹였는데 왜 처벌을 받았을까? 이들처럼 구리값을 노리고 동전을 훼손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2011년 12월 ‘한국은행법’을 개정해 동전을 훼손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넣었다. 이 법 53조의2를 보면, ‘누구든지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 영리를 목적으로 주화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하여 융해·분쇄·압착, 그 밖의 방법으로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105조의2엔 ‘주화를 훼손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지난달 22일 경기도 평택에서도 이런 세태를 드러내는 범죄가 일어났다. 한 40대가 이날 새벽 5시56분께 평택시 청북읍의 한 컴퓨터 부품 판매점에 침입해 그래픽처리장치(GPU) 세 상자를 훔쳐 달아났다. 이 판매점엔 다양한 컴퓨터 부품이 쌓여 있었지만 이 사람은 엔비디아 최상위 제품군 지피유(RTX5090·RTX5080)만 노렸다. 이 제품 개발사인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 칩 생산에 주력하면서 소비자용 칩셋 공급이 줄었고,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디램(DRAM) 가격도 오르면서 지피유 신제품 가격이 치솟는 상황이었다. 도난당한 제품은 1600만원어치였다. 피해자는 유튜브 채널 ‘추천하는 남자’에서 “매장엔 부피가 작은 에스에스디(SSD)나 램도 있었다. 이를 훔쳤다면 억 단위가 될 텐데도, 그걸 가져가지 않고 지피유 세 박스만 가져갔다는 건 돈이 급해 빨리 현금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 붐에 따라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자제품 가격이 오르는 ‘칩플레이션’을 틈탄 범죄였다.
범인은 하루 뒤 붙잡혔다. 그는 “경찰이 리딩방 사건을 빠르게 수사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범행했다”는 황당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또 “챗지피티(GPT)에 물어보니 ‘(검거됐을 경우) 경찰이 절도 사건을 수사하면서 리딩방 사건 수사도 한꺼번에 해줄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도 했다.
세태를 드러내는 이런 범죄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일 전남 장흥경찰서는 다리 이름 판을 훔친 40대를 붙잡았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한달간 전남·전북 일대 교각 254개에 달린 이름 판(동판) 855개를 떼어내 고물상에 팔아 4천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다리 이름과 설치 시기가 담긴 이름 판은 구리가 주성분이다. 2014년 포천에서와 마찬가지로 구리값이 폭등하자 벌인 절도 범죄였다.
엔비디아 지피유 절도 범죄는 이런 세태를 보여주는 사건과 결이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피유 절도 범죄에선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챗지피티가 조언해줘 범행을 저질렀다”는 피의자의 황당한 변명이 바로 그것이다. 책임을 돌리기 위해 한 말이지만, 인공지능이 앞으로 이런 식의 범죄에 여러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공지능은 삶의 질을 높이는 서비스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잘못 쓰이면 흉기가 될 수 있다. ‘칩플레이션’을 틈탄 지피유 절도 범죄는 양날의 칼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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