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 문제가 정치 복판으로 들어왔다. 농업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을 때 긍정적인 신호였던 적은 거의 없다. 가축전염병이 창궐하거나 흉년으로 ‘금사과’니 ‘금계란’이니 할 때다. 대통령의 지시로 정부 수립 후 78년 만에 처음으로 농지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정치권은 물론 도시, 농촌 가릴 것 없이 콩 튀듯 팥 튀듯 한다. 야당 대표는 토지 강제매각이라며 사회주의 국가로 가려느냐 강짜를 놓고, 대체로 밋밋하던 농해수위 국정감사가 전수조사 문제로 맵고 뜨겁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지 전수조사의 목적은 농지 정보를 정확히 파악해 농지제도를 현실에 맞게 구축하려는 것이라 해명을 내놓지만 우려를 불식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전수조사 시행지침 첫 발화에 농지투기를 잡겠다는 메시지가 읽히며 단속으로 받아들였다. 그간 역대 정부가 행정적·정치적 부담 때문에 농지 전수조사에 뭉그적거려 현 정부가 큰 짐을 진 것도 분명하다. 1950년 소작농을 철폐하고 자작농 창설을 목적으로 농지개혁이 이뤄졌어도 농지의 소유와 이용, 관리에 대한 원칙을 담은 농지법은 1996년에야 만들어진다. 농지개혁의 후속조치가 한없이 늦어지면서 농지실태 파악이 명확히 이뤄지지 않아 농업정책을 세우는 데 걸림돌이었다. 농지 전수조사는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중대사다. 다만 계곡의 불법 평상을 철퇴한 대통령의 강력한 행정가의 기질은 장점이어도, 농지 문제만큼은 뜨거운 팥죽이다. 급하게 떠먹다가는 크게 덴다.
배추밭이 강남으로, 열무밭이 일산신도시로 변한 것을 사람들이 목도했고, 농지가 부동산으로 보이며 눈이 벌게진 탓도 있다. 산인지 밭인지 구분조차 안 되는 휴경농지가 투기꾼의 알박기 땅이란 걸 주민들은 안다. 친인척이나 지인에게 계약서 없이 임대하는 관행이 굳었다. 부재지주인 걸 들킬까봐 자경농민인 양 속여, 임차농이 가져가야 할 알량한 직불금마저 탐내는 소유주도 많다. 8년 자경 증명만 있으면 양도소득세 감면 제도가 있다는 것도 유혹적이다. 임차농이 친환경 농사를 지어 친환경직불금을 수령하면 소유주가 부재지주인 것이 탄로 날까 싶어 친환경 인증 취소를 강제하거나 땅을 거둬버리는 일도 있다.
이런 이유로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겁을 먹은 이들이 임차농이기도 했다. 이렇듯 농촌에는 소유하되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되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 뒤섞여 있다. 헌법에서야 경자(耕者)만이 유전(有田)하라 했으나 경자들의 사정은 제각각인 데다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갈 길 바빠도 찬찬히 한탄이라도 들어보는 데에 공을 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기왕에 시작한 전수조사를 물리라는 것도 사회적 손실이다. 다만 현장의 아우성을 징징거림으로만 듣지 말고 진지하게 경청하면서, 농지의 실태가 드러난 뒤 어떤 대책과 원칙을 세울 것인지 몰두해야 한다. 국가가 농지 총량을 얼마만큼 유지하고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밑그림을 보여줘야 한다. 늙은 농민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인 농지에 적절한 셈을 치르고, 농지가 필요한 농민과 농사짓기 좋은 땅을 이어 붙여 농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길을 트는 일이 어디 하루이틀의 일이겠는가. 사람과 돈,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78년 만의 도전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는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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