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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나를 꺾어버린 슬픔이

위슈화는 태어날 때 산소 부족으로 뇌성마비를 앓게 되었지만, 장애와 상실의 고통 속에서 써내려간 그녀의 책들은 중국에서만 누적 판매량 100만부를 넘겼다. 한국어로 번역된 첫 시집 (한율 옮김)의 사랑시들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세계의 시, 시의 세계]나를 꺾어버린 슬픔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를 꺾어버린 슬픔이

너는 꺾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장미가 다시 피기를 바라지 않는다

네가 다시 오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바람은 멈추지 않고 봄은 빨리 사라져

어느새 초여름

내 마을을 스친 바람이 너의 도시를 스치고

내 마을을 흐른 강물이 너의 도시를 흐른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인가

나를 꺾었던 그 슬픔이 너를 꺾지 않았다는 것이

(중략)

더이상 슬퍼할 일이 없다

드넓은 봄빛 속에서 나는 그림자를 남기고

유혹과 찬사를 함께 들어올린다

삶의 매듭을 거듭 묶었다가

온 생명을 다해 천천히, 천천히 풀어낸다

그럼에도 너와 내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한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을 뿐이다

- 위슈화(1976~)

위슈화는 태어날 때 산소 부족으로 뇌성마비를 앓게 되었지만, 장애와 상실의 고통 속에서 써내려간 그녀의 책들은 중국에서만 누적 판매량 100만부를 넘겼다. 한국어로 번역된 첫 시집 <왼손에 떨어진 달빛>(한율 옮김)의 사랑시들은 담백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시에서 사랑을 잃은 ‘나’는 “나를 꺾어버린 슬픔이/ 너는 꺾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한다. ‘장미’로 상징되는 사랑의 회복을 기대해서도, ‘너’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도 아니다. 너와 나는 헤어졌어도 “내 마을”과 “너의 도시”는 바람과 강물로 여전히 이어져 있다. “찬밥 한 그릇을 먹다가/ 문득 네가 떠올라 눈물이 비처럼 쏟아”지기도 하지만, 그 쓸쓸함이 더는 자신을 아프게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봄볕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이제 ‘나’는 담담하게 “유혹과 찬사를 함께 들어올”릴 수 있다. 삶이라는 매듭을 몇번이고 묶었다 천천히 풀어내는 일에 온 힘을 쏟으며 일상을 돌본다. 삶의 매듭은 급하게 풀려고 할수록 더욱 뒤엉키지 않던가. 문득 “너와 내가/ 같은 하늘 아래 공존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날도 있겠지만, 조금씩 슬픔에 익숙해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도 네가 꺾이지 않았음을, 저만치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음을 다행이라 여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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