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균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연구소·아시아 소사이어티 석학 펠로우
지난해 6월 22일은 필자가 데이터베이스 및 빅데이터 분야 세계 최고 학술대회인 ‘국제 ACM SIGMOD 학회’ 참석을 위해 독일 베를린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학술 여정의 설레는 출발점이 아니었다. 이란 전역의 핵·군사시설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기습 공격이 시작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고, 미국이 ‘심야의 망치’ 작전으로 이란 핵시설을 직접 공습하기 시작한 날이기도 했다.
전쟁의 겉모습 과거와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변화가 급속히 진행 중
AI 에이전트가 협력해 정보 분석
우리 국방도 첨단 AI 체계 갖춰야
당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전쟁’이라 명명한 이 충돌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남쪽으로 우회하던 항로에 또 하나의 전쟁 위험을 더했다. 필자는 예약해 두었던 항공편 대신 베이징을 경유해 러시아 영공을 통과하는 중국 항공편으로 바꾸어 어렵게 베를린에 들어갔다. 본래 계획했던 아랍에미리트(UAE) 경유 귀국 편은 그대로 살려 두었다.
다행히 학회가 끝나가던 6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휴전을 발표했다. 불과 이틀 전 미사일이 오가던 페르시아만 상공을 지나 UAE로 내려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밤 풍경은 유전에서 나오는 가스를 태우는 화염이 눈에 띄는 것 외에는 놀라울 만큼 평화로웠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이렇게 가까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절감했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8개월 뒤인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전면 공격을 다시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난 전쟁의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충돌에서도 레이시온의 토마호크와 록히드 마틴의 패트리엇 같은 전통적 미사일 체계가 중심을 이루고 미국 국방부와 벤처캐피털이 막대한 투자를 한 안두릴(Anduril)이나 쉴드(Shield) AI 같은 신흥 국방 기업들의 무기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겉으로만 보면 전쟁의 양상은 과거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다. 스페이스X가 운영하는 ‘스타쉴드’ 저궤도 위성망을 통해 수집되는 방대한 데이터가 팔란티어의 전장 관리 시스템으로 통합되어 실시간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제 승패를 가르는 것은 개별 무기의 성능만이 아니다. 센서, 통신, 데이터, 추론, 타격이 하나의 연결된 시스템으로 얼마나 빠르게 작동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전쟁의 중심이 ‘무기’에서 ‘시스템’으로, 다시 시스템을 움직이는 AI 에이전트와 인간의 협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제법적 원칙과 기술 현실이 충돌한다. 국제 인도법은 살상과 관련된 결정이 유의미한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그러나 전장은 인간의 판단 속도와 스케일을 넘어서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마하의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 동시에 쏟아지는 수천 대의 드론, 수초 안에 분석하고 대응해야 하는 다층의 센서 정보 앞에서 인간이 모든 판단을 일일이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래의 전장은 점점 더 ‘에이전틱’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말하는 에이전틱은 단순한 자동화를 뜻하지 않는다. 각 기능 단위의 AI가 독립적으로 상황을 해석하고, 상호 작용하며 비판하고 필요할 경우 계획을 수정하고 실행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뜻한다. 기업 세계에서 이를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라고 부른다. 공급망, 생산, 재무, 인사, 시장 대응 같은 기능들이 각각의 AI 에이전트로 구현되고, 이들이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조직 전체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전통적인 기업이 모놀리식(monolithic) 소프트웨어와 사일로 조직 위에서 인간이 의사 결정을 내리는 구조였다면,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는 수많은 기능 에이전트가 인간들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 협업하는 시스템이다.
군도 예외일 수 없다. 앞으로 군은 현재와 같이 딱딱한 명령 체계를 넘어 센서, 정보 융합, 위협 인식, 자원 배분, 요격, 타격이 연결된 분산형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진화할 것이다. 기업이 인간 중심의 에이전틱 엔터프라이즈로 진화하듯, 군도 인간 중심 에이전틱 워페어 시스템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차이는 하나다. 기업의 에이전트가 이윤과 효율을 다룬다면, 군의 에이전트는 생존과 억제, 파괴와 방어를 다룬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AI for Science’도 따로 떨어진 평화 프로젝트가 아니다. 미국 국방부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인터넷의 전신을 만들고, 디지털 라이브러리 프로젝트 같은 선행 투자가 훗날 구글의 탄생으로 이어졌던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평화적 연구·개발은 산업 경쟁력을 낳고, 산업 경쟁력은 다시 군사적 우위로 연결된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분명하다. AI 에이전트가 전쟁의 의사 결정에 어디까지 참여해야 하는가. 그러나 그 논쟁과 별개로 당장 더 시급한 과제는 기술 수용의 속도다. 보수적인 획득 체계가 민간의 혁신을 늦춘다면, 전장에서 느린 조직은 결국 패배한다. 우리 국방도 이제는 폐쇄적 조달과 관료적 검증의 관성을 넘어 민간 AI의 최전선과 직접 연결되는 개방형 혁신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AI 에이전트 시대의 전쟁과 평화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AI 기술을 국가가 얼마나 빠르게 수용하는 체제 전환의 문제다.
차상균 스탠퍼드대 인간중심연구소·아시아 소사이어티 석학 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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