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신권 쓰면 다음이 더 무섭다"…드러난 임차인의 셈법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계약 추이 (출처 | 국토교통부)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재계약 비중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정작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는 사례는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즉 같은 집에 계속 머무르려는 세입자는 많아졌지만, 법적으로 보장된 갱신권을 바로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해진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전세 공급 부족에 대한 불안감을 꼽는다. 실거주 의무 강화 정책 등으로 임대 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며, 세입자들이 향후 전세 매물을 구하기 더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계약갱신청구권은 임차인이 기존 주택에서 2년 더 거주할 수 있도록 하고, 임대료 인상률도 5% 이내로 제한할 수 있는 권리다. 다만 행사 기회가 한 차례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한 번 사용하면 이후 계약에서는 같은 권리를 다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 가운데 재계약이 차지한 비중은 46.85%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41.72%보다 5.13%포인트 오른 수치다. 월별로 봐도 상승세는 뚜렷하다. 1월 45.41%였던 재계약 비중은 2월 47.78%, 3월 47.7%, 4월 47.82%로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특히 전세 계약만 따로 보면 이달 재계약 비중은 53.77%에 달해 절반을 넘어섰다. 그러나 재계약 증가가 곧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올해 1분기 갱신 계약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이 사용된 비율은 43.3%에 그쳤다. 이는 지난해 3분기 51.83%, 지난해 4분기 47.1%와 비교해 확연히 줄어든 수치다. 이에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박사는 “다주택자 매물이 소진되고 나면 매매가 묶이면서 전세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에, 임차인들 중에서는 이번에는 보증금 시세를 반영해 주되, 다음 번에 갱신권을 쓰려고 아껴두는 경우가 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매물은 6개월 새 38% 증발…신규는 월세, 재계약은 5% 초과 인상…가속화되는 '전세의 월세화'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7일 기준 서울의 전세 매물은 1만5422건, 월세 매물은 약 1.4만 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6개월 전과 비교해 전세는 37.94%, 월세는 27.18% 줄어든 수준이다.
향후 공급 여건도 넉넉하지 않다. 부동산 프롭테크 기업 직방 조사에 따르면 2026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17.2만 세대로 예상됐다. 전년도 입주 물량보다 약 28% 감소한 규모다.
서울의 감소 폭은 더 크다. 서울의 2026년 아파트 입주 물량은 1만 6,412세대로, 작년보다 48%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다. 김은선 직방 빅데이터랩실 랩장은 “(입주물량 축소로 인한) 시장 영향은 일률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지역별로 상이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며 “내년 입주물량 감소는 전국적인 공급 충격이라기보다 지역별 수급 여건과 과거 공급 이력에 따른 조정 국면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2026년도 주택전세가격 전망 (출처 | 주택산업연구원 제공)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전월세 시장의 가격 상승 압력이 지난해보다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올해 전세가격이 전국 평균 2.8%, 수도권 3.8%, 서울 4.7%, 비수도권 1.7% 상승할 것이라 예측하며, 원인으로는 입주 물량 감소와 수도권 토지거래허가제 등을 꼽았다. 월세 시장도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원은 “입주물량 부족과 월세 전환추세가 큰 수도권의 월세가격 상승압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임대차 계약에서 월세가 차지한 비중은 지난해 평균 43.2%에서 올해 47.9%로 상승했다. 특히 신규 전·월세 계약 가운데 월세와 반전세 등 월세형 계약의 비중은 지난해 47.5%에서 올해 52.5%로 높아졌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서 집주인들이 기존 전세를 보증부 월세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택 가격대별로는 임대차 시장의 대응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분위기다. 남 연구원은 “15억원 이하 아파트에서는 임차인이 계약갱신청구권을 아껴두는 현상이 나타나는 반면, 15억원 이상 아파트에서는 보유세 부담으로 임대인이 월세 전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세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더 좁아지고 있다.
"보증금 미리 올릴게요” 전월세난과 ‘전세의 월세화’ 앞으로 어떻게 하나?...정부의 대책 필요
업계에서는 임차인의 부담이 커지는 흐름이 단기간에 꺾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임대차 수요가 순수 사용 목적의 실수요인 반면, 절대 공급량이 부족해 매물 가뭄과 가격 상승의 괴리가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세입자들이 재계약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면서 매물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 이른바 ‘전월세 잠김’ 현상도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미 전국 월세지수와 월세 순환변동값은 2023년 하반기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고 수도권 월세가격도 입주 가뭄과 전세의 월세 전환 가속화 속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 같은 구조에서 임차인의 선택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갱신권을 쓰면 5% 상한 보호를 받지만 단 한 번뿐인 권리를 소진해 다음 계약 협상력이 사라지고, 갱신권을 아끼면 7.5% 안팎의 보증금 인상이나 보증금→월세 전환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임차인 다수는 후자를 선택하면서 '신규 계약은 월세로, 재계약은 5% 초과 인상으로' 시장이 이중 압박을 받는 형국이다. 따라서 서울·수도권 전월세 불안이 일시적 가격 변동을 넘어 구조적 주거비 부담으로 굳어질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임대 공급 확대와 세제·금융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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