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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의 영화사적 의미
1962년 ‘살인번호(Dr. No)’로 시작된 007 시리즈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식 25편, 누적 흥행 70억 달러를 기록한 영화사 최장수 단일 프랜차이즈이자 현대 첩보 액션 영화의 기틀을 마련한 기념비적 시리즈다.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제임스 본드를 영화 역사상 세 번째로 위대한 영화 영웅으로, "본드... 제임스 본드"를 영화사 22번째 위대한 대사로 선정했을 만큼, 이 시리즈는 단순한 흥행 공식을 넘어선다. 본드는 냉전의 긴장, 영국 제국주의의 향수부터 사회적 성 역할과 권력 관계를 다루는 담론에 이르기까지 매 시대의 불안과 욕망을 스크린 위에 투영해온 문화적 지표였다.
‘골드핑거’의 애스턴 마틴과 1995년 ‘골든 아이’ 이후 오메가의 브랜드 가치, 셜리 바시부터 아델까지 이어지는 주제가의 계보, 그리고 톰 포드가 "본드를 입힌다는 것은 신화를 입히는 것"이라 말하는 등 이 시리즈는 패션과 예술, 산업 전반에 걸쳐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숀 코너리의 마초적 야성부터 다니엘 크레이그의 인간적 취약함까지, 본드는 매 시대의 요구에 맞춰 스스로를 리부트하며 패션·음악·산업 전반의 지형을 바꾼 '턱시도를 입은 현대판 신화'로 군림해왔다. 007은 이제 영화를 넘어 시대 그 자체를 비추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007 제임스 본드 1대부터 6대까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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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의 정체성을 확립한 초대 본드 숀 코너리(Sean Connery)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1962년 ‘살인번호’부터 1971년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등 총 6편에 출연했다. 그는 야성적 매력과 냉혹한 킬러의 면모를 갖춘 '본드의 원형'으로서 이후 모든 본드를 평가하는 기준점이 되었다. 이어 호주 출신의 2대 조지 라젠비(George Lazenby)는 1969년 ‘여왕 폐하 대작전’ 한 편에만 출연했으나, 유일하게 결혼과 비극적 상실을 겪는 설정을 통해 본드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깊게 투영한 인물로 기록된다. 연기 경력이 전무한 모델 출신으로 캐스팅된 이례적 사례이며, 라젠비는 7편 계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떠난 인물이기도 하다. 잉글랜드 출신의 3대 로저 무어(Roger Moore)는 1973년 ‘죽느냐 사느냐’부터 1985년 ‘뷰 투 어 킬’까지 총 7편으로 역대 최다 출연 기록을 세우며 여유로운 위트와 화려한 가젯을 활용해 시리즈를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 블록버스터로 안착시켰다.
웨일스 출신의 4대 티모시 달튼(Timothy Dalton)은 1987년 ‘리빙 데이라이트’와 1989년 ‘살인 면허’에서 원작 소설에 가장 충실한 어둡고 고뇌하는 킬러를 재현했다. 당시엔 흥행 부진으로 조용히 퇴장했지만, 다니엘 크레이그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시대를 앞서간 배우라는 재평가를 받았다. 아일랜드 출신의 5대 피어스 브로스넌(Pierce Brosnan)은 1995년 ‘골든 아이’부터 2002년 ‘어나더 데이’까지 4편의 작품을 통해 코너리의 강인함과 무어의 우아함을 결합한 '모던 젠틀맨'의 정석을 보여주며 시리즈의 화려한 부활을 이끌었다. 마지막으로 잉글랜드 출신의 6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는 2006년 ‘카지노 로얄’부터 2021년 ‘노 타임 투 다이’까지 5편에 출연하였다. 발표 당시 "금발에 비전형적 외모"라는 이유로 거센 반발을 샀으나, ‘카지노 로얄’ 개봉 직후 모든 논쟁은 사라졌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간상을 창조해 시리즈 역사상 최고의 비평적 성과와 흥행 기록을 동시에 세웠다. ‘스카이폴’로 시리즈 최초 10억 달러 돌파와 아카데미 수상을 이뤄냈고 2021년 ‘노 타임 투 다이’에서 007 역사상 처음으로 스크린 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새로운 지평: 드니 빌뇌브와 스티븐 나이트의 만남
다니엘 크레이그가 퇴장한 후 5년, 시리즈의 창작권이 아마존 MGM 스튜디오로 이전되면서 007은 역사상 가장 큰 구조적 전환을 맞이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스트리밍 시대에 걸맞은 프랜차이즈 리부트로서, 제작자 에이미 파스칼과 데이비드 헤이먼은 레거시 보호와 현대적 상업성의 균형을 주요 비전으로 삼고 있다. ‘듄’과 ‘시카리오’를 통해 시각적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 드니 빌뇌브가 메가폰을 잡았으며, 그는 본드를 “성스러운 영역”이라 표현하며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빌뇌브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숀 코너리의 ‘살인번호’를 보며 자라왔고 007은 꿈의 프로젝트”라고 밝혀왔는데 공개 구애 끝에 그가 007의 감독이 된 것이다. 각본은 ‘피키 블라인더스’의 창시자 스티븐 나이트가 맡아 이언 플레밍의 초기 소설들에서 영감을 얻은 '오리진 스토리'나 1950-60년대 배경의 시대극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촬영은 빌뇌브의 차기작 일정을 고려해 2026년 말 또는 2027년 초 영국의 파인우드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시작될 예정이며, 현재 업계에서는 2028년을 유력한 개봉 시점으로 전망하고 있다. 초기 루머에 따르면 새로운 영화는 본드가 살인 면허를 얻기 전의 과정이나 인공지능의 위협에 맞서는 현대적 첩보전을 다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Who will be the next James Bond?
현시점 제7대 제임스 본드로 거론되는 인물들 중 제일 유력한 후보인 칼럼 터너(Callum Turner), Photo: Doreen Kennedy / Alamy
차기 본드 캐스팅은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제임스 본드는 영국 또는 영연방 출신의 남성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에 가까운 조건이나 암묵적 룰이 존재하며, 전임자 피어스 브로스넌 역시 이를 당연한 전제로 언급했다. 한 가지 새롭게 들리고 있는 부분은 나이 조건인데 아마존 MGM은 장기적인 프랜차이즈 운영을 위해 기존보다 어린 30대 전후의 배우를 물색하고 있단 소문이다. 오래전부터 이름이 오르내리던 후보들이 많았지만, 이번 아마존 체제 전환 이후 판세는 크게 달라졌다. 현재까지 유력 후보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네 명의 최근 동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차기 007 제임스본드 후보자들 중 일부. 왼쪽부터 칼럼 터너(Callum Turner),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 조시 오코너(Josh O'Connor), 에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 Photo: Doreen Kennedy, Doug Peters, Abaca Press / Alamy, Graphic: Sommelier Times
2026년 기준, 여러 시장 데이터와 여론이 주목하는 가장 유력한 후보는 칼럼 터너(Callum Turner)로, 그는 영국적인 외모와 모델 출신의 비율, 팝스타 두아 리파와의 관계로 화제성까지 확보해 '가장 준비된 본드'로 불린다. 애플TV+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와 A24 신작 ‘이터니티(Eternity)’로 주목받은 35세 영국 배우다. ‘사실상 확정되었다’, ’강력 후보’등 말이 많지만 여타 매체들에서는 "아직 스크린 테스트 단계이며 확정된 바 없다"고 정정하는 등 여전히 확답을 내리긴 이르다는 반응이다.
뒤를 이어 제이콥 엘로디(Jacob Elordi)가 지지를 받으며 조지 라젠비 이후 두 번째 호주 출신 본드 후보로 떠올랐으며, 190cm가 넘는 피지컬로 역대 최장신 본드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영화 ‘솔트번’과 에메랄드 페넬 감독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이후 차세대 제임스 본드로 더 많은 언급이 되고 있는 중이다. 조쉬 오코너(Josh O'Connor)는 ‘더 크라운’의 찰스 왕세자와 ‘챌린저스’의 테니스 선수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로 차기 007로 급부상 중인 배우 중 한 명이다. 이 소문의 시작은 그 자신의 농담이었다. Variety의 배우 대담 프로그램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와 나란히 앉아 "내가 본드를 하면 웃기지 않겠냐"고 한 말이 보도로 번졌다. ‘피키 블라인더스’에서 스티븐 나이트와의 인연도 강점으로 꼽힌다. 2022년 말경 스튜디오 스크린 테스트 이후 오랫동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어 온 에런 테일러존슨(Aaron Taylor-Johnson)도 있다. 아마존 인수 이후 과정이 리셋됐다는 시각도 있어, 현재는 혼재된 평가를 받는다.
이 외에도 해리스 디킨슨(Harris Dickinson), 헨리 카빌(Henry Cavill), 테오 제임스(Theo James), 레지 장 페이지(Regé-Jean Page), 이드리스 엘바(Idris Elba), 조 알윈(Joe Alwyn), 폴 메스칼(Paul Mescal), 댐슨 이드리스(Damson Idris), 그리고 최근 합류한 최연소 후보 루이스 파트리지(Louis Partridge) 등이 물망에 올라 있다. 아직 공식 발표는 없다.
비평과 흥행이 모두 인정한 역대 Top 3 007
영화 Casino Royale(2006) 속 Le Chiffre(악역) 매즈 미켈슨(Mads Mikkelsen)의 모습, Photo: Sony Pictures
마무리하며, 새로운 본드가 넘어야 할 미학적 정점이자 역대 최고의 찬사를 받은 세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숀 코너리 주연의 ‘골드핑거(Goldfinger, 1964)’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007 공식'을 완성한 작품이다. 로튼 토마토 99%로 시리즈 역대 최고 평점이며 ”쉐이킨 낫 스터드", 애스턴 마틴 DB5, 온몸에 금칠을 한 채 발견된 본드걸 질 매스터슨의 이미지와 같은 공식이 이 한 편에서 탄생했다. 앤서니 싱클레어의 '글렌 체크 3피스 수트'는 남성 복식의 클래식이 되었으며, 프로덕션 디자이너 켄 아담이 설계한 포트 녹스 내부 세트는 시각적 압도감을 선사한다. 오스카 음향효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음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데뷔작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 2006)’은 죽어가던 시리즈를 현실적이고 거친 액션으로 부활시킨 최고의 리부트작이다. 린디 헤밍이 디자인한 브리오니(Brioni) 턱시도는 본드가 의상을 '무기'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캐릭터의 성장을 시각적으로 증명했다. 로튼 토마토 94%, 전 세계 흥행 6억 1천만 달러의 기록을 세웠다. 마지막으로 ‘스카이폴(Skyfall, 2012)’은 시리즈 최초 11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시각적 마스터피스다. 감독은 샘 멘데스이며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의 탐미적인 영상미와 톰 포드(Tom Ford)의 슬림한 슈트는 본드의 현대적 세련미를 완성하며 상업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음향편집상 수상작이다.
누가 차기 본드가 되든, 그는 숀 코너리가 구축한 원형과 다니엘 크레이그가 확장한 인간적 깊이 사이에서, 또 하나의 시대적 얼굴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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