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제383조 내세운 삼성전자, ‘시차 임기제’ 도입 위한 법적 근거 마련
시차임기제 도입으로 주주참여 제한 우려… HD현중·삼성SDS 등도 도입
기업거버넌스포럼, “합리적 설명 없는 임기 변경안, 적극 부결시켜야”
2025년 3월 19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제56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SG경제신문=김제원 기자] 삼성전자가 오는 3월 18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의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로 수정하는 정관 변경안을 처리하면서, 상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꼼수'라는 비판이 나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13일 논평을 통해 이번 개정안이 이사들의 임기를 2년·3년 등으로 엇갈리게 배치하는 ‘시차 임기제’ 도입을 위한 법적 근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시차 임기제가 도입될 경우 특정 시점에 교체 가능한 이사 수가 줄어들어, 소수 주주가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집중투표제’의 효과가 사실상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HD한국조선해양, 삼성SDS, 한화솔루션, 오뚜기 등 코스피200 주요 상장사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포럼 측은 “미국과 일본 등 글로벌 시장은 이사 임기를 1년으로 설정해 매년 주주의 재신임을 받는 추세”라며, “국내 기업들의 행보는 주주 참여를 제한하려는 ‘법기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포럼은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주주들에게 기업 측의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할 것을 권고했다. 특히 합리적인 근거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 반대표 행사를 통한 안건 부결 등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관 개정
삼성전자는 오는 3월 18일 정기 주총에서 이사의 임기를 ‘3년으로 한다’에서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로 바꾸는 정관 개정안을 상정했다. 회사 측은 상법 제383조 제2항이 “이사의 임기는 3년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정관을 법과 일치시키기 위한 ‘조문 정비’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변경은 이사 임기를 3년 이내에서 탄력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임기를 서로 다르게 두는 ‘시차 임기제’를 도입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향후 집중투표제의 실효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정관 일부 변경의 건(제1호 의안). 자료=삼성전자 주주총회소집공고문
시차 임기제는 이사들의 임기를 2년·3년 등으로 분산해 특정 시점에 많은 수의 이사가 동시에 임기 만료를 맞지 않도록 설계하는 방식으로, 한 번의 집중투표에서 교체가 가능한 이사 수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이번 상법 개정의 핵심 취지는 집중투표제 배제를 어렵게 해 주주들이 이사 선임에 보다 실질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려는 것인데, 정관 문구를 ‘3년을 초과하지 않는’ 식으로 바꾸는 것은 취지를 우회하려는 ‘법기술’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삼성전자 외에도 HD한국조선해양, 삼성SDS, 한화솔루션, 오뚜기 등 코스피200 주요 기업 다수가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바꾸거나, 이사 수·임기를 조정하는 정관 개정안을 이번 주총 안건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은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상장사들이 상법 개정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수용하기보다, 시장이 알아서 의도를 추론하도록 방치한 채 최소한의 문구 변경에 그치고 있다”며 “이사 임기와 같이 지배구조 핵심 요소를 다루면서도 주주에게 충분한 정보와 설득 과정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정관 내 글로벌 이사회 임기 흐름
해외 사례와의 비교도 제기된다. 포럼은 “미국 상장사 대부분은 이사 임기를 1년으로 두고 매년 전원 재신임을 받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일본도 위원회 설치회사 형태의 대기업·상장사 상당수가 이사 1년 임기를 운영하고 있다”며 “글로벌 스탠다드는 이사 임기를 짧게 두고 자주 주주 신임을 받도록 하는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내 대표 기업들이 시차 임기제를 활용해 어떻게든 집중투표제를 피하려는 정관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국제적 흐름과도 어긋나며,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도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TSMC 이사회 구성. 표=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제도 개선 방향과 관련해 포럼은 상장회사의 경우 이사 임기를 원칙적으로 1년으로 정해 매년 주주로부터 재신임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포럼은 “이사 임기가 1년이라면 별도의 임기 제한 규정이 없어도 매년 주주들이 성과와 독립성을 평가해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수 있어, 독립 이사의 6년 임기 제한 등 형식적 규제도 상당 부분 불필요해진다”며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없이도 한국거래소가 상장규정과 표준정관을 통해 이런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러한 제도적 ‘정비’가 실현되기 전까지는 주주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점도 짚었다. 포럼은 “이번 정기 주총에서 시차 임기제 도입이나 집중투표제 회피에 악용될 수 있는 이사 수·임기 축소 정관 개정안에 대해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주주들이 회사 측에 충분하고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합리적 설명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해 관련 안건을 부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ESG평가원 “BNK금융 주주추천 사외이사 좋은데 RSU 안건은 반대”
반토막 LG화학 주가 '어디로'...팰리서캐피탈 주주제안 '받고 더' 해야
“3차 상법개정 자사주 소각 中企예외 안돼”...코스닥 정상화에 ‘역행’
상법 개정 뒤 지배구조 안착, '시장 참여자 행동'에 달렸다
올 상장사 정기주총, 개정 상법 '우회 꼼수' 경연장 되나
“자사주 소각, 한도 없는 ‘경영상 목적’ 예외 조항 삭제해야”
저작권자 © ESG경제
키워드
Tags
#삼성전자
#주주총회
#정관
#이사회
#사외이사
#지배구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김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기사저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