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건축이 무대가 된 사흘…관현악·오페라·무용으로 자연과 예술의 경계 허물어
정원 산책부터 다이닝·야간 공연까지…체류형 예술축제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사유원 야외음악당 심포니6, 국립심포니 공연 모습 . 사유원 제공
숲속 공연장에서 울려 퍼지는 오페라의 선율과 무대 위 춤사위는 객석에 앉은 관객의 귀와 눈, 그리고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 풀벌레의 울음, 숲이 품은 향기와 저녁의 서늘한 공기가 음악과 움직임 사이로 스며들며 공연의 일부가 됐다. 자연을 배경으로 삼은 공연이 자연과 분리된 예술을 감상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공간과 감각이 함께 호흡하는 경험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대구 군위 팔공산 자락의 산지 정원 사유원에서 열린 ‘제1회 사야국제음악제(SAYA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2026)’는 이러한 가능성을 무대 위에 펼쳐 보이며 사흘간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THE OPENING’을 주제로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열린 이번 음악제는 야외음악당 ‘심포니6’와 수변무대 ‘한유시경’을 중심으로 관현악, 성악, 현대무용, 실내악, 콘서트 오페라 등 다채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정원 산책과 낮 공연, 다이닝, 저녁 공연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공연예술을 특정 시간과 장소에 한정된 관람 행위에서 체류와 감각의 경험으로 확장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첫 회를 맞은 음악제는 티켓 오픈 이후 1인당 50만원의 VIP 좌석이 매진되는 등 개막 전부터 관심을 모았다. 자연과 건축, 공연예술과 미식을 결합한 축제의 구성을 통해 국내 공연예술 축제의 새로운 형식을 제시하고, 사유원이라는 장소가 지닌 공간적 특성을 공연예술의 언어로 풀어내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야외음악당 ‘심포니6’가 개관 1년 만에 ‘2026 인터내셔널 아키텍처 어워즈(The International Architecture Awards 2026)’ 공공 공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음악제와 건축 공간이 함께 지닌 의미를 더했다.
(좌)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우)안은미컴퍼니 공연 모습 . 사유원 제공
◇ 자연과 건축을 무대로 펼쳐진 다섯 개의 공연
음악제의 첫날은 야외음악당 심포니6의 건립을 축하하는 무대로 시작됐다. 지휘자 아드리앙 페리숑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과 비제의 ‘카르멘 모음곡’을 연주하며 개막 무대를 장식했다. 음악당의 이름에 영감을 준 ‘전원’ 교향곡은 자연을 음악으로 옮긴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유원의 숲과 정원, 건축이 어우러진 공간적 맥락과도 맞닿았다.
둘째 날 낮에는 베이스 임채준과 소프라노 조선형이 사랑을 주제로 한국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를 선보였다. 저녁에는 안은미댄스컴퍼니가 사유원 헌정작 ‘사유의 춤: 이쪽저쪽’을 초연했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오가는 움직임을 자연 속에 구현한 이 작품은 무용수의 신체와 주변 환경이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야외무대의 특성을 드러냈다.
셋째 날 낮에는 한유시경 수변무대에서 피카소앙상블이 클래식음악과 영화음악을 아우르는 무대를 펼쳤다. 자연에서 출발한 선율을 다시 자연 속에서 연주하며 관객과 음악이 만나는 시간을 마련했다.
폐막 공연으로는 콘서트 오페라 ‘오페라 도플갱어: 베르디 vs. 푸치니’가 무대에 올랐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에 등장하는 비올레타와 푸치니의 ‘나비부인’ 속 초초상을 하나의 무대에 배치한 작품이다.
유럽에서 두 오페라를 여러 차례 선보인 5명의 베테랑 배우들은 서로 다른 시대와 배경 속에서 비슷한 운명을 맞은 두 여인의 이야기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서로 다른 작곡가의 작품과 인물을 교차시키는 구성은 두 오페라의 서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으며, 폐막 무대에 대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에 참여한 예술가들에게도 사유원의 공간은 특별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피카소앙상블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음악을 다시 자연 속에 풀어놓고 관객과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으며, 폐막공연 연출가는 유럽의 가든 오페라가 지닌 매력을 한국 관객에게 전하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다.
이는 자연을 공연의 장식적 배경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감각과 관객의 수용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창작 환경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사유원 야외음악당 심포니6, '오페라 도플갱어: 베르디 vs. 푸치니' 공연 모습 사유원 제공
◇ 정원 산책과 식사, 음악 감상이 하나의 경험으로
이번 음악제는 공연 자체뿐 아니라 공연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의 구성에도 초점을 맞췄다. 관객들은 정원을 산책하고 석양이 드리운 식탁에 머문 뒤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사유원의 풍경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과정을 체험하면서 공연을 기다리는 시간마저 축제의 일부로 받아들이도록 한 것이다.
석양으로 정원 곳곳이 물드는 시간에는 사담 다이닝의 특별 디너 코스와 호텔 인터불고 대구의 디너 뷔페가 마련됐다. 공연 전과 인터미션에는 야외음악당 인근 수변 데크에서 무알콜 와인, 수제 바비큐, 사유원 모과 음료, 커피와 디저트 등을 제공했다. 관객들이 공연을 중심으로 식사와 대화, 휴식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해 음악제의 체류형 성격을 강화했다.
야외 공연장에서 자연의 소리는 더 이상 통제해야 할 변수가 아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풀벌레 소리는 연주 사이로 스며들었고, 해가 진 뒤에는 조명 아래 드러난 건축과 숲이 무대의 또 다른 풍경을 형성했다. 실내 공연장에서 분리되기 쉬운 자연의 소리와 공기의 변화가 음악 감상의 감각적 조건으로 작용한 셈이다.
음악제 기간 사유원은 관람객의 체류 시간을 밤까지 확장하며 낮과는 다른 정원의 모습을 선보였다. 공연을 마친 관객들은 조명이 비추는 정원길을 걸으며 어둠 속 숲의 공기와 소리를 경험했다. 한 관객은 “밤의 정원이 지닌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한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사유원 관계자는 “사유원의 아침부터 밤까지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관객이 자연과 예술을 온전히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 이번 음악제의 출발점이었다”며 “첫 회의 운영 경험과 관객 의견을 바탕으로 자연과 건축, 공연이 긴밀하게 만나는 사야국제음악제만의 방향을 더욱 선명하게 다듬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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