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사설] 국가 채무 시계, 너무 빠르지 않은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 심화라는 파고 속에서 이를 장밋빛 미래로만 낙관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만약 기대했던 만큼의 세수가...

[사설] 국가 채무 시계, 너무 빠르지 않은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의 상승 속도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정부가 최근 엄청난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을 시작하자마자 정치권 일각에서 벌써 2차 추경론을 군불 지피듯 꺼내 드는 것은 대단히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당장의 위기 모면에만 급급한 포퓰리즘적 발상은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1차 추경이 반도체 경기 회복과 증시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 덕분에 국채 발행 없이 가능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미래에 갚아야 할 빚을 줄일 기회를 포기하고 현재의 지출로 돌린 것에 불과하다.

재정 당국이 2차 추경론에 대해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타당한 처사다. 현재의 국가채무 비율은 이미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하며 빠르게 치솟고 있다. 국가 부채의 절대적 규모뿐만 아니라 그 증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이다. GDP라는 모수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분자인 채무만 비대해진다면 국가 신인도 하락은 시간문제다. 하반기에 또 한 번의 추경을 감당할 만큼 우리 재정의 기초 체력이 튼튼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물론 중동 사태의 향배는 가늠하기 힘든 변수이긴 하다.

앞을 모르는 지금의 사태가 3개월 이상 장기화하거나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차질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에 미칠 충격파는 상상 이상일 수 있다. 그래서 정책 수단은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아껴두어야 하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추경이 상시적인 정책 수단처럼 활용되는 순간 재정의 비효율성은 극대화되고 시장의 내성은 약해진다. 지금은 추가 지출을 논하기보다 이미 확정된 1차 추경 예산이 현장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되고 있는지 낭비 요소는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 나가야 한다. 어찌됐건 재정은 한정된 자원이다. 세수 전망치를 이미 최대한으로 높여 잡은 상황에서 추가적인 세수 여력은 불투명하다.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지만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 경쟁 심화라는 파고 속에서 이를 장밋빛 미래로만 낙관하기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만약 기대했던 만큼의 세수가 걷히지 않는다면 무리하게 편성한 추경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어깨를 짓누르는 채무의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권은 재정을 화수분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토는 지극히 위험하다. 한번 무너진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과 혹독한 고통 분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가진 돈을 어떻게 더 현명하게 쓰느냐에 대한 고민이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