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보] 설탕·밀가루·전분 및 전분당 제조업체의 담합이 잇달아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이들 업체에 부과한 과징금은 설탕 4083억원, 밀가루 6710억원, 전분·전분당 7476억원 등 총 1조8269억원에 이른다. 액수만 보면 강도 높은 제재지만 소비자가 얼마나 손해를 입었고, 그 피해를 어떻게 회복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설탕과 밀가루 업체는 약 20년 전에도 가격 담합으로 제재받았다. 그런데도 설탕은 2021년부터, 밀가루는 2019년부터 다시 담합을 이어온 것으로 조사됐다. 전분·전분당 담합 역시 7년 넘게 지속됐다. 제재 이후에도 담합이 반복됐다면 과징금과 형사처벌이 실효적인 억제 수단인지 의문이다.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은 가공식품과 외식업 전반에 쓰이는 기초 원재료다. 이들 품목의 가격 변화는 제과·제빵, 음료, 빙과, 소스 등 여러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담합 피해를 해당 시장의 거래기업에만 한정하는 것이 타당한가.
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22년 1분기부터 2025년 4분기까지 국제 소맥 가격은 15.2% 내렸지만 국내 밀가루 가격은 20.3% 올랐다. 같은 기간 원당은 7.8%, 설탕은 37% 상승했다. 물론 환율과 인건비, 에너지·물류비 등도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이 수치만으로 담합 피해액을 확정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담합의 부당이익과 소비자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설탕과 밀가루, 전분당은 가공식품과 외식업 전반에 쓰이는 기초 원재료다. 이들 품목의 가격 변화는 제과·제빵, 음료, 빙과, 소스 등 여러 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사진=환경일보DB
과징금은 담합을 제재하는 행정적 수단으로 소비자 배상과는 별개다. 다수 소비자에게 소액 피해가 분산되는 담합 사건에서는 개인이 손해와 인과관계를 입증해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 과징금이 커져도 소비자가 피해 회복을 체감하기 힘든 구조다.
담합은 산업과 생활 전반에서 시장의 신뢰와 공정한 가격 질서를 훼손한다. 공정위는 담합 관련 매출액과 과징금뿐 아니라 기업의 부당이익과 소비자 피해 규모를 객관적으로 산정·공개해야 한다. 과징금과 연계한 피해구제기금도 법적 근거와 지급 기준, 재원 조성 방식을 포함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같은 원인으로 피해를 본 소비자들이 공동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어야 기업의 배상 책임도 현실화된다. 담합으로 얻는 이익이 제재에 따른 부담보다 크다면 기업은 과징금을 감내할 수 있는 비용으로 여길 수 있다. 반복되는 담합은 적발·과징금 중심 제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부는 담합의 실질적인 영향을 검증하고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배상받을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집단소송제 논의도 이 같은 제도 개선의 틀 안에서 서둘러 구체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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