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에 당첨됐지만 대출이 안 나오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경기도 금천구, 36세 사무직)
“대출이 예상보다 적게 나와 부모님 지원액을 더 늘릴 예정입니다.” (서울시 강남구, 30세 공기업)
“혼자 힘으로 집을 마련할 수 있게 제 소득과 상환 능력만큼은 레버리지를 쓸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기도 양주시, 35세 중소기업)
정부의 고강도 가계대출 규제 이후 청년들이 체감하는 내 집 마련 문턱이 한층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제신문이 대학생과 직장인 등 청년층
61명을 대상으로 심층 설문한 결과 대출 한도 축소로 자금 계획이 틀어지면서 부모 지원에 의존하거나 청약과 주택 매매를 미루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응답자들은 청년 실수요자만큼은 대출 한도를 풀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젊은 세대가
꼽은 내 집 마련의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집값과 대출 규제였다. 복수 응답 기준으로 91.7%(55명)는 높은 집값을, 68.3%(41명)는 대출 규제를 선택했다. 이어 낮은 소득(28.3%), 높은 금리 부담(18.3%)이 뒤를 이었다.
다만 심층 인터뷰에서는 집값 자체보다 대출 규제로 실제 주거 계획이 바뀌었다는 사례가 많았다. 대출 한도가 예상보다 적게 나오면서 청약이나 상급지 갈아타기를 포기하거나 서울 대신 경기권으로 눈을 돌렸다는 응답이 이어졌다.
서울 금천구에서 월세로 거주하는 36세 직장인은
“청약에 당첨됐지만 대출이 나오지 않아 결국 포기했다”며 “당첨보다 잔금을 마련할 수 있느냐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신혼집을 알아보던 한 30세 법조계 종사자는 “서울에서 경기권으로 눈을 낮췄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며 “부모 도움을 받아도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월세를 택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35세 회사원도 “매물이 줄고 집값이 오른 상황에서 대출까지 조이면서 실수요자만 더 어려워졌다”며 “대출 부족으로 상급지 갈아타기를 포기했다”고 했다.
특히
이번 심층 인터뷰에서는 ‘부모’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줄어든 대출 한도에 부모 지원액을 늘렸다는 응답이 많았다.
반대로 부모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청년들은 내 집 마련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답했다. 부모 지원 여부가 청년들의 내 집 마련 가능성을 좌우하는 현실이 확인된 셈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30세 공기업 직원은 “대출 가능 금액이 예상보다 적어 부모님 지원을 더 받을 예정”이라며 “부모 도움 없이는 자금 계획을 맞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경기 시흥시에서 전세로 거주하는 32세 직장인은 “부모님 지원을 받기 어려워 사실상 내 집 마련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부모의 경제력이 주거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IT업체에 다니는 39세 직장인은 “부모 지원 여부가 내 집 마련을 결정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며 “성실하게 일하고 저축한 청년에게 실질적인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들은 실수요자도 소득과 상환 능력에 맞춰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청년·신혼부부·생애최초 구매자를 대상 대출 한도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기 저리 대출 확대와 DSR 규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35세 회사원은
“부모 지원 없이는 서울 전세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이라며 “소득과 상환 능력 범위 안에서는 스스로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30세 고소득 회계사도 “
결혼을 준비 중인데 맞벌이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있어도 내 집 마련 사다리가 끊긴 것 같다”며 “상환 능력을 고려한 대출과 실수요자 소득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출의 양보다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제안도 이어졌다. 금융권에서 일하고 있는 39세 직장인은 “단순히 대출 한도를 늘리기보다 장기 고정금리·저리 대출을 확대해 상환 부담을 줄여야 한다”며 “DSR도 생애최초 실수요자를 고려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택 공급 확대도 주요 과제로 꼽혔다. 서울 서대문구의 35세 회사원은 “공공과 민간 모두 꾸준히 주택을 공급하고 정비사업을 활성화해 실수요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청년들의 요구와 정부 정책의 무게중심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이달 말 발표할 부동산 대책에 청년층 전월세 금융 지원 확대 방안을 담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생애최초 주택 구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는 집값 자극 우려 등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이다.
시장 현실과 정책금융의 간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 정책모기지인 보금자리론은 2017년부터 6억 원 이하, 디딤돌대출은 5억 원 이하 주택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017년 1월 5억6000만 원에서 올해 5월 13억3000만 원으로 약 135% 상승했다. 집값은 두 배 넘게 뛰었지만 정책금융 기준은 10년 가까이 제자리다.
이번 설문에서도 청년들은 전월세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34세 직장인은 “내년 초 전세 계약이 끝나는데 전월세 물량이 너무 적다”며 “대출을 받아 집을 살까 고민했지만 금리 부담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서울 용산구에서 전세로 거주하는 캐피탈사 재직 34세 직장인 역시 “가계대출 총량 규제로 주거 사다리가 무너졌다”며 “임대주택 중심 정책보다 실수요자가 집을 살 수 있는 길도 함께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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