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울산시장이 31일 울산시청 상황실에서 서남교 행정부시장과 신민식 경제부시장을 비롯한 실·국장 등 간부 공무원, 박맹우 전 울산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민선 9기 울산시의 최대 현안인 울산 도시철도 1호선 건설사업의 계속 추진 여부를 결정짓는 '트램 관련 대응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유은경기자 2006sajin@
울산시가 지난달 31일 도시철도 1호선 트램 사업의 일시정지를 해제하면서도 사업 중단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추진'과 '중단' 사이에서 선택한 현실적인 절충안으로 볼 수 있다.
김상욱 울산시장은 트램 사업의 타당성과 노선, 교통혼잡, 운영 적자에 여전히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 제작과 설계·시공 계약이 이미 체결돼 있어 시장의 정책 판단만으로 사업을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울산시는 결국 법률적으로 보장된 정지 가능 기간을 더 소진하지 않기 위해 사업 절차를 재개하되, 실제 공사 착수 전까지 합법적인 중단 방안을 계속 찾는 이중 전략을 택했다.
울산시가 사업을 당장 중단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계약이다.
현대로템과는 634억원 규모의 수소트램 9편성 제작·구매 계약을 체결했고, 한신공영 컨소시엄은 설계·시공 일괄입찰의 우선시공분 계약을 맺었다. 본공사 계약은 아직 체결되지 않았지만, 우선시공 계약 상대가 사실상 본공사 계약자의 지위를 확보한 구조다.
울산시가 복수의 법률기관에 자문한 결과 계약서에서 무효·취소·해지 사유를 찾기 어렵고, 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중단하면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한다는 의견이 공통적으로 제시됐다.
특히 손해배상 책임의 범주가 '이행이익', 즉 당초 계약대로 사업이 이행됐더라면 발생했을 이익까지 포함될 경우 손해배상 소송을 감수해야 해 최종 배상액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계약업체와의 합의 해지도 쉽지 않다. 현대로템과 한신공영 측은 계약을 포기하거나 손해 없이 변경할 경우 회사에 손해를 끼쳐 업무상 배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시장과 울산시 간부들이 한 달 동안 법률적·행정적·계약상 해법을 찾았지만 뚜렷한 출구를 확보하지 못한 이유다.
김 시장이 "이 사업은 정책 문제가 아니라 철저한 법률 문제"라고 규정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울산시는 계약상 추가 비용 없이 사업을 정지할 수 있는 60일 가운데 33일을 사용했다. 남은 기간은 27일이다.
정지를 계속하면 업체의 지연 비용이 발생하고, 60일을 넘기면 울산시의 계약상 책임이 커질 수 있다. 공사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중대 사유로 다시 중단해야 할 상황에 대비하려면 일부 기간을 남겨둘 필요도 있다.
따라서 이번 사업 절차 재개는 트램의 타당성을 인정한 결정이라기보다 제한된 법적 권한을 보전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울산시는 내년 2월까지 실제 도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실시설계와 사업계획 승인, 총사업비 협의 등 행정절차가 진행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기간에 법률적 중단 근거가 새로 확인되거나 계약업체가 합의에 응하고 중앙정부가 재검토 절차를 받아들인다면 사업을 다시 멈출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시장은 남은 27일을 보전하면서 내년 2월까지 중단 방안을 계속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는 법적 책임을 피하면서도 정책 방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사업 중단 가능성을 다시 열 수 있는 요인으로는 총사업비 증가와 정부의 사업 재검증이 거론된다.
울산 트램은 2023년 타당성 재조사 통과 당시 3,280억원에서 2025년 기본계획 승인 단계에 3,814억원으로 534억원 늘었다. 향후 공업탑 일대 지하 관로와 통신선, 도로시설물 이설, 공사 여건 변화로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물가 상승분을 제외하고 총사업비가 15% 이상 늘면 기획재정부의 타당성 재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업계획 적정성 재검토를 통해 사업 규모를 줄이거나 지속 추진 여부를 다시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재조사가 곧 계약 해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회의에서 법률 관계자들은 재검토 과정에서 국비 지원이 중단돼도 계약업체의 지위가 유지돼 울산시가 지연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사업을 중단하더라도 이미 체결된 계약에 따른 손실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가 남는다.
사업비 증액은 사업 중단의 명분이 될 수는 있지만 법률·재정 책임을 자동으로 해소하는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의미다.
김 시장이 트램 사업을 재검토한 핵심 이유는 시민에게 추진 여부를 다시 물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울산시의 공론화 조례안은 시의회에서 부결됐다. 법적 근거와 구속력을 갖춘 시민 공론화 절차를 추진할 수단이 사라진 셈이다.
이번 회의에서도 시민단체와 인수위원회 관계자들은 숙의토론과 시민 의견 수렴을 제안했다. 울산시 간부들은 조례가 없더라도 간담회와 설명회, 토론회 형태의 의견 수렴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업을 중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론화를 실시할 경우 결과가 실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시민 다수가 중단을 요구하더라도 울산시가 법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권한이 없다면 공론화는 의견 확인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울산시는 사업 중단 방법을 찾는 동시에 사업 관리에도 만전을 기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사업이 결국 계속된다면 문수로와 공업탑로터리 일대의 교통혼잡, 지하 관로 이설, 공사비 증가, 운영 적자 등에 대한 책임은 현 시정이 떠안게 된다.
이제 울산시는 기존 수요예측과 사업비 산정이 적정했는지 검증하고, 공사 중 교통대책과 개통 후 운영비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BRT와 시내버스 개편 등 대체 교통수단의 효과와 비용을 비교해 공개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사업 재검토를 이유로 관리가 느슨해지거나, 반대로 이미 재개됐다는 이유로 문제점 검증을 중단해서도 안 된다.
지난달 31일 결정은 트램 사업을 최종 승인한 것도, 백지화한 것도 아니다. 법적 제약 때문에 일단 절차를 진행하면서 마지막까지 출구를 찾겠다는 결정이다.
울산시가 내년 2월까지 실질적인 중단 방법을 찾지 못하면 트램은 예정대로 본공사 단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 동안 계약과 재정, 수요, 교통대책을 얼마나 투명하게 검증하고 시민에게 설명하느냐가 향후 사회적 갈등과 정책 신뢰를 좌우할 전망이다. 박인섭기자 inseob8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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