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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AI 강국의 조건, 사람을 위한 연구

인공지능(AI)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더 큰 모델, 더 많은 반도체, 더 빠른 상용화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한 나라의 AI 경쟁력은 산업계의 최전선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바로 돈이 되지는...

[백상논단] AI 강국의 조건, 사람을 위한 연구

김지희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인공지능(AI)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더 큰 모델, 더 많은 반도체, 더 빠른 상용화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한 나라의 AI 경쟁력은 산업계의 최전선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바로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사회의 어려운 문제를 풀고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연구가 함께 이뤄져야 진정한 AI 강국이 된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이 이 같은 ‘사람을 위한 AI’ 연구로 세계적 학회에서 잇따라 최고 논문상을 받은 것은 그래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필자가 참여한 슬럼(빈곤 지역) 탐지 연구로, 인공지능 분야의 대표 학술 대회인 AAAI에서 사회적 영향을 위한 인공지능(AI for Social Impact) 부문 올해 최고 논문으로 선정됐다. 다른 하나는 오혜연·김주호 교수 연구팀의 논문으로,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HCI) 분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대회인 CHI에서 올해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다.

필자가 차미영 교수(KAIST·막스플랑크 연구소), 양재석 전남대 교수와 함께 진행한 슬럼 탐지 연구는 위성 영상과 AI를 활용해 개발도상국 도시의 슬럼 지역을 찾아내는 기술을 제시했다. 슬럼은 도시 빈곤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지만, 많은 나라의 경우 어디에 얼마나 형성돼 있는지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이에 연구팀은 지역마다 모양, 밀집 양상, 건축자재 등이 다르게 나타나는 슬럼의 특성을 학습해 여러 도시에 적용할 탐지 기술을 개발했다. 이번 연구는 기술 자체보다 거시 통계로 잘 드러나지 않는 도시 빈곤과 불평등을 더 촘촘히 포착하고 데이터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정책과 자원 배분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 다시 말해 광고 효율 개선이 아니라 어디에 더 공공 개입이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AI다.

오혜연·김주호 교수 연구팀의 CHI 수상 연구도 같은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중학교 영어 교실에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글쓰기 지원 도구를 실제로 6주간 도입해 157명의 학생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AI의 단계별 힌트는 일부 학생에게 유익했지만, 하위권 학생의 의존성과 좌절을 키우기도 했다. 또 학생들이 AI의 도움을 받아 비슷한 수준의 글을 내놓으면서 교사가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을 파악하기 어려워지기도 했다. “AI를 활용하면 무조건 좋아진다”는 낙관론 대신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누구에게 새로운 장벽이 생기는지를 교실에서 직접 확인한 연구였다.

두 연구는 분야와 기술은 다르지만, 사람과 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세계 무대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우리 연구자들이 산업용 AI 경쟁을 따라가는 데 그치지 않고 AI를 어디에 어떻게 왜 써야 하는가 하는 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에서 세계적 수준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연구의 특징은 사회 전체를 위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다는 것이다. 데이터 구축과 현장 협업이 필요하고 성과가 곧바로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적 지원과 대학, 공공 연구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난달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인공지능 행동계획’에서 AI의 공공적 활용과 사회적 전환의 방향을 제시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사람을 위한 AI’는 선언만으로 크지 않기에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투자가 공익적일 뿐 아니라 한국에 전략적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빠른 디지털 전환, 높은 교육열, 촘촘한 공공 시스템, 국제개발 협력의 경험을 함께 가진 나라다. 이런 조건은 포용적이고 공공적인 AI를 시험하고 발전시키기에 유리한 토양이다. 세계가 AI 경쟁의 방향을 다시 묻고 있는 현시점에서 한국은 남이 만든 기술을 빠르게 따라가는 나라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AI의 의미와 방향을 먼저 보여주는 나라가 될 수 있다.

우리 연구자들은 이미 그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 같은 노력을 더 많이 가능하게 하는 지원과 그 가치를 정당하게 인정하는 국가적 안목이다. 사람을 위한 AI에서 세계 최고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의 지속 가능한 AI 경쟁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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