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자리에서 청년이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이것이다. “쉬는 기간 동안 무엇을 했나요?” 우리 사회는 일하고 있을 때는 내용을 묻지 않으면서, 쉬고 있다고 하면 곧장 설명을 요구한다. 이에 자격증, 프로젝트, 봉사활동, 무엇이든 내놓아야 안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쉰다고 하면, 마치 공백이 아니라 잘못처럼 취급되기 때문이다. '쉼'은 의미 그대로 회복의 시간이어야 하는데, 왜 유독 청년에게만 증명과 해명의 시간이 되는걸까?
어쩌면 그 배경에는 우리 사회가 지나온 시간이 있다. 우리나라는 단연,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성장한 대단한 나라다. 1인당 국민총소득은 1994년 9,459달러에서 2025년 3만6,745달러로 4배 가까이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우리 잠재성장률이 6%포인트 가량 빠르게 낮아졌다는 관측도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했던 시대의 DNA는 여전한데, 성장의 방식과 일자리 구조는 이미 달라진 것이다. 전쟁과 빈곤을 지나온 세대에게 멈춤은 곧 위기였기에 그 노력을 가벼이 여길 순 없다. 다만 시대는 바뀌었는데도 “멈추지 말라”는 정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시점은 아닐까.
이 시선이 가장 날카롭게 꽂히는 현장이 바로 ‘쉬었음청년’이다. 이름은 분명 상태를 설명하고 있지만, '쉬고 있다'는 이유로 평가가 함께 뒤따른다. 이들을 둘러싼 오해는 대개 세가지다.
첫째, 청년 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는 오해다. 그러나 쉰다고 해서 모두 포기한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오래된 소진을 회복하는 중이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할 방향을 고민하는 중이다. 나 역시 약 3년 간의 정부 근무, 스타트업 근무를 뒤로하고 출판과 창업을 준비하며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있다. 청년의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버텨낸 끝에 겨우 마련한 시간일 수 있음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발판임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쉬었음은 구조의 문제이다. 최근 청년이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문은 더 좁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3년간 줄어든 청년 일자리 21.1만 개 가운데 20.8만 개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기업들의 경력직 선호까지 겹치면서, 사회에 처음 진입하려는 청년들은 출발선에서부터 밀려나는 셈이다. 미취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상황은 더 나빠진다. 1년 늘면 ‘쉬었음’ 상태일 확률은 4.0%포인트 높아지고, 구직 확률은 3.1%포인트 낮아진다. 이런 와중에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은 오히려 청년들이다. 의사가 있어도 들어갈 문이 좁아진 구조에 막힌 것이며,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악순환은 반복되고 있다.
셋째, 눈이 높아서 쉰다는 오해다. 쉬었음청년의 일자리 눈높이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나 높지 않았다. 평균 희망임금은 약 3,100만원 수준으로 다른 미취업 청년과 비슷했으며, 희망하는 일자리 또한 중소기업 비중이 높았다. 문제는 눈높이가 아니라, 청년이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갖춘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아무 곳이나 들어가 경력을 쌓으라는 말은 쉬워 보여도, 추후 인정 받지 못하는 '물경력'이 되는 등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경우가 많다. 반복되는 탈락과 경력의 문턱 앞에서 최소한의 일자리 여건을 고수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있는 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해결책도, 그들을 향한 훈계도 아닌 ‘오해의 전환’이다. 청년의 쉼을 무능의 증거로 읽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안전하게 실패할 수 없고, 다시 시작할 힘도 얻기 어렵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추궁이 아니라, 왜 멈출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해다. 그만큼 지금 필요한 건, 그저 '소리 없는 응원'이다. 청년의 쉼을 죄처럼 다루지 않는 태도, 번의 멈춤이 영원한 낙인이 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면 충분하다.
나는 이들이 결국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지금 잠시 멈춰 있는 이들 역시 가능성과 힘을 가진 청춘이다. 그만큼 가장 답답한 건 당사자일 것이며, 단지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부디 그들에 대한 희망을 너무 빨리 거두지 않았으면 한다. 청년을 다그치는 사회에서, 청년이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 주는 사회’로 조금씩 건너갈 수 있기를 바란다.
박진감 전 행정안전부 청년보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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