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 [연합뉴스]
삼성전자 총파업을 나흘 앞둔 17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를 열고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습니다.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정부는 국민 경제 보호를 위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대응 수단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총리는 18일 사후조정을 "파업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못 박으며 노사 양측에 사생결단의 각오로 협상에 임할 것을 압박했습니다.
그렇다면 긴급조정권이란 무엇인가. 노조의 쟁의행위가 국민경제를 현저히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할 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발동할 수 있는 최후의 조정 절차입니다. 발동과 동시에 노조는 30일간 파업을 즉시 중단해야 하며, 중앙노동위원회가 강제 조정에 나섭니다. 조정이 끝내 불발되면 중노위가 사실상 강제 중재안을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1963년 도입 이후 역대 발동 사례는 단 네 차례로, 1969년 대한조선공사, 1993년 현대자동차, 2005년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이 전부입니다. 민간 제조업 대기업에 발동된 사례는 1993년 현대차가 유일합니다. 이번에 발동된다면 21년 만입니다.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요. 단기적으로는 파업이 30일간 강제 중단되면서 반도체 생산 차질에 따른 직접 손실은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총리 담화에서도 언급됐듯 반도체 공장이 단 하루만 멈춰도 최대 1조 원의 직접 손실이 발생하고, 초정밀 공정의 특성상 한번 가동이 중단된 생산라인을 정상화하는 데는 수개월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업 예방 효과는 분명합니다. 다만 노동계는 즉각 반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이미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경제 논리로 위축시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며 긴급조정권 발동 시 강력 투쟁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한국노총도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파업권을 제한하는 선례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노사 갈등이 법적·정치적 전선으로 확대되고, 금속노조까지 가세한 연대 투쟁이 전면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반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지 않으면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의 총파업이 현실화됩니다. 총리 담화 수치대로라면 직간접 손실이 최대 100조 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2월 HBM4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하고 파운드리 부문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계약을 체결하는 등 모처럼 반도체 경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 생산 차질이 발생하면 한번 잃어버린 고객사 신뢰와 시장 점유율은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이 내부 갈등으로 멈춰 서 있는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은 그 틈을 파고들 것이라는 경고는 이미 해외 석학들이 수차례 제기한 바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조의 도덕성 논란까지 겹치며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17일 보도에 따르면 초기업노조 집행부가 올해 3월 총회에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하면서 직책수당 신설 안건을 말미에 슬쩍 끼워 넣어 함께 가결시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7만 명 조합원이 내는 월 조합비 7억 원 중 약 3,500만 원이 집행부 수당으로 할당되며, 최승호 위원장은 이 중 매월 1,000만 원가량을 수령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더욱이 초기업노조는 설립 후 3년이 다 되도록 대의원 선거를 단 한 차례도 실시하지 않았고, 현재 위원장을 포함한 단 5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3명만 찬성해도 거대 조직의 모든 안건을 처리할 수 있는 구조란 지적이 나옵니다. "파업을 최대한 오래 끌려고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입니다. 이에 분노한 디바이스경험(DX) 부문 조합원 4,000여 명이 한 달 새 집단 탈퇴에 나서면서 초기업노조는 과반 지위 붕괴라는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요구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적어도 내부 운영의 투명성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입니다. 18일 협상 결과에 따라 긴급조정권 발동 여부가 결정되고, 그 결과는 삼성전자 한 기업의 노사 문제를 넘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향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박준규 기자 pjk7000@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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