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월세는 누구에게나 매달 돌아오는 청구서지만 무게는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증금 일부를 월세로 돌리고, 누군가는 보증금을 떼일까 두려워 월세를 택한다. 월세라는 같은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사정이 숨어 있다.
최근 월세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은 전달보다 0.93% 올라 전세가격 상승률(0.80%)을 앞질렀다. 연립·다세대주택도 월세 상승률(0.69%)이 전세(0.65%)보다 높았다. 거래량에서도 월세가 전세를 추월했다. 지난 8월 서울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8385건으로 전세(7923건)보다 5.8% 많았다. 임대차 시장의 중심이 월세로 옮겨가고 있다.
하지만 월세화의 속사정은 아파트와 비아파트가 다르다. 아파트의 월세화는 전셋값 급등의 후유증에 가깝다. 국내 아파트 월세 계약의 상당수는 목돈의 보증금을 걸고 매달 임대료를 내는 보증부월세다. 이른바 반전세 또는 반월세다.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입자는 부족한 보증금만큼 월세를 더 낸다. 통계상 월세이지만 경제적 실질은 전세의 일부가 월세로 바뀐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변형된 전세’다.
그러나 단독·다가구·연립·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 시장은 출발점이 다르다. 전세사기와 깡통주택,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잇따르면서 전세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렸다. 세입자는 목돈을 떼일 위험을 피하려고 월세를 선택한다. 비아파트의 월세화는 전세 제도에 대한 불신이 낳은 결과인 셈이다. 비아파트는 월세 거래 비중이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올해 1~7월 전국 아파트의 월세 거래 비중은 52.4%이지만 비아파트는 80.4%에 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계층이 청년층이다. 청년층은 다른 연령층보다 임차 거주 비중이 높고, 빌라·다가구주택·오피스텔 등 비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중도 높다. 전세사기 위험을 피해 월세로 옮긴 청년들이 치러야 할 대가도 만만치 않다. 소득과 목돈이 부족한 청년에게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는 더욱 버겁다.
전월세 전환율을 보면 부담의 차이가 드러난다. 지난 8월 서울 주택의 평균 전월세 전환율은 5.6%인데, 단독·다가구주택은 6.6%로 이보다 1.0%포인트 높다. 서민 주거공간인 단독·다가구주택에서는 같은 보증금을 월세로 돌려도 매달 부담이 더 커진다.
전체 지표만 보면 월세 부담의 심각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2024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차가구의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전국 15.8%, 수도권 18.4%다. 그러나 대표 통계는 취약계층의 주거비 부담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국토연구원이 2022년 주거실태조사를 토대로 저소득 임차가구 3022가구를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청년층의 월소득 대비 총주거비 부담률은 평균 58.0%에 달했다. 중장년층(38.2%)이나 노년층(34.8%)보다 훨씬 높다. 저소득 청년들이 처한 팍팍한 주거 현실을 보여준다.
월세화의 충격은 현재의 생활비에만 그치지 않는다. 월급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소비와 저축 여력이 줄어든다. 종잣돈을 모으지 못하면 내 집 마련은 더 멀어진다. 주거비 부담이 자산 형성의 기회를 갉아먹고, 이는 다시 주거 불안으로 이어진다. 월세 부담이 오늘의 가계부를 넘어 내일의 자산 격차를 키우는 셈이다.
같은 월세 시대라도 누군가에게는 계약 방식의 변화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계의 압박이다. 월세화의 속도보다 그 무게가 누구에게 집중되는지 먼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저소득 청년층에는 부담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주거비 지원도 늘려야 한다.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리 시위도 남의 일이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치솟는 임대료와 세입자 퇴거 문제가 대규모 시위로 번졌고, 프랑스에서도 주거비를 포함한 생활비 압박이 시위의 한 배경이 되고 있다. 감당하기 어려운 주거비가 젊은 세대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벽이 된 것이다. 주거 불안이 쌓이면 경제적 불만을 넘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 전월세 불안이 사회 불안으로 번지기 전에 주거 안전망부터 더 촘촘히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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