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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연대기] AI는 다음 수를 읽고, 사람은 마음을 읽는다

인공지능(AI)에게 바둑의 다음 수를 묻는 시대다. 사람은 오래 생각해도 찾기 어려운 길을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이 바둑을 두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정확한 수를 찾는 일만이 목적이라면 사람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바둑연대기] AI는 다음 수를 읽고, 사람은 마음을 읽는다

이긴 기쁨·진 아쉬움 모두 존중을

가능성 함께 살피는 복기 태도 필요

인공지능(AI)에게 바둑의 다음 수를 묻는 시대다. 사람은 오래 생각해도 찾기 어려운 길을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보여준다. 그렇다면 인간이 바둑을 두는 의미는 무엇일까. 더 정확한 수를 찾는 일만이 목적이라면 사람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그러나 바둑판 앞에 앉는 이유에는 승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와 마주 앉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흔들린 하루를 차분히 가다듬는 시간이다.

기술은 많은 일을 빠르게 처리해 주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같은 속도로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은 줄어든 듯한데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여전하다. 화면을 켜면 남의 성취가 쏟아지고, 잠시 멈춰 있으면 혼자 뒤처지는 듯하다. 무엇을 느끼는지 묻기도 전에 무엇을 해냈는지부터 확인하는 하루 속에서, 마음은 좀처럼 쉴 자리를 얻지 못한다.

바둑은 그런 사람에게 의자를 하나 내어준다. 일단 앉으라고.

바둑을 두면 자기 마음의 움직임도 만난다. 유리해지면 서두르고, 불리해지면 무리한 싸움을 걸고 싶어진다. 아까운 돌을 버리지 못해 더 큰 것을 잃기도 한다. 판 위에 드러나는 것은 돌의 모양이지만, 그 돌을 움직인 것은 욕심과 두려움이다. 대국이 끝난 뒤 “왜 그 수를 두었을까” 하고 돌아보면, 기술의 문제 뒤에 숨어 있던 마음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꾸지람보다 이해다. 아이가 한 판을 졌을 때 어른이 승패부터 따진다면 바둑판도 또 하나의 시험장이 된다. “어느 순간이 가장 어려웠니”, “그때 어떤 생각이 들었니” 하고 물어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아쉬움을 말하는 동안, 아이는 패배한 결과와 자기 자신을 조금씩 구분할 수 있다. 오늘 바둑을 졌다고 해서 자신이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복기에는 그래서 따뜻함이 필요하다. 잘못 둔 수를 찾아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때 보이지 않았던 가능성을 함께 살피는 것이다. “여기로 갔어도 괜찮았겠구나”라는 발견은 이미 끝난 한 판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다음 판을 시작할 용기는 줄 수 있다. 지나간 실수를 벌주는 대신 앞으로의 선택을 넓혀주는 일, 그것이 삶에서도 필요한 복기의 태도다.

말수가 적은 사람에게 바둑은 대화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도 함께 판을 바라볼 수 있다. 좋은 수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뜻밖의 실수에는 서로 웃는다. 대국을 마친 뒤 돌을 거두며 비로소 안부를 묻기도 한다. 외로운 이에게 필요한 것은 때로 거창한 충고보다 자기 앞에 앉아 한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 사람이다. 바둑은 그 만남이 어색하지 않도록 가운데 놓이는 작은 탁자다.

물론 모든 대국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순위만 앞세우고 실수를 비웃는다면 오히려 상처가 남는다. 바둑이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 되려면 가르치는 방식과 함께 두는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 이긴 사람의 기쁨과 진 사람의 아쉬움이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인공지능의 분석도 정답으로 사람을 다그치는 도구보다, 함께 다른 길을 찾아보는 자료로 쓰였으면 한다.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우리에게 남아 있다. 좋은 수를 배우는 일과 더불어 상대의 망설임을 기다리고, 패배한 마음을 헤아리는 일도 바둑 교육의 한가운데 놓아야 한다. 대국을 마친 사람이 “오늘도 졌다”는 말 뒤에 “그래도 한판 두니 좋다”고 덧붙일 수 있다면, 그 바둑은 제 몫을 충분히 한 것이다.

/조용성 ㈔진주스포츠클럽 바둑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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