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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미래세대 망칠 반도체산단 선거 악용[포럼]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생태계이다. 이미 경기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래세대 망칠 반도체산단 선거 악용[포럼]

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6·3 지방선거가 64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 경제의 심장이 될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가 선거판의 볼모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간간이 흘러나오던 ‘산단(産團) 이전설’은 이제 출마 희망자들의 핵심 공약으로 둔갑해 지역 민심을 흔든다. 여기에 정부 당국자들마저 모호한 발언으로 불확실성을 키우면서, 선거 이후 ‘정치적 결단’이라는 미명에 국가적 사업의 근간이 뒤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반도체 공장의 입지 선정은 기업의 명운과 국가 경쟁력이 걸린 일로, 결코 정치인이 지역구에 선사하는 ‘하사품’이 될 수 없는 사안이다.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공장을 지을 땅이 있다고 돌아가는 사업이 아니다. 하루 수십만 t의 깨끗한 용수가 끊임없이 공급돼야 하며, 단 0.1초의 정전도 허용하지 않는 거대한 전력망이 필수다. 용인산단이 결정된 핵심 이유 중 하나도 팔당댐과 인접한 지리적 여건과 수도권 전력망과의 연계성 때문이다. 만약 정치적 압박 때문에 준비되지 않은 지역으로 입지를 변경하거나 분산한다면, 송수관을 새로 깔고 송전탑을 세우는 데만 추가로 수년의 세월이 흐를 것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은 속도전이다. 대만의 TSMC와 미국의 인텔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뜀박질하는 사이, 한국은 ‘정치적 계산’ 때문에 첫 삽조차 뜨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선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인력 자원이다. 반도체는 고도로 숙련된 엔지니어들의 집단지성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반도체 인력의 수도권 쏠림은 단순히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기관과 연구소 및 정주 여건이 결합된 생태계의 결과다. 무리한 지역 안배를 위해 인프라가 없는 곳으로 공장을 옮기면 핵심 인력의 이탈은 불 보듯 뻔하다. 인재들이 아이를 키우고 문화를 누리며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무시한 입지 선정은 결국 기술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뿐이다.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수천 개의 협력업체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생태계이다. 이미 경기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형성된 ‘K반도체벨트’는 물류비용 절감과 기술 협업의 최적지다. 이를 정치적 논리로 쪼개어 먼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잘 쌓은 레고 성을 허물고 블록 몇 개를 멀리 던져 놓는 것과 같다. 뻔한 결과는 비효율이다.

정치는 표(票)를 먹고 살지만, 경제는 효율을 먹고 산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첨단산업의 입지가 4, 5년 주기인 선거용 ‘선심성 공약’으로 이용당하는 순간,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미래세대에 돌아간다. 지금 정부와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산단 이전이라는 희망 고문이 아니다. 용인산단이 원래의 계획대로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고, 용수와 전력 확보를 위한 지역 간 갈등을 중재하는 촉진자(facilitator)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는 여야도, 지역이기주의도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압도할 때 우리는 ‘반도체 강국’이라는 타이틀을 반납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은 ‘어디에 지을 것인가’로 다툴 때가 아니라, ‘어떻게 더 빨리 지어 승리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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