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TER X 갈무리
[이코리아]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한국의 망 사용료 부과 논의를 또 다시 비판하고 나섰다.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데 이어, 이번에는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국을 직접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USTR은 현지시간 27일 공식 SNS를 통해 ‘미국 수출업체들이 직면한 가장 터무니없는 외국의 무역장벽(Craziest Foreign Trade Barriers Facing American Exporters)’ 10가지를 소개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USTR는 이 가운데 네 번째 사례로 한국을 지목하며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인터넷 트래픽 전송과 관련해 자국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ISP)에 대한 망 사용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만 예외(No country in the world imposes network usage fees on the transmission of Internet traffic to its Internet Service providers. Except Korea)”라고 밝혔다. 이는 코스타리카의 수입 통관 검사, 튀르키예의 미국산 쌀 수입 제한, 호주의 스트리밍 서비스 투자 의무화 등과 함께 소개됐다.
USTR의 이 같은 행보는 현행 제도보다는 한국 국회에 계류 중인 입법 논의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USTR는 이후 관련 질의에 “현재 계류 중인 이 법안이 미국 콘텐츠 제공업체에 한국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에 대한 과도한 보상 부담을 지운다는 점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즉 한국이 실제로 망 사용료를 법적으로 부과 중인 국가는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면서도, 입법 논의 자체를 공개적인 통상 압박 대상으로 삼은 셈이다.
다만 제도 정비가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이 망 사용료를 실제로 부과하고 있다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는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에 망 이용대가 지급 의무를 부여하거나 협상·분쟁조정 근거를 강화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들이 국회에 계류 중이지만, 관련 제도가 입법 완료돼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청와대도 USTR의 주장에 공식 반박했다. 청와대는 28일 언론 공지를 통해 “미국 기업이 망 사용료, 플랫폼 규제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국회에서 발의된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이 있으나 통과된 법안은 없다”고 밝혔다. 또 지난해 11월 한미 정상 공동 팩트시트에 명시된 ‘디지털 비차별’ 약속은 변함없이 이행될 것이라는 취지의 입장도 덧붙였다.
망 사용료는 구글, 넷플릭스, 메타 등 대형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국내 이용자에게 콘텐츠를 전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처리 비용을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에 부담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문제로, 이를 두고 국내 통신업계와 글로벌 빅테크 간 논의가 이어져 왔다. 통신업계는 소수 글로벌 CP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이에 따른 망 투자 비용은 부담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0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국내 트래픽 발생량 중 구글과 넷플릭스의 비중이 각각 27.1%와 7.2%로 전체의 3분의 1을 넘었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국내에서 망 사용료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2020년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 망 이용대가 소송 이후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 트래픽 증가로 망 증설 부담이 커졌다며 망 이용대가 지급을 요구했고, 넷플릭스는 자체 콘텐츠전송망인 오픈커넥트 등을 통해 망 부담을 줄이고 있다며 별도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다. 다만 지난 2023년 양사가 분쟁을 종결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법적 갈등은 현재는 마무리되었다.
이후 2022년에는 구글과 오픈넷을 중심으로 한 반대 서명운동을 계기로 망 사용료문제가 대중적 이슈로 확산됐으며, 2023년에는 아마존이 보유한 글로벌 인터넷 방송 플랫폼 트위치가 한국 서비스 종료를 발표하면서 논쟁이 격화됐다. 이후에도 망 이용대가를 둘러싼 논쟁은 국회와 업계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논의는 반복되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대형 빅테크 기업이 통신망 투자 비용의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는 ‘공정기여’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유럽 주요 통신사들은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 일부 대형 콘텐츠 사업자가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유발하고 있는 만큼, 네트워크 구축과 유지에 일정한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빅테크와 디지털 권리 단체들은 이용자가 요청한 콘텐츠를 전송하는 비용을 CP에게 다시 부과하는 것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망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유럽의 싱크탱크 유럽정책분석센터(CEPA)는 지난 1월 공개한 보고서에서 유럽 통신사들이 망 사용료 논의를 다시 제기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요금 부과가 어려워지자 분쟁 조정 절차를 통해 콘텐츠 사업자와 통신사 간 접속 대가를 규제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 사례를 언급하며 망 사용료 제도가 소비자 요금 상승, 콘텐츠 품질 저하, 해외 우회 전송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망 사용료를 법제화한 사례는 없다. 이 때문에 한국의 입법 논의 자체가 미국 빅테크와 통상당국 입장에서 국제적 선례가 될 수 있는 사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의 망 사용료 법제화는 단순한 국내 통신정책이 아니라, 구글·넷플릭스 등 자국 플랫폼 기업에 네트워크 비용 분담 책임을 부과하려는 글로벌 흐름의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망 사용료 법제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나온다. 시민단체와 일부 콘텐츠 업계는 망 사용료 의무화가 해외 CP의 비용 부담을 넘어 이용자 요금 인상, 화질 저하, 국내 창작자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오픈넷이 의뢰한 2023년 여론조사에서도 망 사용료 법제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찬성보다 높게 나타난 바 있다. 반대 측은 특히 해외 CP의 비용 부담이 결국 콘텐츠 이용료 인상이나 서비스 품질 저하로 전가될 가능성을 지적한다.
반면 통신업계는 글로벌 CP가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상당 부분을 유발하면서도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부담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국내 CP와 일부 해외 CP는 이미 망 이용대가를 부담하고 있는 만큼, 구글·넷플릭스 등 초대형 글로벌 CP만 비용을 회피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통신업계는 망 사용료 논의가 특정 국가나 기업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트래픽 증가에 따른 비용 분담 원칙을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