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따른 유연한 통화정책 기조
코로나 후 인플레 선제 대응 강조
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 전망
1500원대 환율시장 관리도 변수
스테이블코인 자본 유출 위험 경고
디지털 자산 정부와 충돌 가능성
국제유가 급등 속 물가 안정과 성장의 균형, 1500원대를 넘나드는 원달러 환율 안정 등이 차기 한은 총재의 당면 과제로 꼽힌다. 지난 22일 한 주유소 앞에 유가가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의 새로운 총재에 ‘실용적 매파’로 분류되는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지명됐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물가가 급등하고 성장세는 둔화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대한민국 통화정책의 방향타를 쥐게 될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다.
■이론·실무 겸비한 ‘국제통’
한국은행에 따르면 신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이창용 현 총재의 뒤를 이을 예정이다. 정치적 논란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이론과 정책 경험을 두루 갖춘 세계적 석학이라는 평가를 받는 만큼 큰 변수가 없는 한 무난한 취임이 예상된다.
1959년 대구 출신인 그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경제·철학(PPE)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상주학자, 뉴욕 연방준비은행 금융자문위원,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등을 거치며 국제금융·거시경제 분야에서 독보적인 이력을 쌓았다. 특히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 고위직에 오른 최초의 동양인이라는 점에서도 상징성이 크다.
그는 2005년 잭슨홀 미팅과 2006년 IMF 연차총회 등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사전에 경고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서브프라임 부실이 전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그의 발언은 이후 현실화되며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근무하며 한국형 거시건전성 정책 설계를 주도했다.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이른바 ‘거시건전성 3종 세트’ 도입 과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 해당 조치가 자본자유화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점을 IMF에 설득했고, 이후 IMF가 이를 모범 사례로 제시한 점은 그의 정책 설계 역량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학문적으로는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과 레버리지 확대의 위험성에 주목해 왔다. 대표 논문 ‘유동성과 레버리지’에서는 자산 가격 상승기에 금융기관의 레버리지가 급증하며 시스템 리스크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국내 전세 제도를 ‘비공식 대출’로 규정한 점 역시 그의 문제의식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론적 깊이와 정책 경험, 국제 네트워크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는 점에서 중앙은행 수장으로서의 적합성이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리 향방에 쏠린 시선
시장에서는 신 후보자의 통화정책 기조를 ‘실용적 매파’로 분류한다. 물가 안정에 방점을 두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다. 최근 중동 리스크로 유가가 급등하고 공급망 불안이 재부각되면서 글로벌 통화정책 기조 역시 다시 긴축 쪽으로 기울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최근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다음 정책 결정이 금리 인상이 될 가능성도 논의됐다”고 밝혔고, 요아힘 나겔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 역시 “중기 물가 전망이 악화할 수 있다”며 긴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신 후보자 역시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의 ‘선제성’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는 2022년 G20 글로벌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인플레이션은 특정 품목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특성이 있다”며 “초기에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성향을 감안하면 그의 취임 이후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국은행이 이미 6차례 연속 금리를 동결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재차 높아질 경우 오히려 인상 카드가 부상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실제 일부 시장 참가자들은 연내 금리 인상 시나리오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다만 금리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소비와 투자 위축을 통해 경기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반도체 수출 회복에도 불구하고 올해 2% 안팎으로 예상되는 성장률이 추가로 둔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신 후보자는 물가 안정과 성장 방어 사이에서 정책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지가 최대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환율·코인까지… 과제 산적
외환시장 안정 역시 핵심 과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1510원 안팎까지 상승하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에 올랐다. 환율 변동성 관리와 자본 흐름 안정은 통화정책과 별개로도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신 후보자는 BIS 재직 시절 아시아 투자자들의 환헤지 행태가 달러 약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 등 외환시장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은 편이다. 그는 과거 “인플레이션을 효과적으로 통제한 국가일수록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통화가 강세를 보였다”며 물가와 환율 간 상호작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넘어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그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외환 규제를 우회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며 자본 유출 리스크를 경고했다. 이는 향후 디지털 자산 정책을 둘러싼 정부와 중앙은행 간 이견으로 인한 충돌 여지가 있다.
한편 한은 총재는 국무회의 심의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임기는 4년이다. 현 이창용 총재의 임기는 다음 달 20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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