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문화는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시민의 삶이다

문화는 권력의 것이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예술은 더욱 그렇다. 문화예술과 체육이 특정 권력의 영향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쓰이는 순간 문화는 생명력을 잃는다. 예술은 자유를 잃고 체육은 공동체 정신을 잃는다. 민주주의는 정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화는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시민의 삶이다

최경호 수필가·불교문인협회 회원

문화는 권력의 것이 아니다. 시민의 것이다. 예술은 더욱 그렇다. 문화예술과 체육이 특정 권력의 영향력을 넓히는 수단으로 쓰이는 순간 문화는 생명력을 잃는다. 예술은 자유를 잃고 체육은 공동체 정신을 잃는다. 민주주의는 정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문화가 함께할 때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된다.

그동안 지방자치의 현장에서는 아쉬운 모습도 적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 문화기관의 책임자가 바뀌고 축제의 색깔도 달라졌다. 어떤 단체는 늘 같은 자리를 차지했고 어떤 예술인은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실력보다 인맥이 앞서고 창작보다 줄을 잘 서야 한다는 자조가 문화예술계 안에서 흘러나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원을 받아야 하는 예술인이 누군가의 눈치를 먼저 살펴야 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문화가 아니다.

체육도 마찬가지다. 생활체육은 시민 모두를 위한 공공의 자산이다. 그런데 체육단체가 정치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거나 선거 때마다 동원되는 조직처럼 비쳐진다면 시민은 더 이상 순수한 체육 활동으로 바라보기 어렵다. 문화와 체육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의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 중립은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김상욱 울산시장 당선인이 문화예술단체와 체육단체의 줄 세우기를 경계하고 행정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행정은 권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문화예산 역시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쓰여야 한다. 정치적 성향이 아니라 창작의 가치와 공공성 그리고 시민에게 주는 울림이 지원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울산의 문화정책도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 높은 건물을 세우고 거대한 공연장을 만드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민의 삶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동네마다 작은 공연이 열리고 골목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악기 소리가 흐르는 도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문화를 누리고 함께 만드는 일이야말로 도시를 가장 풍요롭게 만든다.

무엇보다 지역 예술인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 울산에는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문인과 화가 음악인 무용인 사진작가 연극인이 많다. 이들은 울산의 역사와 사람을 가장 잘 알고 시민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해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대형 축제나 문화행사의 중심 무대는 외부 유명 공연팀이 차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역 예술인은 식전 공연이나 부대행사에 머무는 현실이 반복됐다.

외부 공연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양한 문화를 만나는 일은 시민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 그러나 지역 예술인이 성장하지 못하는 문화정책은 뿌리 없는 나무를 키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지역 예술인이 살아야 지역 문화도 함께 살아난다. 시민의 세금으로 열리는 축제라면 시민과 함께 살아가는 지역 예술인이 먼저 존중받아야 한다.

축제도 이제는 경쟁보다 참여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 얼마나 유명한 가수가 왔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함께 만들었는가가 더 중요하다. 시민이 노래하고 시민이 연주하며 시민이 전시회를 열고 공연을 만드는 축제라야 오래 기억된다. 문화는 관람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길 때 비로소 공동체의 힘이 된다.

이제 시민들은 문화정책을 문화 복지의 한 영역으로 바라본다. 문화는 특별한 사람만 누리는 사치가 아니다. 모든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다. 아이는 학교와 마을에서 예술을 배우고 청년 예술인은 안정적으로 창작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는 퇴근 후 생활예술을 즐기고 어르신은 합창과 연주를 통해 삶의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과 문화 소외지역 주민도 차별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문화민주주의이며 시민 중심 문화정책의 출발점이다.

문화예산도 보다 공정하게 쓰여야 한다. 규모가 큰 단체만 지원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작지만 성실하게 활동하는 예술단체와 생활문화 동호회에도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 청년 예술인을 위한 창작공간을 넓히고 지역 곳곳에 작은 공연장과 전시공간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문화는 경쟁에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과정에서 자란다.

체육 역시 시민의 삶 속으로 더 가까이 들어와야 한다. 엘리트 선수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누구나 쉽게 운동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생활체육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체육시설은 특정 단체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 운동은 건강을 지키는 일인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소중한 공동체 활동이다.

문화는 도시의 품격을 말해 준다. 공장이 많다고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높은 건물이 많다고 시민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창작하며 시민 모두가 문화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도시는 깊이를 갖게 된다. 권력은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그러나 문화는 오래 남는다. 한 시대의 정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 되지만 그 시대의 문화는 다음 세대에게 도시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문화는 권력보다 길고 시민보다 가까워야 한다.

민선 9기 울산이 진정한 문화도시를 꿈꾼다면 문화예술과 체육을 권력의 연장선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공의 자산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줄 세우기와 편 가르기를 끝내고 지역 예술인에게 더 넓은 무대를 열어 주어야 한다. 시민 누구나 문화를 만들고 누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울산이라면 문화는 더 이상 권력의 장식이 아니라 시민의 자부심이 될 것이다.

최경호 수필가·불교문인협회 회원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