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경기도 양주의 한 골프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바람 한 점 없는 완연한 봄날 낮 시간대에 골프장이 텅 비어 모두 웬 일인가 싶었다. 골프 성수기로 접어든 시점에 클럽하우스 식당은 물론 락커룸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팀으로 진행됐는데 앞뒤 팀이 없어 전혀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골프를 끝냈다. 나름 잘 관리되는 명문 골프장에서 예전에 보기 드문 황제 라운드였다.
“손님이 확 줄었어요. 이 맘때 아침부터 꽉 찼는데 이젠 전날 부킹도 가능해요. 손님이 급감해 저도 이 일을 언제까지 할지 모르겠어요.”
담당 캐디가 내장객 상황을 전해주며 본인 앞날도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성수기엔 하루 두 팀도 소화했지만 이젠 한 팀도 제대로 배당받지 못하는 날이 흔하단다.
필자가 자주 찾는 경기도 여주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틈 날 때 사이트에 들어가면 아침 7시 이전엔 아예 비었다. 이 시간대 그린피가 11만원 정도임에도 빈자리는 널려 있다.
작년보다 1만~2만원 내렸지만 반응이 없다. 그린피에 비해 코스 관리가 양호해 착한 골프장이 이럴진대 다른 골프장은 말할 나위 없다.
수도권의 대표적인 명문골프장인 레이크사이드를 보면 얼마나 골프장 내장객이 줄었는지 확연히 드러난다. 이 골프장은 대중제(일부 코스 회원제)이지만 일반인 예약은 그동안 거의 불가능했다.
삼성 같은 대기업 임원들이나 재력있는 사업가, 전문인들이 주로 이용했다. 작년 이 맘때만 해도 평일 그린피가 20만원을 넘었다.
하지만 현재 평일 그린피가 19만9000원으로 책정된 부킹 코너에 빈 자리가 많다. 팀만 구성되면 다음날 번개 골프도 가능하다.
같은 삼성 계열인 가평베네스트(회원제)는 더하다. 이 곳은 평일엔 빈 자리가 수두룩하다.
“격세지감이다. 봄이면 아름드리 벚꽃과 개나리 진달래 만발한 수목원 같은 명문골프장이었다. 예전 레이크사이드, 가평베네스트가 아니다.”
최근 두 골프장을 다녀온 지인이 현지 사정을 알려주었다. 지방 골프장 사정은 더 심각하다.
충청도와 호남, 제주도 골프장은 그린피 10만원에 못미치는 비용으로도 골프가 가능하다. 노캐디 골프장도 갈수록 증가한다.
골프장 내장객 급감은 통계로 드러난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524개 골프장 총 내장객(연인원)은 4641만명으로 전년 대비 약 100만명(2.1%) 감소했다.
골프장 내장객은 코로나 팬데믹 당시인 2021년 5057만명으로 처음 5000만 시대를 열었고 2022년 5058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해외 골프 투어가 가능해지면서 내장객은 내리막길을 탔다. 2023년 4772만명, 2024년 4741만명으로 감소 일로를 걷는다.
이 가운데 제주 골프장이 가장 심각해 2025년 206만명이 찾아 전년보다 8% 포인트 줄었다. 골프 치고 은갈치 먹던 것도 옛 일이다.
“올해는 더욱 심각합니다. 골프장 경영 상황이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도산 위기에 처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우려도 큽니다.”
골프장 업계 관계자가 경고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만 해도 골프장 난립으로 업계 전체로 경영난이 가중됐다.
그린피 10만원 전후 골프장이 즐비했고 골프장 매물도 쌓였다. 골프장 업계를 살린 일대 사건이 코로나 팬데믹이었다.
해외 투어가 차단돼 국내 골프장으로 발길이 이어졌다. 마침 2020년 하반기터 주식시장도 불붙어 재미를 본 젊은 세대와 여성들이 골프층에 대거 유입됐다.
이 틈을 타 골프장은 그린피를 두 배 가까이 올렸고 캐디피와 카트비도 덩달아 올렸다. 그동안 놓친 수익을 단번에 뽑는다는 기세로 골퍼들에게 부담을 지웠다.
팬데믹이 끝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치솟고 계엄 정국까지 가세해 골프 인구가 급격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2030 젊은 층에 이어 주부들도 클럽을 놓았다.
연도별 내장객수(단위=만명)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도 법인 회원권 사용을 제한한 데다 법인 카드 결제마저 제동을 걸자 명문 골프장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에 이어 다른 대기업들도 이런 흐름에 동조했다.
더구나 거대한 골프층을 형성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는 골프업계로선 가장 큰 암초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인구층에다 재력까지 보유한 이들은 골프장의 젖줄이었다.
이들 세대가 대부분 은퇴기로 접어들어 노후생활을 위해 지갑을 닫는다. 한 번에 30만원 이상 소요되는 골프에 연금을 흔쾌히 쏟아붓는 용감무쌍한 사람은 드물다.
이들은 차라리 일본, 태국, 베트남 등으로 해외 투어를 더 선호한다. 제주도 2박3일 골프비용이면 일본 3박4일 골프 투어를 소화한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이젠 파크 골프로도 눈을 돌린다. 1만원 이하로 3~4시간 라운드를 소화하고 클럽도 하나로 충분하다. 전국 지자체들이 복지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파크 골프장을 설치해 은퇴 세대를 유인한다.
필자 주변에도 그동안 골프 멤버로 활동하다가 파크 골프로 빠져나가는 사람이 속속 생긴다. 현재 전국 파크 골프장은 400개를 넘어섰고 내장객도 최근 5년간 4배 이상 증가했다.
“요즘은 회원권도 별 소용 없어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그린피를 10만원 안팎 내면 효과가 없어요. 비회원 동반자를 초청하면 1인당 평균 그린피만 16만원을 넘겨요.”
차라리 그 돈으로 주중에 대중제를 이용하는 게 낫다고 한 동반자가 말했다. 오전 7시 이전에 예약하면 조식을 제공하거나 그린피 혜택을 주겠다는 골프장 문자가 연일 날아든다. 예전에 한번 가본 골프장에서도 어찌 알고서는 유혹의 손길을 내민다.
그린피 말고도 1인당 캐디피 4만원, 카트비 2만5000원 같은 부대비용을 손보지 않는 한 내장객 감소는 불가역이다. 골프장들은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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