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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메아리]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는 경계 없어져야

19세기 Karl Marx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구조”로 설명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노동력을 판매하는 계급의 충돌은 산업혁명기의 현실을 상당 부분 설명해냈다.

[메아리]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는 경계 없어져야

[메아리]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는 경계 없어져야

굴뚝이 없어져 가듯 낡은 사상은 역사로만 남아야

칼럼

새전북

2026년 05월 31일 17:21

승인

2026년 05월 31일 20:29

19세기 Karl Marx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구조”로 설명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과 노동력을 판매하는 계급의 충돌은 산업혁명기의 현실을 상당 부분 설명해냈다. 실제로 당시 노동자는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비참한 주거 환경 속에서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했다. 반면 자본은 공장과 금융, 토지를 독점하며 사회의 부와 권력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21세기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 과거의 단순한 이분법은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오늘날 사회는 자본가와 노동자가 칼로 자르듯 분리되지 않는다. 노동자가 주식을 보유하고, 직장인이 부동산 자산을 운영하며, 플랫폼 창작자가 동시에 생산자이자 자본 소유자가 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노동자이면서 투자자이고, 소비자이면서 기업 운영자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계급 구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경계는 과거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문제는 경제 구조보다 사람들의 의식이 여전히 낡은 적대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끊임없이 “부자 대 서민”, “기업 대 노동”, “정규직 대 비정규직”이라는 구도를 소비한다. 갈등은 동원하기 쉽고, 분노는 정치적 에너지로 전환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도한 계급 대립은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신뢰를 동시에 약화시킨다. 서로를 착취자로 규정하는 사회에서는 협력의 자본도 성장하기 어렵다.

현대 경제·사회는 오히려 ‘중간지대의 확대’를 중요하게 본다. 안정된 중산층이 두터운 사회일수록 범죄율은 낮고 민주주의는 안정되며 혁신은 활발해진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이 장기간 안정성을 유지한 이유 역시 극단적 계급 적대를 완화하려 했기 때문이다. 시장의 효율성과 사회적 안전망을 동시에 유지하려는 균형 감각이 핵심이었다.

특히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확산되는 미래에는 기존 계급 개념 자체가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반복 노동은 기계가 대체하고, 인간은 창의성과 기획력, 데이터 해석 능력 중심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누가 자본을 가졌는가”보다 “누가 지식과 네트워크, 기술을 보유했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새로운 시대의 불평등은 공장 굴뚝보다 정보 접근성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계급전쟁의 재현이 아니라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있다. 교육 기회의 확대, 공정한 조세 체계, 기술 재교육, 노동의 존엄 회복, 그리고 자산 형성의 기회 제공이 중요하다. 노동자가 자산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고, 기업 역시 노동을 단순 비용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파트너로 바라봐야 한다. 생산성과 분배는 적이 아니라 상호 의존 관계다.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오래된 언어는 한 시대를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능력과 노력, 창의성이 계급의 벽을 넘을 수 있는 사회다. 경제의 목적은 특정 계급의 승리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삶에 접근하도록 만드는 데 있어야 한다.

진정한 문명국가는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아니라, 계급의 경계가 인간의 가능성을 가두지 않는 사회다. 굴뚝 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듯, 증오와 적대에 기반한 낡은 계급 이분법 역시 미래 문명 속에서는 점차 역사적 유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배문철(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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