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변수에 성장률 2% 하회 가능성…물가는 2월 전망 웃돌 듯
"인상·인하보다 사태 전개 먼저"…기대인플레 2차 파급 경계
환율 1500원대 변동성 확대…"레벨보다 달러 대비 움직임 봐야"
2026년 4월 10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설명회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발언하고 있다./사진=한국은행 유튜브 캡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와 환율, 금융시장 변동성이 동시에 커진 상황에서 물가 상방 압력과 성장 하방 압력이 함께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당장 금리 방향을 정하기보다 중동 사태의 지속성과 국내 파급 정도를 더 점검해야 한다는 판단이 이번 결정의 핵심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10일 열린 한국은행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이 총재는 “금통위원 전원 동의로 기준금리를 현재의 2.5%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우선 기준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중동 전쟁 이후 급변한 대외 여건을 들었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인프라 훼손 등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에너지 공급에도 차질이 생겼다”며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에 합의했지만 종전 합의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며, 설령 수습 국면으로 전환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이 여파로 세계 경제는 당초 전망보다 성장세가 약화되고 인플레이션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국내 경기 판단도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이 총재는 1분기까지는 높은 수출 증가세와 소비 회복세로 성장 흐름이 예상보다 나았지만, 중동 사태 이후 심리지표가 약화되고 일부 에너지 관련 업종에서 생산 차질이 나타나면서 성장 하방 압력이 커졌다고 말했다.
반도체 수출과 추경이 하방 압력을 일부 완화하겠지만,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 영향으로 성장세는 둔화할 것으로 봤다.
이에 따라 올해 성장률은 지난 2월 전망치인 2.0%를 밑돌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다만 향후 성장 경로는 중동 사태 전개, 통상 환경 변화, 반도체 경기와 내수 회복 흐름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가에 대해서는 상방 위험이 분명해졌다는 인식을 내놨다.
이 총재는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월 2.0%에서 2.2%로 높아졌고, 근원물가 상승률은 2.3%에서 2.2%로 낮아졌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2.7%로 소폭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될 것이며, 정부 대책이 일부 완화 효과를 내더라도 물가 상승률은 2%대 중후반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2월 전망치 2.2%를 상당 폭 웃돌 가능성이 크고, 근원물가 역시 기존 전망치 2.1%보다 다소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 총재는 이번 충격에 대해 기계적으로 금리로 대응할 단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공급 충격에 대한 통화정책의 기본 원칙은 명확하다며, 충격이 일시적이면 정책 시차를 고려할 때 금리 조정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충격이 장기화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에는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중동 상황이 어느 방향으로 전개될지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물가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와 지속성을 먼저 따져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총재는 현재 상황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와도 비교했다.
당시에는 팬데믹 이후 억눌렸던 수요가 회복되던 국면이어서 전쟁 충격이 경기 둔화보다는 물가 상승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금리 인상 대응 필요성이 더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번에는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아시아 지역이 더 큰 충격을 받고 있고, 국내 경기도 완전한 회복 국면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충격이 발생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짚었다.
그 결과 이번 충격은 물가뿐 아니라 경기도 동시에 압박하면서 정책 상충을 키우는 성격이 더 강하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고환율과 과거 고인플레이션 경험 탓에 경제주체들이 물가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도 경계했다.
질의응답에서도 이 총재는 ‘금리 인상 시그널’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최근 몇 주간은 금리 인상·인하 논의 자체보다 중동에서 들어오는 뉴스에 따라 경제 변수가 너무 급격히 바뀌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향후 3개월 금리 방향과 관련해 인상이나 인하를 본격 논의한 것은 아니며, 우선은 사태 전개를 지켜보자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나 물가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정책 대응에 나설지를 두고도 “기계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2차 파급 효과와 지속성, 경기 상황을 함께 봐야 한다고 했다.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단정하기 어렵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현재로서는 물가가 3월 기준 2.2%이고 성장도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며 추경도 추진되고 있어, 사태가 조기에 종결된다면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보복이 이어지며 에너지 인프라가 파괴되는 식으로 충격이 장기화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고, 그 경우에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추경에 대해서는 기존의 재정건전성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번에는 초과 세수를 재원으로 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진 상황에서 이번 추경이 적자 국채를 통한 부채 조달이 아니라 초과 세수를 활용한 것이어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추경 내역 가운데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4조8000억원 반영된 점을 언급하며, 경기 대응이 필요한 시기에 과거 제도에 따라 교육 재정으로 자동 배분되는 구조가 여전히 적절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율과 외환시장 대응에 대한 설명도 비중 있게 나왔다.
이 총재는 지난해 말 환율 급등기에는 달러 인덱스 대비 원화 약세가 더 컸고, 개인 해외투자 급증이 주요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최근 원화 약세는 중동 사태와 외국인 주식 매도가 주도하고 있어 지난해 말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했다.
1월부터 4월까지 외국인의 주식 매각 규모가 작년 연간 규모를 크게 웃돌았고,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 실현과 중동 리스크가 겹치며 환율 상승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이다.
다만 환율을 절대 수준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총재는 “원·달러 환율 1200원, 1400원, 1500원 같은 숫자 자체보다 달러 인덱스 대비 얼마나 더 절하됐는지를 봐야 거시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임 초기부터 지난해 중반까지의 환율 상승은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라 주요국 통화가 함께 절하된 흐름으로 해석해야 하며, 최근처럼 달러 대비 더 크게 움직이는 구간이 정책 판단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고령화와 저성장 때문에 한국이 구조적으로 고환율 체제로 굳어진다는 해석에도 이론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이란 사태가 진정되면 빠르게 올라간 만큼 다시 안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외환시장 개입 효과와 관련해서는 개입이 환율 수준을 영구적으로 바꾸는 수단은 아니지만, 과도한 쏠림과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는 역할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지난해 말과 달리 최근에는 외부 충격 성격이 강하고, 외국인 자금 이탈이 주도하는 흐름에서는 개입 유인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나가는 국면에서 환율을 낮춰주는 개입은 오히려 외국인의 이익 실현 폭만 키울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개입 여부는 달러 인덱스 대비 이탈 폭, 금융안정 영향, 개입의 실효성이 있는 수급 주체인지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판단한다는 설명이다.
주택시장에 대해서는 완전한 안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인식을 보였다.
서울 강남과 고가 주택 시장에서는 안정 또는 하향 조짐이 보이지만, 수도권 주변 지역은 다시 오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서울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 구조를 그대로 둘 경우 양극화와 자본 배분 왜곡이 심해질 수 있다”며 “정부의 가계대출 제한과 거시건전성 강화 기조가 불가피한 비용을 수반하더라도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부동산 가격 안정은 공급·수요 관리만으로 풀 수 없고 수도권 집중 완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워드 가이던스에 대해서는 제도 자체는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월 도입한 6개월 시계의 가이던스가 시장 금리 기대를 조정하는 데 일정한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금리 전환기에는 시장 기대와 실제 결정이 엇갈릴 때 커뮤니케이션 실패 논란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이 제도가 정착하려면 시장과 언론이 ‘조건부 가이던스’라는 성격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화폐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에 대해서도 기존 계획대로 2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스테이블코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은행의 입장이 명확하다며, 국내에서는 예금 토큰을 통해 은행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사용될 수는 있지만,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예금 토큰 기반의 단계적 발전이 우선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이번 금통위를 마지막으로 20일 임기를 마친다. 다음 5월28일 금통위는 신현송 총재 체제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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